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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라데동맹 창시위원장 프리쯔와 만나

편집/기자: [ 김경 특약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9-18 14:56:46 ] 클릭: [ ]

국제무도경기위원회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세계가라데동맹 창지위원장 프리쯔 웬들랜드를 인상깊게 만났다. 백발이 성성한 이 유럽로인은 회의주석단에 초대되였는데  입은 제복에는 영어와 중문으로 《세계가라데동맹》이라고 수를 새겨놓았고 언제 어디서나 퍽 유모아적이였다. 배석안내원을 통해 평양양각도호텔 커피솝에서 프리쯔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지게 되였는데 그의 수 제자인 에스토니아 태권도 협회 위원장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

물음 : 상식적으로 《가라데》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유럽인이 창시 위원장이 될수 있는가 ?

: 그렇다 . 정종 가라데는 일본인데 이전에 일본사람들이 중국 남부에 건너가 무술을 배워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꿍푸(功夫)라고 하면서 천천히 하는 동작으로 받아들였다 . 물론 일본사람들도 나중에 중국의 꿍푸동작을 받아 들이게 되였다

그러다가 정종가라데 창시자인 일본 오끼나와 출신 두나꼬시와 미야기가 1922년 일본에서 《가라데》라고 이름을 달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 이것이 점차 무도로 발전하게 되였고 일본 군대에서 먼저 받아들여 보급하였으며 후에 삽시간에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였다. 2 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전국에 강습소들이 설치되였고 2차대전후 1945년에 다시 가라데보급의 부흥기에 들어서게되였다 .

동시에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이 무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으며 1950년에 교관들을 요청하여 미군에서 먼저 널리 퍼지게 되였다 .

1953 년까지는 유럽에 《가라데》라는것이전혀 보급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1966년까지 일본정부가 패전국으로서 해외 빚을 갚아야 했고 또 해외활동에서도 외화랑비를 막는다는   제약이 있었던것이다 . 때문에 기술교관들이 해외에 나가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 그로 인해   유럽은 전수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1955년 -1957년 사이 유럽에 가라데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

1953년과 1956년에 2명의 일본 교관들이 정부의 승인을 받아 프랑스에 건너가 먼저 유술을 가르쳤는데   그 교육과정에 자꾸   일본의 고유 가라데동작이 자기도 모르게 재현되였던것이였다 .이에 프랑스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게 되였다

그 영향으로 1965-1966년사이에 프랑스 사람인 잭커스 델꼬루뜨가 가라데련맹을 결성하였다. 1966년 이후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승인이 있어 교관들이 해외로 진출할수 있게 되였고 동시에 유럽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엿다

독일에는 1957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 1961년에 독일가라데련맹이 창설되였고 프리쯔위원장은 1975년부터 1994년까지 이 련맹의 위원장으로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도 1970년대부터 가라데가 여러 분파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 프리쯔위원장은 1976년에 국제가라데동맹에 가입하였고 유럽에서 두개의 가라데협회 사무총장을 겸하기도 하였다 . 그러던중 1994년에 그들의 파벌싸움이 역겨워 국제동맹의 모든 직을 사임하였다

1995 년부터 독일과 남아프리카 ,월남 , 로씨아 등지에 가라데를 보급하기로 하고 근 1년간의 연구끝에 1996년 세계가라데동맹을 발족시켰다 . 1996 년 토이기 , 이란 , 이라크 , 타이 , 필리핀 , 일본을   배로 려행을 하면서 가라데산하조직들에 대한 협의를 하였으며 일본에 도착하여 3개월간 훈련하고 다시 배편으로 일본 , 한국 , 로씨야, 하바롭스크를 경유하여 귀국하였다 . 귀국하여 인차 세계가라데동맹을 칭립하였다

물음 : 새롭게 창시하신 가라데와 일본의 정종가라데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답: 단어로 봐서는 단 이름만의 차이이다 .기존의 가라데는 한 민족에 하나의 가라데만 승인하는데 세계가라데동맹은 나름대로의 가라데조직 모두를 허용한다. 경기규칙면에서 기존의 가라데는 단매에 쓰러뜨리기를 제창하면서 경기 시간을 2분으로 하였다 . 세계가라데는 선수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3분 . 3판승으로 경기규칙을 조정한것이 다른점이다 .

기존가라데는 또 가라데의 한 형식인 소도칸방식을 고집하면서 반드시 소도칸심판이 있어야만 경기를 할수 있었는데   그것을 배제하였다 . 그 가라데 소유자가 부족한 사정과 련관이 있었다

물음 : 꿍푸와 현존의 가라데를   비슷하다고 보아도 되겠는가 ?

답 : 오끼나와 가라데술은 꿍푸의 느림 동작을 많이 계승하였다 . 켄도라는 일본검도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전통적인 무예로 되였다 . 검도 애호가들이 검도를 좋아하는것을 보고 그에 기초하여 가라데를 만들었다

때문에 꿍푸와 류사한 점이 많다 . 그러다 보니   실지 운용보다 틀 동작 익히는데만   3-4년의 세월을 소비한다. 새로 창시한 가라데는 그와 다르것이 동작을 빨리 하면서 수련기간이 짧다는것이다.

물음 : 제창하시는 가라데의 가치는 무엇인가 ?

: 가라데의 가치는

1, 고상한 도덕이며

2, 가라데를 통한 교육 인적수양이다

3, 체력단련을 목표로 한다 .

가라데는 규률을 요구하며 사범과 감독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을   요구한다 .

물음 : 인간이 가라데를 배우면 어떤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 6-8살에 시직하는것이 좋다 . 가라데를 비롯한 체육은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가라데는 특히 공포감을 해소하는 좋은 종목이라 할수 있다 .

물음 : 어떻게 되여 가라데라는 체육을 선정하게 되였고 새로운 가라데의 창시와 함께 67세되는 지금까지 이 사업을 할수 있었는가

: 대학시절에 《인간의 자체 방어》라는 글을 쓰려고 하였느데 실제 동작을 모르니 한계를 느꼈다 . 그럴 때 유럽에서   가라데가 인기상승이였고   특히 체육선생이 가라데매니아였는데 곁에서 배우도록 부추기기도 하였다 .일단 접하고 보니 공포감을 해소하는데 좋았다

지속적으로 참가하다보니 지금에 와서는 살아 있을 때 후세에 무엇인가 넘겨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였으며 이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

물음 : 가입된 회원국이나 회원수를 어느 정도로   보는가 ?

: 60여개의 나라에서 80개의 련맹이 가입되였고 애호가 수는 10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있다 .

물음: 경기는 어떻게 조직운영하는가 ?

: 금 년 6월에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경기를 하였다

물음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애기는

답: 열심히 노력하라. 자꾸 물어만 보지 말고 열심히 배우는 례의를 가져라. 그러면 성공한다 . 

/김경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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