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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남땅에 활짝 핀 ‘아리랑’의 꽃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6-19 10:28:09 ] 클릭: [ ]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최선자교수에 대한 이야기

오페라가수이며 서남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인 최선자씨

지난 6월 6일, 사천성 수부 성도에 자리 잡은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금운루음악청은 예술에 지향을 둔 젊은 대학생들과 국내 각 지역의 음악전문가들, 서울, 도꾜, 빠리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이였다. 연변에서 태여난 오페라가수이며 서남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인 최선자씨의 세번째로 되는 독창음악회가 막을 열게 된 것이다.

독일 로베르트 슈만의 <헌정>,  이딸리아 푸치니의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와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프랑스 조루주 비제의 <에스빠냐 세레나데>,  중국가극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다>중의 <불행한 인생> 등 11수에 달하는 아리아와 가곡은 관중들을 클래식음악의 서정적인 경지에로 끌어올렸고 최선자의 가창력은 여러 음악전문가들의 절찬을 받았다. 우리말 창작가곡  <어머니>에 이어 우리 민족 민요  <아리랑>으로 마무리를 지은 음악회는 사천성에서 활약을 보이는 유일한 조선족 가수로서의 최선자씨의 사명감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연변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왕청현 대흥구진에서 7남매중 막내로 태여난 최선자는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꽃을 피워주는 꾀꼬리소녀였다. 소학교시절 학교 방송에서는 매일이다 싶이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모내기철 논두렁에서도 선자의 노래소리가 주변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군 하였다.  노래가 입에서 떨어질 새 없었던 어린 선자에게 엄마는 여유 없는 살림임에도 늘 이쁜 치마저고리를 입혀서 내보냈다. 한복이 낯설었던 성도땅에서 늘 우리 민족 의상으로 무대에 서는 최선자의 마음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시절 전 주 노래콩쿠르에 왕청현 대표로 참가하게 된 선자는 우연히 왕청현5중 음악교원이였던 전세문선생님의 눈에 들게 되여 문체반에 입학하게 되였다. 1982년에 연변대학 예술학부 성악반에 입학한 그는 려채옥, 렴명자 선생의 제자로 3년간 전문적으로 성악을 배웠다. 그 후 1985년부터 4년간 중앙음악학원 성악계에서 진림교수의 제자로 성악공부를 하면서 최선자는 클래식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오페라 <마농레스코> 중에서

1989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분배받은 그는 성악교연실 주임을 맡으면서 강단에 서는 한편 자신의 가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여러 문예프로를 통해  <참돌꽃>(임효원 작사, 최삼명 작곡),  <같이 가자>(김성휘 작사, 김예풍 작곡),  <해바라기>(김성휘 작사,  고창모 작곡) 등 40여곡의 노래를 불렀으며 음악서사시  <고향의 빛보라>(연변텔레비죤방송국 제작) 에도 출연하여 연변 각지의 안방극장에서 서정가수로 인기를 모으게 되였다.

오페라에 꿈을 실었다

후대 양성과 자신의 가수활동에서 인정을 받으면서도 항상 채워지지 않은 듯한 꿈의 빈자리를 느끼군 했던 최선자씨였다. 더 늦기전에 오페라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망이 나날이 간절해졌다. 작곡가인 남편과 함께 한국에 류학을 떠나려는 선자에게 어린 아들 주현이가 걸렸다.

2년 동안의 고민 끝에 아홉살난 아들애를 이끌고 2000년 7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근 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1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오페라 성악과에 첫 류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최선자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메조소프라노 김청자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였다.

한국에서 유일하고 또 세계적으로도 희소한 예술종합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한국인 학생들도 견디기 어려워하는 난관대학이였다. 20대의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듣는 강의는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이미 30대 중반에 들어선 외국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두배, 세배로 노력을 해야 했지만 오페라에 대한 애정만은 그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독일어, 프랑스어 발음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군 했던 수업시간조차도 그에게는 너무 보귀했다.

