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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 설립 20년을 맞으며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7-17 17:12:42 ] 클릭: [ ]

올해 8월이면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가 설립된지 20돐이 된다.

지나온 20년을 돌이켜보느라면 실로 감구지회가 깊다.

중국대지에서 처음으로 창설한 조선족바둑협회가 고고성을 울릴수 있은것도 대견스럽지만 20년세월 꿋꿋이 지탱해온것 또한 가슴이 뿌듯하다.

그동안 웃음과 기쁨도 많았지만 눈물과 슬픔도 없지 않았다. 한시도 뜻을 굽힌적은 없었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고 애로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바라던만큼 혁혁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희열과 긍지를 느꼈고 희망과 신심을 안아왔다.

바둑은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의 보귀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바둑은 오락이나 경기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고 예술이며 과학이다. 바둑활동은 대중의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고 정신문명건설을 촉진하며 민족의 자질을 제고하는 하나의 훌륭한 수단이다. 그런데 당시 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 바둑이 소외당하고 전국적으로 볼 때 다른 민족보다 훨씬 뒤떨어진 《황무지》상태에 처해있었다. 그래서 안타깝고 원통하게 생각한 우리는 바둑을 대중적으로 보급시키고 바둑문화를 발전시키는것 역시 우리의 천직이요 사명이라 생각하고 자진하여 바둑사업에 몸을 담그고 지난 세기 90년대초부터 팔을 걷고 나섰다. 그 첫 걸음으로 바둑단체를 꾸리게 되였다.

1992년 1월에 장춘에서 길림성 조선족의 첫 바둑대회를 열고 대회기간에 바둑협회를 설립할것을 제의하자 장춘, 길림, 연변, 통화 등지에서 모여온 바둑열성자들이 모두 일치하게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를 설립하는데 찬성하였다. 우선 38명의 리사를 확정하고 9명의 책임자를 선출하여 림시지도부를 구성하였다. 그때로부터 1년여의 꾸준한 노력끝에 1993년 8월에 길림성체육총회의 허가를 받고 법인단체인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가 걸어온 20년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 협회를 물심량면으로 도와주신 여러분들을 잊을수 없다. 우리 협회가 20년동안 줄곧 성장해올수 있었던것은 바로 그런 분들의 공로가 아닐수 없다.

우선 바둑문화를 중히 여기시고 우리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해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협회의 성장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신 협회의 책임자와 열성자들을 잊을수 없다.

통화의 김광우선생님은 우리 협회의 창시자의 일원으로서 바둑대회때마다 재판장으로 수고가 많았을뿐만아니라 개인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통화와 선인교에서 두차례의 바둑대회를 조직하였다. 반석의 류성윤선생님과 리리교선생님의 주선으로 제1회 로인바둑대회와 제1회 어린이바둑대회가 개최될수 있었다. 연변의 김송해, 오국태, 정기룡, 장하진, 윤석걸, 박충식 등 선생님들은 선후하여 네차례나 연길에서 바둑대회를 열었을뿐만아니라 개개인의 용돈을 모아 자비로 제14회 로인바둑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단동의 김려삼선생님과 심양의 로성호, 김병오 선생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단동에서의 제10회와 심양에서의 제12회 로인바둑대회가 열릴수 있었다. 그리고 장춘의 박윤식회장과 류하의 권태선선생님들 또한 열성적인 참여자이며 책임심이 드높은 조직자들이다. 바둑대회에 참가하는 로인님들의 성심은 대단하다. 단동의 김려삼로인은 지금까지 바둑대회에 한번도 빠진적이 없으며 한번은 늦어서 기차를 놓치자 단동에서 심양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를 따라잡았다. 청도의 조병학로인은 거의 매달마다 한번씩 전화로 바둑대회를 언제 하느냐고 문의하는가 하면 한번은 단동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기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기도 했다. 이미 작고하신 원시희, 류성윤, 김송해, 장하진, 오국안 등 선생님들은 오늘도 아마 저 높은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보시며 바둑협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계실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협회의 성장에서 고문님들의 역할이 컸다. 길림성인대의 리정문주임은 우리의 청을 쾌히 수락하고 고문을 맡으신 후 바둑대회때마다 친히 참석하셔서 많은 고무격려를 주셨다. 성당위 선전부 전임 부부장 궁극고문은 바둑대회에 친히 참석하거나 제사를 보내여 지도한외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바둑을 론함》이란 론문을 발표하여 우리 협회의 리론강령과 행동지침이 되게 하였다. 민족문화사업에 남달리 정열적인 변철호고문은 우리 협회의 유력한 후원자가 되여 제2회 로인바둑대회와 《로인문고》컵 바둑대회를 개최하게 하였다.

