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아름다운 추억 108] 새 별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26 13:45:29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6)

▩안부길(연길)

 

나에게도 스승이 많았다. 나의 뇌리에 인각된 새별처럼 빛나는 강희옥선생님을 기념하여 이 글을 쓴다.

1955년 나는 연길시 신흥소학교 4학년생이였다. 그 때 나는 장난이 우심한 락후생이였다. 학급담임선생님은 수차 나를 조용히 불러 타일렀으나 전혀 개변이 없었다. 너무도 애가 타서 락루하면서 설복했으나 나는 마이동풍이였다. 결심서를 몇번 씌워도 소용없고 퇴학시키겠다고 엄중경고 3차 줘도 그 모양이였다. 무가내한 선생님은 나를 교도처에 넘겼다.

내가 장난 쓴 데는 연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가정불화였다. 내가 4살 때 생부가 독감으로 별세하면서 우리에게 고생문을 열어놓았다. 어머니가 재가했는데 계부는 입에 담지 못할 망나니였다. 밤낮 술만 퍼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에게 폭언, 폭행을 가하고 가장치기를 하였다.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온 집안을 박산냈다. 사발이며 쌀독이며 간장독이며 모조리 짓부셨다. 심지어 쇠가마도 박산냈다. 한번은 겨울인데 곤히 자는 나를 허망 들어 밖에 내던졌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계부의 그런 행패는 비일비재였다.

그야말로 사는 게 지옥이였다. 지금도 회상하면 입에 신물이 돋는다. 그렇게 기막힌 가정에서 자란 나는 절망에 빠지고 자비감에 물젖어 역반심리가 생겼다. 어린 마음에 장난으로 기막힌 세상을 저주하였다.

교도처 강희옥 주임선생님이 나를 접수하였다. 키꼴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갱핏한 남성교원이였다. 강선생님은 붙임성이 좋았다. 얼굴에 마냥 미소를 지으시고 조곤조곤 타일렀다. 강선생님은 나에게 《조수봉의 이야기》를 선물하였다. 넉가래 반 만큼한 그림책인데 세번 퇴학당했다가 전변하여 우수생이 된 이야기였다. 감동받은 나는 수십번 읽어보고 자신과 대비하였다. 나도 노력하면 우수생이 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파랗게 살아났다. 나는 전변하였다. 소선대 소대장이 되였다. 흰 바탕에 붉은 줄 하나 띤 패쪽을 왼팔 상지에 달았다. 한결 성수났다.

그 때 교육계통에서 해마다 전 향 소학교 문예경연대회를 소집하였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선발하여 시랑송을 지도해주셨다. 후에 알아보니 강주임선생님이 나를 시키라고 귀띔한 것이였다. 랑송시는 조선의 유명한 시인 조기천의 시 〈불타는 거리에서〉였다. 서정서사시여서 랑송하면 격정이 솟구쳤다. 나는 시랑송 우수상을 받았다. 그 때부터 나는 조기천의 시를 접촉하게 되였고 무척 애독하였다.

선생님은 학생의 특장을 발견하고 발휘시켜 자신감을 줌으로써 향상하게 한 것이였다. 락후생에게서 우점을 보는 예지와 후대였고 선도였다. 나는 중대장이 되였고 학습성적도 학급의 1등이 였다.

4학년 후학기에 우리 학교에서는 전 향 소학교 문예경연을 앞두고 문예종목을 연습하였다. 그중 연극 〈토끼전〉을 연습하였는데 내가 주역으로 자라 역을 맡았다. 담임선생님이 연출을 맡으셨다. 선생님은 우리 ‘배우’들에게 ‘닭똥’과자랑 ‘개눈깔’사탕이랑 사주었는데 난생처음 먹어보는 나는 너무도 맛나서 혀가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 군침이 스르르 돈다. 연기에 유관되는 도구를 만들어쓰고 연습하는 과정도 그토록 재미났다. 인생의 취미는 성공여부보다 주로 과정에 있나 보다. 이 연극으로 나는 학교에서도 전 향적으로도 연기 우수상을 탔다.

그외에도 한어선생님이 극본을 쓰고 친히 연출한 〈렬화 속의 청춘〉을 연기하여서도 우수상을 탔는데 이처럼 수차의 연기를 통하여 나는 자신심, 자존심과 향상심을 갖게 되였다.

나는 소선대 대대장이 되였다. 품행, 학습과 연기 등에서 우수상 10여차 수상했다. 액틀이 없는 종이장이였으나 노벨상보다 못지 않았다. 나는 상장들을 오막살이 울퉁불퉁한 흙벽에 붙여놓고 수수대를 절반 쪼개여 테두리를 대였다. 상장들을 쳐다볼 때마다 나로서도 대견해서 무한한 고무를 받으며 자신감을 꽁꽁 다졌다.

자기의 전변을 통해 나는 서책의 위력을 친히 체험하게 되였다. 그 때로부터 나는 과외독서를 즐겼다. 탐독할수록 책 속에 빠져들어갔다. 서책은 령혼의 식량이였다. 독서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이였다. 독서가 사상을 키우고 사상이 령혼을 향상시켰다. 독서가 창조혁신을 계발하고 그 창조혁신이 또 인생을 윤색하였다.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문자로 내 사상을 표현한다는 게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 작문선생님은 작문에 100점이 없다며 매번 나의 작문을 최고점수로 95점을 주었다. 나는 신명이 났다. 아마 그 때로부터 나는 작가꿈을 꾸게 된 것 같다.

기로에 들어섰던 락후생을 인간 정도로 선도해주신 강희옥선생님은 내 인생의 귀인이였다. 교원은 인류령혼의 기사라는 걸 심심히 느꼈다.

사회에 진출하자 나는 두가지 행운을 접하게 되였다. 향공청단서기와 소학교교원 초빙이였는데 나는 후자를 택하였다. 인류령혼의 공정사로 되고 싶었다. 강희옥선생님을 본보기로 나는 제자들에게 선종을 파종해주는 교육사업에 35년간 고스란히 심혈을 몰부었다. 영광스럽게 고급교사로도 되였다. 게다가 어엿한 작가가 되여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내 뇌리에 인각된 강희옥선생님은 성공한 교육가로서 그 형상은 새별처럼 길이 빛날 것이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