매일 왕복 3시간을 전철에서 보내야 했던 선자는 지하철 안에서 아리아를 들어야 했고 길을 걸으며 외국어로 된 가사를 외워야 했다. 악보 암기, 오페라 배경에 대한 료해, 음반과 비디오 감상…오페라에 대한 갈망이 그를 학업에 깊숙히 빠져들게 하였다.

모든 시간을 오페라로 메워서라도 제대로 배우고 싶은 그에게 시간과 정력, 그리고 재력이 딸렸다. 게다가 아들애를 똑똑하게 키우려는 엄마로서의 선자에게 자신의 학업과 동시에 아들 주현이의 성장도 절대 홀시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였다. 때로는 심하게 상처 입은 마음과 아들애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한강을 마주하고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른다.

김청자교수(가운데)와 남편 김예풍씨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공부중이였던 남편과 그 자신의 학비, 그리고 한국  <<소년동아>>  신문에 산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KBS방송국 어린이 프로  ‘저요! 저요!’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는 대견한 아들 주현이의 교육비는 수업이 없는 날에만 가능한 아르바이트 수입만으로 도무지 감당이 안되였다.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와 그의 남편은 체념을 결심했다. 하여 두 부부가 원만히 석박사공부를 끝마칠 무렵에는 이미 연길에 장만했던 두채의 집을 판 후였다. 그야말로 집 두채로 바꾸어온 학위증서이기도 했다.

재산에 굽을 내면서 석사연구생공부를 하는 동안 베르디 오페라 <라보엠>의 무젯타역, 한국 오페라 <봄 봄 >의 주인공 순이역을 담당하였고 담당스트라우스의  <박쥐>와 도니젯디의  <사랑의 언약>,  베르디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 참가하여 소프라노의 기량을 닦은 최선자는 지도교사 김청자교수로부터 오페라의 관건적인 기본요소인 표현력과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1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크누아홀에서 졸업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최선자는 2004년 2월에 오페라성악전공 예술전문사 과정을 원만히 마치고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새로운 기점, 전수의 길

인재인입정책 실시중이였던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최선자부부에게 소수민족음악연구 방면에서 힘을 합칠 제의를 해온 것이 2004년 12월, 지인한 명 없는 낯 설고 물 설은 성도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그들 부부는 서남민족대학에 처음 발을 붙인 조선족이였다.

오늘날 성악교수로 자리 잡은 최선자는 본과생 교수에서 새롭게  ‘무대표현과’를 설치하여 독창과 중창에서의 무대표현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도 심혈을 몰부었고 연구생 교수에서는  ‘음악언어전문연구과’를 설치하여 오페라에서 필수인 독일어, 이딸리아어, 프랑스어 발음 기본훈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서남민족대학 예술학원 력사에서 공백이였던 학과로서 성악교육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근 14년간 최선자교수의 슬하에서 기본공을 익히고 졸업한 후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소프라노, 테너, 바라톤, 메조소프라노가 무려 1,000명을 넘는다.

최선자에게는 또 자기만의 교수색채가 있다. 그는 벨칸토창법을 우리 민요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조선민족 민요와 조선족 가요를 가르치고 있다. 음악회 당일 뒤풀이 연회장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최선자 패밀리들이 <아리랑>을 합창했다. 고요한 성도의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민족의 가락에 온몸이 전률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최선자교수

최선자는 때로는 회초리를 드는 스승이고 때로는 가슴으로 안아주는 엄마이다. 해마다 연구생제자들의 졸업연주회를 위해 하나하나  구석을 살피고 빈틈을 메워야 한다. 또 국내외에서 열리는 성악콩쿠르에 학생들을 떠밀어 성과를 거두게끔 지도하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고 있다.

