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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07]애타게 찾아낸 증거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26 13:38:39 ] 클릭: [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달하는 제방을 복구하게 되였다.

현장책임을 맡았던 나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제방복구 현장에서 기술지도를 하고 질량검사를 하고 공사진도를 다그치면서 공사건설 현장마다에 발자국을 수없이 남겼다.

해란강 송하평구역의 제방을 복구할 때였다. 해란강과 기수동골안의 합수목 오른켠에 위치해있는 주민구역은 홍수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주민집들이 홍수에 밀리면서 피해가 엄중하였다. 현유의 하천 너비는 16메터 남짓 밖에 되지 않는데 표준 내 홍수를 감당하려면 하천너비가 적어도 30메터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설계보고 비준서를 손에 들고 나는 그만 억이 막혔다. 공사건설 자금에는 토지에 대한 보상금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몇십년을 알뜰하게 다루던 뜨락을 제방복구 건설 때문에 적어도 14메터를 내놓으라고 하면 호응할 주민이 있을가? 그것도 트집을 잡는 데는 이름 있는 주민구역에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무상으로 내놓으라고 하면 벌둥지를 헤치는 거나 다름이 없을 텐데. 공사의 순조로운 진척을 위하여 지지해주십사 주민들을 설득할 용기마저 없었다.

어찌되였건 공사는 추진해야 했다. 공사건설을 다그치면서 주민들에 대한 설득사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 예상과 같이 십여호에 달하는 20여명 주민들이 일제히 나를 에워싸고 서로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토지사용증이 있으니 토지보상을 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입안이 마르고 입술에 물집이 생기고 목소리마저 변하고… 주민들의 손가락질에 푸접 좋게 대응하면서 며칠 내내 설득사업을 했어도 진척이라고는 꼬물 만치도 없고 공사는 끝내 중단되고 말았다. 주민들의 항의에 공사를 다그칠 방법이 없었다. 현장책임을 맡은 나만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쁘고 애매한 속을 끓이며 해결방법을 찾아헤맸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일을 밀고 나아가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주민구역에 찾아가서 토지사용증을 보여줄 수 있는가고 청을 들었다. 생각 밖으로 흔쾌히 허락을 하면서 토지사용증을 내보이는 것이였다. 그런데 토지사용증 발급 날자를 보니 홍수가 지나간 후였다. 한동네의 다른 몇집의 토지사용증을 보아도 모두 홍수가 지나간 후에 발급한 것이였다. 주민들 설득사업에 획기적인 전변을 가져다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나는 해결방법을 토지사용증 발급 날자에 두었다.

2012년 7월 공사장에서 일군들과 함께

유관 부문에 상황을 반영했더니 주민들이 다루는 현유의 뜨락이 하천이였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한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조사를 해보니 현유의 주민구역에 딸려있는 뜨락은 원래 물이 흐르던 해란강 하천바닥이였는데 모 국영단위에서 가속주택을 지으면서 외부로부터 흙을 실어다 하천을 메우고 뜨락을 넓혔다는 것이였다. 현지를 살펴보아도 물곬이 이상하게 굽이지고 하천 폭이 불시에 좁아진 것이 자연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유력한 증거를 제공하는 증인도 나섰다. 하지만 가석하게도 나는 이런 증거를 유관 부문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몇십년간 얼굴을 보면서 한동네에서 살아온 그들 사이에 제방복구 건설로 반목이 생기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증인과 증거를 사용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서도 나는 맥을 버리지 않았다. 원래 하천이였다면 어디엔가는 꼭 증명을 내세울 만한 근거가 있으리라 믿었다. 희망을 안고 자료실에 파묻혀있다 싶이 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지도를 찾아 확대경으로 꼼꼼히 살펴보아도 유관 부문을 설득시킬 만한 유력한 증거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공사를 끝마치고 교부해야 할 시간은 하루하루 눈앞에 다가오는데 중단된 공사를 다시 가동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뾰족한 수가 없다.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가는데 애간장을 태운다는 말이 이런 경우이구나 실감을 하였다.

사무실에서, 자료실에서, 공사현장에서, 심지어 때식을 끓이면서, 밥을 먹으면서까지도 실마리를 찾느라 속을 썩이던 어느 날 문득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쳤다.

“여보세요. 주민뜨락 부근까지 파놓은 기초가 모래와 자갈로 되였습니까? 모래층이 대개 얼마나 되세요?”

“기초는 모두 모래와 자갈로 되여있고 모래층은 대개 한메터 반 정도는 실히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몰래 한숨이 튀여나왔다. 순간, 며칠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은듯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유관 부문을 설득시킬 만한 유력한 증거를 끝내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기초 부분에 모래와 자갈이 깔려있다는 것은 그 곳이 바로 예전에 하천이였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나의 설득력 있는 해석에 유관 부문에서는 이미 발급한 토지사용증을 타당하게 처리하겠다고 태도표시를 했다. 나를 에워싸고 손가락질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며 보상을 요구하던 주민들도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2017년 8월, 두만강 남평제방 일터에서.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업의 수요로 나는 종종 송하평제방을 돌아볼 때가 있다. 그 제방에는 복구건설을 하면서 유관 부문과 현지 주민들, 그리고 일을 맡아하는 민공들과 토닥거렸던 많은 이야기들이 깃들어있다. 그 곳에만 가면 주민들이 나를 에워싸고 토지보상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정경이 떠오르고 유관 부문을 설득하려고 증거를 찾아헤매던 내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면서 감개가 무량하다. 세상에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곡식이 어디에 있고 마음을 졸이지 않고 쉽게 풀리는 일이 어디에 얼마나 있을가? 내가 겪은 일들은 건설공사 현장을 책임지고 일하는 사업일군들의 한토막 작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업에 몸을 담가온 지도 삼십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학교문을 나서고 사업에 금방 발을 들여놓은 량태머리처녀였던 꽃다운 시절, 제방공사 지휘부의 채소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울퉁불퉁한 수레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서는 자전거핸들이 비뚤어지고 무릎과 팔굽에서 흐르는 빨간 피를 보면서 그 자리에서 울음보를 터뜨렸던 내가 인제는 귀밑머리가 희슥해진 반백을 훨씬 넘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무례한 주민들을 상대하고 내 코가 더 크다고 우기는 유관 부문의 일군들을 상대하고 설계표준을 외면한 채 마음대로 공사를 추진하는 현장 민공들을 상대하면서 나는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모색해냈고 책에서 배운 리론지식과 현장에서 배우는 실제경험을 결합하여 나의 업무지식을 제고하면서 한보한보 성숙해왔으며 그 업무지식을 다시 사업에 응용하면서 내가 하는 사업에 애착을 갖고 정열을 쏟아바치면서 오늘의 나로 자리매김했다.

남성들에게도 힘에 벅찬 일터에서 녀성생리상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남성들과 어깨를 겨룬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였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오늘까지 용케도 잘 견뎌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고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즐거운 심정으로 하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업년한을 내 방식 대로 열중하면서 후배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전수해주고 내가 수집한 모든 사업 자료들을 하나하나 넘겨주면서 부끄럽지 않은 사업 일기장을 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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