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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복식문화의 전승을 운명으로 삼고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7-26 16:37:04 ] 클릭: [ ]

2017문화부 무형문화유산 전승인 연수훈련계획-길림성조선족복식문화전승과 혁신디자인훈련반 특별초청 전문가로

“옷이 날개”라고 했다. 그만큼 옷은 하나의 품위이면서 한 민족에게는 문화이고 령혼이며 기상이다.

2008년 중국조선족복식(服饰)이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고 연길시성월민족옷공장이 그 보호단위로 선정됨에 따라 대표성 전승인의 일원으로 된 최월옥 공장장은 더 없는 영광과 자부심을 안고 그 사명을 다 하기에 혼심을 몰부어 왔다.

뿌리깊은 민속기예

외할머니가 베틀에 올라앉아 일손을 다그칠 때면 ‘짱-짱-’ 가락 맞는 베틀 소리가 어찌나 신나게 들리는지 길 가던 길손들도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손재간을 닮은 어머니 역시 손바느질에 능해 온 집안 식구들의 옷가지며 동네 군일집 전통복장은 도맡아 하군 하였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의 일손을 거들며 한복 짓기며 베개머리와 방석, 담배쌈지 같은 혼수품을 만드는 일들을 배웠다.

어머니는 윤두로 첫날 색시 옷고름을 반듯하게 다리미질 하면서 늘 아홉살 나던 해로부터 3년간 저고리고름에 비밀쪽지를 넣어 지하당조직원에게 넘겨줌으로써 마을사람들을 일본놈들의 토벌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그는 저고리고름에 각별한 정을 느꼈고 민족복장을 사랑하게 되였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민속적인 것이 미신취급을 받고 민족적인 것이 하나같이 무시되던 시기가 지나가자 그는 발 빠르게 민속혼수품 가공을 시작하였다. 남편이 만들어 준 윤두 다섯개가 식을 새 없이 밤낮으로 베개잇 주름이며 너울넷을 곱게 주름 잡아나갔다.

198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35주년을 맞는 연길서시장 최월옥한복매대 정경(자료사진)

 신화사 기자 원조의 찍음

1985년경 연길 서시장이 문을 열자 첫사람으로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받쳐입고 매장에 나서서 첫날옷이며 혼수품을 경영하였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조선족전통복식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만족주고저 1991년 7월 26일에는 연길시성월민족옷공장을 설립하고 기계화작업으로 생산능률을 높였다. 나중에는 염색공장까지 앉히고 우리 민족이 즐기는 찬연한 색상으로 전통복장, 공연복장들을 만들어 내면서 전국 나아가 세계에로 복사망을 펼쳤다.

이리하여 개인 맞춤복은 물론 크고작은 사회단체며 학교, 단위에서 주문하는 집단무용 공연복장을 지체없이 소화해냈고 지어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20부작 드라마 《풍설속의 진달래》(2005년) 촬영복장도 전담해 나섰다. 연변가무단 《춘향전》무극이며 《장백정》(1997년)무극 복장도 제한된 기간 내에 완벽하게 제작하여 국가문화부 금상을 수상하는 데 이름없는 기여를 하였다.

특히 북경올림픽 개막전 연변가무단에서 출연한 《연변의 여름》(2008년 6월)공연 부채춤, 북춤 복장과 도구들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맞춰 그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는데 '올림픽은 당신이 있어 더욱 정채롭습니다'라고 쓴 금기를 증정받았다. 그리고 2012년 왕청현 상모춤 세계 기네스기록 도전에서 5일내에 1050벌에 달하는 복장을 설계 제작하여 또 다른 기록을 올리기도 하였다.

2004년 전국모델대회에 올린 '진달래'복장을 비롯하여 35차의 설계상을 수상

오로지 우수한 민족복장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고도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수십년을 하루 같이 일해 가노라니 그는 어느덧 “설계의 달인”이 되였다. 중국강도국제민간가무경연(2003년 10월 江都国际民间舞蹈邀请赛)의 금상작품 '농악무’의 복장 설계를 전담하여 절대적인 긍정을 받았고 대련시무용가협회에서 조직한 전국모델대회(2004년)에서 그가 설계한  '진달래'복장설계는 은상을 받았으며 '물동이춤' 복장설계 등 수십가지 설계상을 수상하였다.