2018년 향항국제성악공개콩쿠르에서 1등상, 제6차 ‘신주창향’고등학교 예술학원 성악콩쿠르 클래식조 금상, 2017년 제8차 전국고등학교 오페라성악전 및 제2차 국제대학생오페라성악콩쿠르 은상, 제8차 향항국제청소년예술절 성악청년 A조 1등상, 2016년 ‘청춘중국' 성악콩쿠르  1등상 등 최교수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한편 여러차례 사천성으로부터 고등학교 우수예술지도상을 수여받았고  2017년 제2차 국제대학생오페라성악콩쿠르 우수지도상, 2016년 제5차 ‘공작새컵' 전국고등학교 예술원 성악콩쿠르 우수지도교원상 등 30여차의 영예를 받아안은 최선자이다.

그의 제자중에는 이딸리아 만토바음악학원에 수석으로 입학한 탕양양, 독일 마루틴 루터대학 음악학 석사를 마친 후 독일 올덴부르크대학에서 음악박사 공부중인 리양춘호,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서 음악박사 공부중인 쭈거휘 등이 들어있다.

독일 마이닝 겐극단 테너 허창과 함께

국제오페라교육학회 회원, 사천성음악가협회 회원,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상무리사인 최선자는 제8차 전국고등학교오페라성악전 및 제2차 국제대학생오페라성악콩쿠르 심사위원, 제11차 중국음악 금종상 사천지구 심사위원, 제5차 중국민족성악 ‘돈황컵' 서남지구 심사위원, 전국고등학교 사천성 예술성악 통일시험 심사위원 등 중임을 맡아왔다. 그는 다년간 지속해온 전문연구과제인  <오페라성악표현>과  <민족성악리론>의 연구 성과로 저작  <<가창예술의 리론과 실천>>을 출판한외에도 수십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가 집필조사에 참가한 저서 <<중국챵족민족연구-성악악보자료집>>은 사천성 14차 사회과학 우수상을 획득했다.

조선족 가수로 서남지구에 널리 알려져

2006년 제5차 사천성소수민족예술절에 참가하여 가곡 <아리랑요>(김예풍 작사/작곡)를 불러 연기부문 성악 1등상을 받은 최선자는 가수생활을 중단한 적이 한번도 없다. 지난 십여년간 서남지구 소수민족예술단체 활동에서 조선족 가수로서의 최선자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이미 백여차의 공연실적을 가진 그는 대외적인 무대에서 한복을 몸에 지니고  <아리랑>, <사과배 따는 처녀>, <밀림은 푸른 바다 나는 갈매기>  등 우리 민족의 노래를 부를 때면 또다른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최선자

조선족 소프라노가수인 최선자에게는 한국, 일본, 대만, 타이의 팬들도 있다. 2006년 11월, 서남민족대학 예술단 일행으로 대만의 여러 소수민족지구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관중들의 열광에 되려 깊은 감동을 받았다. 또 2007년 8월, 일본 치바켄에서 열린 소프라노  최선자음악회 ‘오페라와 첼로의 만남'에서 모자르트의  <사랑의 신이여> 등 9곡의 아리아를 부른 최선자는 공연이 끝난 후 “아주 성실하고 확실한 노래소리, 아리아를 부를 때의 휘둘림과 비슷한 몸짓, 그 가창력에 마음이 흥분되였다”, “귀에 쟁쟁히 여운으로 남는 최선자씨의 목소리는 첼로와의 앙상블로도 훌륭했다” 등 관객들의 팬레터 20여통을 받았다.

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 가장 감사한 일, 가장 행복한 일…

한국에서 공부하던 시기 감기로 고열을 앓으면서도 의사한테 기어코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먹는 약만 달라고 부탁을 했던 아들 주현이가 다 나은 후에야 “우린 돈을 절약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갑자기 엄마, 아빠의 공부 때문에 한국에 데리고 갔어도 너무나 잘 적응해준 주현이, 5년 동안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를 떠나 또 갑자기 엄마, 아빠를 따라 낯설은 성도땅에 와서 외국어처럼 알아듣기  힘들었던 사천방언의 시달림을 용케도 견뎌내고 훌륭하게 커준 아들이 늘 가슴 아프다는 최선자, 또 항상 당연하듯이 그늘이 되여주는 남편이 감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오페라를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최선자이다.

/글: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사진: 김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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