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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102]처음으로 받은 표창장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20 12:16:14 ] 클릭: [ ]

제2회‘아름다운 추억’수기 응모작품(30)

▩김홍련(장춘)

복리공장에서 출납원으로 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왼쪽 두번째가 필자 김홍련)

젊어서는 희망에 살고 늙어서는 추억에 산다고 나는 가끔씩 옛날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고지식하고 내성적인 성격에다 매사에 소심한 나의 지나간 일들을 회억하군 한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기의 령혼이 녹아들어가야만 잘할 수 있듯이 나는 로동자로부터 창고보관, 출납원으로 일하면서 차례지는 직업을 천직으로 삼고 즐겁게 일했을 뿐 직무의 편리를 리용하여 제 리속을 채운 적은 한번도 없다.

어느 해 겨울 밤새 펑펑 쏟아진 눈에 나무가지가 끊기고 전선대가 넘어지면서 교통이 마비되고 뻐스도 통하지 않게 되였다. 그러나 고지식한 나는 여전히 출근하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무릎까지 오는 눈을 헤치면서 두시간 넘게 기다 싶이 걸어서야 공장에 도착하였다. 굳게 닫힌 공장 대문 앞에는 공장 부근에 사는 공장장이 서계셨는데 눈사람이 된 나를 보고 놀라셨다. 하기야 백여명 되는 로동자들 가운데서 유독 나만이 공장 대문 앞에 나타났으니.

1990년, 새로 건립된 연길쌍부축복리공장에서 출납원으로 있을 때였다. 이름 그대로 연변주민정국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곤난호를 부축하고 복리하는 민정국 산하의 작은 공장으로서 20여명 로동자들 가운데서 반수 이상이 벙어리가 아니면 지체장애인이였다.

공장에서는 구입한 옥수수를 분쇄기로 가공한 다음 기타 사료를 배합하여 닭사료를 만드는데 일부는 우리 공장에서 꾸리는 양계장에 보내고 나머지는 연변 각 지방의 사료상점에다 팔았다.

첫해에는 말린 옥수수를 구입하였는데 원가가 너무 높아 리윤이 없었다.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가을에 수분은 많지만 값이 저렴한 옥수수를 대량 구입하여 창고에 쌓아놓고는 사료가공을 하는 로동자들이 얼마씩 공장 마당에 펴서 말리운 다음 가공하였다.

그 해 여름 어느 날, 다른 단위의 운동장을 빌려서 전해에 사들인 옥수수를 대량으로 펴서 말리우는데 마침 공장장이 3일 동안 외지로 회의하러 가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 저녁 천기예보에서 앞으로 3일 동안은 큰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예전에 량식창고에서 보관원으로 일한 적 있는 나는 거의다 마른 옥수수라 해도 비에 젖기만 하면 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떠서 곰팡이가 낀 옥수수는 사료를 만들 수 없기에 만약 옥수수가 비에 젖으면 공장에서는 숱한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이 불보듯 번했다. 공장장도 안 계시고 나어린 총각회계는 이 방면에 문외한이다 보니 나는 밤새 운동장에 널어놓은 옥수수가 걱정되여 자다가도 몇번이나 일어나서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 때문에 잠을 설친 남편은 공장의 간부도 아닌 당신이 웬 걱정이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는 비록 공장의 출납원으로서 보통직원에 불과했지만 사명감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는 직원들과 로동자들에게 사태의 엄중성을 간단히 설명하고 공장장이 안 계시니 직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장애인 로동자들과 림시로동자들을 이끌고 옥수수를 비 오기 전에 걷어들이자고 동원하였다.

처음에는 누가 일개의 보통직원인 내 말을 듣겠는가고 우려심도 많았지만 평소에 장애인들과 가까이 보내면서 잘 보살펴준 까닭이였던지 생각 밖으로 장애인들까지 선뜻 내 말에 호응하면서 옥수수 걷어들이는 작업에 나섰다.

무더운 삼복철에 넙적한 가래로 마당에 널어놓은 옥수수를 모아서 마대에 퍼넣고 동여맨 다음 운동장에 가로세로 철길 밑에다 까는 통각목을 깔고 그 우에다 옥수수마대를 쌓아야 하는데 남자들도 하기 힘든 중로동이였다.

어떤 직원은 한번도 해 못 본 일을 공장장도 아니면서 시킨다고 시큰둥해하더니 오후에는 아예 쌓아놓은 마대 옆에서 쿨쿨 자는 것이였다. 나는 비가 오기 전에 옥수수를 다 모으지 못할가봐 속이 타는데 참 기가 막혔다.

어떤 일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 절박감 때문에 몸 어딘가에 잠재해있던 무서운 에너지가 특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화산이 폭발하듯이 폭발한다고 누가 얘기하다 싶이 원래 고지식한 데다 성격까지 내성적이여서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내가 공장장 대신 20여명 직원들과 로동자들을 이끌고 하루 사이에 그 많은 옥수수를 걷어들이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평소 몸이 허약한 내가 몸을 내번지고 가래로 옥수수를 모으고, 마대에 퍼담고, 둘이서 130근 되는 옥수수마대를 건뜻 들어올리고, 하여간 어느 곳에 일이 딸리면 그 곳에서 일하면서 로동자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켰다.

나와 로동자들이 일치 단결하여 찌물쿠는 날씨에 땀동이를 쏟으면서 억척스럽게 일한 보람으로 해질녘까지 넓은 운동장에 널어놓았던 그 많은 옥수수를 몽땅 마대에 넣어 차곡차곡 쌓아놓고 방수포까지 잘 덮어놓을 수 있게 되였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아닌 게 아니라 초저녁부터 천둥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쏟아지기를 시작하여 3일 동안 련속 큰비가 내렸다.

공장에서 입을 막대한 손실을 제때에 막아낸 나는 공작에 참가한 이래 처음으로 선진생산자로 되여 년말에 연변조선족자치주민정국에서 발급하는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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