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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민들도 사모하는 별의 시인 윤동주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1-30 20:43:44 ] 클릭: [ ]

-재일 윤동주 연구 학자 박은희씨로 듣는 일본에서의 윤동주붐과 그 연구

교또조형예술대학(윤동주 하숙집이 있던 곳)에 세워진 윤동주시비 앞에서

“최근년간 일본 오사까와 연길을 직통하는 비행기가 생겨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언제부터 연변으로 향하는 일본고객들이 이렇게 많아졌지’싶어 비행기 안을 둘러보면서 ‘윤동주의 고향을 찾아가는 모임’까지 생겨 나는 일본의 윤동주붐에 자연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인 재일 윤동주연구학자 박은희씨는 윤동주 탄생 100돐을 맞는 올 한해에 자주 고향 연변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윤동주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고향’에서 윤동주와 같은 세계적인 시인이 탄생한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안고 일본에서 이는 윤동주붐에 대해 귀맛 좋게 들려주었다.

인연지들에서의 기림활동

우선 윤동주와의 인연지들에서는 해마다 윤동주의 탄생일이며 서거일 또는 체포일과 같은 특정날자를 좌우하여 대량의 추모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42년 윤동주가 류학의 첫발을 들여놓은 도꾜 릿꾜대학 캠퍼스에서는 릿교시절에 쓴 《쉽게 씌여진 시》를 비롯한 시편들로 랑송대회를 열고 추모행사를 벌리는가 하면 윤동주가 교또로 학교를 옮겨 주숙했던 다께다아빠트자리 교또조형예술대학캠퍼스(2006년“윤동주 유혼지비” 세움)에서는 또 100명, 200여명씩 모여 대형헌화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교또 도시샤(同志社)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에서도 2월 16일 윤동주 서거일을 기념하며 해마다 추모행사를 조직하는데 이 캠퍼스에는 1995년도에 벌써 윤동주시비가 세워졌다.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서로 통혼도 안하는 한국인과 재일조선인들마저 합심하여 일본인들과 함께 윤동주시비 건립에 일떠섰다고 한다.

명동학교에서 있은 중일문인 윤동주기림행사에서 사회를 준비하고 있는 박은희씨.

당시 사회적으로 이 같은 큰 사건이 벌어지자 일본의 NHK 공영텔레비방송국에서는 한국의 KBS방송국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스페셜을 제작하게 된다. 이 스페셜을 제작하면서 일본 기자들은 윤동주의 형무소 안에서의 생활과 판결문의 내용을 공개하고 도시샤대학 급우들과 함께 우지강가에서 송별회를 가지고 또 아마가세 구름다리 우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기는 등 세세한 내용까지도 밝혀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일반 시민들은 저항시인 윤동주가 누구이며 일본에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는데 스페셜을 통하여 윤동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윤동주의 시에 빠져들게 된다.

윤동주가 마지막 사진을 남겼던 바로 그 우지(宇治)강가에 올 10월 28일, “기억과 화해의 비”라는 윤동주시비가 세워진다. “윤동주시비건립위원회”라는 시민단체는 2005년에 건립되여 모금과 시비제작, 정부로부터 설립지를 허락받아내기까지 옹근 12년동안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해왔던것이다. 그날도 우익세력의 검은 차량 두대가 먼 발치에서 “감시”하는 속에 시비건립의식이 치러졌다고 한다.

윤동주가 2년 유기형을 받고 수감되였던 후꾸오까형무소 앞에서도 해마다 추모행사가 이어지는가 하면 인연지가 아닐지라도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로 일본 곳곳에서 크고 작은 모임들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올 8월 박은희씨의 안내로 윤동주의 고향을 찾은 일본 문인들 명동학교 윤동주교실에서 윤동주의 시를 랑송하고 있다.

오사까에는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고 또 윤동주의 시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조선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 가운는데는 정장(丁章)이라는 재일조선인 3세가 있다.그들은 올해 8.15광복의 날 윤동주의 탄생 100돐을 기념하며 모처럼 룡정 윤동주의 생가며 윤동주의 묘소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서시’를 읊조리기도 하였다.

윤동주붐이 가열되면서 지어 윤동주를 “잘생긴” 여느 '아이돌'인 줄 알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겨 대중화의 위험요소를 잉태하고 있다고 박은희씨는 우려하고 있엇다.

일본어 번역시의 흐름과 그 연구

윤동주붐의 글로벌화와 대중화를 두고 심각한 의무감을 앞세우고 있는 박은희씨는 윤동주연구의 순결성과 다각적이고 립체적이며 깊이있는 연구를 주장하고 있다.