사명과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2009년경 북경민족전람관에는 《최월옥은 어머니 김정희로부터 조선족전통복장을 짓는 기예를 배워 점차 조선족전통복식제작능수로 성장하였으며 오늘에 이르러 전심으로 후대양성에 심혈을 기울려 다종다양한 형식의 기능양성반을 조직할 뿐더러 아들 며느리와 제자들을 제4대, 제5대 전승인으로 키우는 조선족복식문화의 걸출한 전승인으로 되였다》는 내용의 편액과 사진들이 전시되였다. 

사회의 긍정은 그에게 지대한 힘을 실어주었다. 2009년 11월, 중국문련과 문화련합계에서 거행한 “중국민간복식과 문화유산 구급 프로젝트 성과전”에서 그는 표현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아들 박홍국과 함께 특수공헌상을 수여받았다.

며느리 우련화는 또 연변조선족자치주조선족전통복식 전승인으로서 국가민족사무위원회와 문화부에서 조직한 《중국소수민족비물질문화유산전시주》 (2013년 12월) 활동에 참가하여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문화사로부터 증서를 수여받았다. 아들 며느리는 전통복식의 계승사업을 활기차게 전개하고 있는데 올해 4월 남방에까지 가서 “문화의 고향 매력연변”이라는 타이틀아래 중국조선족문화산업전시를 하여 인기몰이를 하였다.

최월옥 전승인은 현재 사단법인 글로벌여성경제인련합회 부회장 직책도 떠메고 있다. 그는 장춘차세대교육훈련센터 CED양성 워크샵에서 중국조선족녀성경제인의 날로 높아지는 사회적 역할을 선전하였으며 련속 3차 한국 서울로년문화예술축제행사에 참가하여 조선족전통복식의 특색과 우수성을 선보였다.

장춘 제2차 중국조선족전통문화계승발전포럼에서는 22명으로 된 예술단 공연으로 조선족전통복식을 전시하고 《조선족복식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관하여》라는 론문도 발표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교육부, 길림성문화청에서 길림예술학원에 위탁하여 조직하는 《조선족복식문화 전승과 혁신디자인양성훈련반》에 특별전문가로 초청되였고  올 4월부터는 또 연길시직업고급중학 전통복식양성훈련 지도를 맡아가며 사회적으로 후대양성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복식위원회 주임으로 활약해온 그는 우리 민족 복식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과학적인 치수와 공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연변지역 전통복식의 지방표준을 내오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지난해 도문시에서 중국조선족무형문화유산전시관을 재정리하는데 조선족복식에 관련한 일체 복장을 무료로 제공하였으며 수십년간 발굴, 소장해두었던 친인들의 수의며 디딜편, 혼서 등을 무료로 제공하였다.애심 지원과 헌신은 그의 일상으로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2년이면 연길시성월민족복장공장은 30주년을 맞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인 조선족전통복식의 전통적 현대적 예술적 실물전시를 전면적으로 할 계획이며 걸어온 창업사를 펴내 후세대들에게 훌륭한 교재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연길시직업고급중학교 전통복식양성훈련지도에 나선 최월옥 전승인(뒤줄 첫사람)

또한 그의 두손으로 설계한 200여가지 복장설계도와 술어, 기본표준치수, 지방표준치수, 마름법, 바느질법 등을 수자적으로 리론적으로 종합한 책자를 출판하여 아들 며느리에게 정중하게 넘겨줄 것이란다. 전세대 전승인이 후세대 전승인에게 “잘 부탁합니다” “잘 전승하겠습니다” 숭엄한 마음으로 주고 받는 그 순간은 어쩌면 장엄할지도 모른다며 저으기 격동된 최전승인의 어성은 떨렸다.

때로는 '먹고 살 걱정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여태껏 왼눈 한번 판 적 없이 오로지 우리 민족 복식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업에 일생을 바쳐온 그로서는 이만큼 보람되고 의의있고 행복한 일이 따로 있을가 싶기도 하다고 한다, 역시 이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는 이미 70세도 넘었다. 하지만 후대들에게 넘겨 줘야 할 일들은 끝이 없이 많다고 한다. 우리 민족 복식문화사업은 앞길이 창창하다며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의식이 있는 한 귀중한 우리 민족 문화유산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켜가는 일에 여생을 깡그리 바칠 것이라 그는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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