윤동주시의 일본어 번역사를 뒤돌아보면 1980년대에 녀류시인 이바라키노리코씨가 윤동주를 소개하여 쓴 글과 몇편의 시를 번역한 것이 일본고등학교 국문교과서 “현대”에 실리면서 많은 젊은층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1984년도에는 이부끼고우씨에 의해 전시집이 단행본으로 번역출판된다.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윤동주의 생가를 찾은 박은희씨(왼쪽 두번째)

그에 앞서 일본에서 윤동주시가 번역되기는 1955년 재일본 조선인 허남기시인이 윤동주의 시 “흰족속”을 비롯하여 민족주의사상과 관련된 저항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일찍 일제시대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조선문시를 일본어형식으로라도 남겨보려고 모지름을 쓴 김소운과 같은 시인들이 조선어시를 주로 의역의 방법으로 옮겨놓았다.

광복후 한동안도 한국시가 같은 방법으로 의역되여 옮겨졌으나 윤동주의 시는 주로 직역의 방법으로 번역되여 조선시의 일본어 번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고 박은희씨는 지적한다.

그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부끼고우씨가 윤동주의 시를 접하면서 일본인이라는 우세로 허가없이 “독립운동관련” “치안유지법위반협의”로 된 판결문의 내용을 밝혀낸다. 그는 판결문을 몰래 화장실에 갖고 가 사진촬영을 하여 자료를 남기며 후날 한국의 윤일주교수(윤동주의 동생,서울대학교 교수)에게 넘겨 윤동주가 한국문학사상 “저항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유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1977년도에 도시샤대학의 우지고우 교수가 처음으로 윤동주에 대한 소개와 한국에서의 윤동주 관련 론문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한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와세다대학의 오오무라마스오교수를 비롯한 연구가들이 윤동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오면서 주로 “저항시인으로서의 윤동주”를 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연구가 깊어지면서 “이토록 위대한 세계적인 시인을 ‘저항시인’이라는 하나의 틀에 가둔다는 것은 너무나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는 각성을 가진다.

윤동주가 마지막 사진을 남겼던 우지강가에 올 10월 "기억과 화해의 비" 윤동주시비가 세워져 제막식에 참가

이리하여 윤동주의 기독교적 사상에 관련된 시편에 대한 심각한 해석과 동시창작에 대한 분석 등으로 연구는 폭을 넓혀가며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권의 책자들이 번역출판된다. 윤동주처럼 한 시인의 시가 여러 사람들의 손에 의해 여러권의 책자로 번역출판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였다. 

“윤동주의 동시는 주로 명동이나 룡정 시절에 쓴 것이 많은데 거기에는 북간도'지역의 사투리나 방언들이 많아 일본어 번역에서 신통치 못한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또 윤동주 연구에서 흔히 윤동주가 한국에 머문  1938년 후의 시편에 많이 주목하면서 그 이전의 작품 특히 그의 동시 부분은 윤동주 시창작의 퇴행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윤동주의 동시창작은  1930년대 세계 모더니즘시운동의 영향하에서의 윤동주 나름대로의 실험'이였고 그 후의 비약을 위한 충분한 준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영국에서 출판된 “동시대 일본에 있어서의 다종다양한 번역커뮤니티”라는 론문집에서 윤동주 시의 일본어번역과 윤동주연구에서의 다각적인 주장을 주도면밀하게 피력하면서 세계적 영향을 펼치고 있었다.

“동시창작에서 보면 윤동주의 익살궂은 인간성이 보여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윤동주를 연구함에 있어서 그의 인간성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역시 하나의 처녀지가 아닐가 싶습니다.”

그녀는 윤동주연구에서의 지역적인 한계와 공백점도 짚어 가면서 “위대한 별의 시인” 윤동주의 시세계에 대한 보다 완정한 연구와 그의 문학정신을 세상 널리 전해감에 있어서 “고향”의 동참은 불가결의 요소라고 강조한다.“우리 고향에서도 연변대학을 중심으로 전문가적 연구대오를 결성하고 윤동주를 통한 아세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을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앞장서자”고 그녀는 적극 권장하고 있다.

[박은희 프로필]

1989년 연변대학 조선문학부 졸업

2004년 오오사까대학 문학연구과 졸업 문학박사학위 취득

2004년부터 현재 오오사까대학 외국인초대연구원을 거쳐 불교대학 강사 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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