그 다음, 민족문화를 관심하는 각 분야의 많은 분들의 지지와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길림성민위의 강광자주임, 최수남 전임 처장과 김성춘 전임 처장, 장춘시민위의 함영일부주임과 김병환 전임 서기 등 각급 민족사무위원회의 지도자들은 바둑문화를 민족문화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바둑대회에 경비를 내려보냈다. 장춘 룡산실업의 서룡운리사장, 대화그룹의 리규광리사장, 한국기업인 최원표총경리, 길림맥주공장의 박승렬공장장, 연변바둑협회의 동권회장, 천재바둑의 김광재원장, 성도록색산업회사, 단동 가나안농군학교의 김흥명교장, 심양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등 기업인들은 5000원 또는 1, 2만원의 성금으로 바둑대회를 후원하였다. 그리고 길림성조선족경제기술진흥총회,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장춘시조선족관공위, 장춘시조선족녀성협회, 장춘시조선족사회과학공작자협회 등 조선족사회단체들에서 항상 성원과 지지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의 바둑사업은 지금까지 여러 언론매체와 유지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받았다. 길림성의 우리 말 기관지인 《길림신문》은 바둑문화에 각별한 중시를 돌려 바둑대회때마다 광고를 내주고 소식을 보도하였고 특집 또는 전문란을 설치하여 바둑지식, 바둑인물, 협회활동을 대폭 선전하였을뿐만아니라 《길림신문》컵 바둑대회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료녕신문》과 《흑룡강신문》에서도 종종 바둑대회의 소식을 내보내였다. 북경의 《중국민족》, 연변의 《로인세계》 등 잡지들에서도 바둑대회의 소식을 보도하거나 우리 바둑협회를 소개하였으며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는 연변대학 황형규교수의 󰡒바둑개론󰡓을 출판하였다. 우리 나라의 저명한 시인이며 《장백산》잡지사와 길림신문사의 전임 사장 겸 총편인 남영전선생님과 우리 나라의 저명한 과학가인 우병희교수 등 많은 명인들은 바둑문화를 관심하여 줄곧 협회를 물심량면으로 지지하였다.

요컨대,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는 바둑애호가뿐만이 아닌 정부의 관계부문과 경제, 과학,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의 조선족단체와 유지인사들을 망라한 전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었길래 20성상 어렵사리 성장해왔다. 이 기회를 빌어 민족문화사업을 관심해오신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20년전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 조선족의 바둑은 많이 성장하고 발전했다. 조선족의 바둑으로 하여금 전국뿐만아니라 세계의 무대에 올라서게 하자던 20년전의 우리의 꿈은 이미 이루어진셈이다. 박문요9단이 바로 그 대표이다. 그는 이미 우리 나라의 경기뿐만아니라 세계바둑대회에서도 당당한 실력을 과시하고있다. 장춘, 길림, 연변 등지에는 소년소녀바둑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일어섰고 바둑애호가들의 대오는 크게 확대되였다.

하지만 바둑을 널리 보급하고 바둑문화를 고양하려는 우리 협회의 종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너무도 많고 지금까지 우리가 키워온 꿈을 실현하지 못한것도 많다. 이를테면 동북3성의 중심,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장춘에 우리의 기원을 설치하면 얼마나 좋으랴. 중국조선족의 바둑애호가들의 활동무대가 될뿐만아니라 남북의 동포기사들과 만날수 있는 통일의 마당, 동북아의 여러 나라 바둑애호가들과 만나는 친선과 교류의 광장이 될수 있지 않을가. 바둑애호가뿐만이 아닌 바둑문화를 관심하는 국내외의 유지인사들과 기업인, 경영인들이 합심하면 이러한 꿈은 불원간에 이루어질수 있지 않을가.

우리는 이렇게 믿고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꿈은 조만간에 이루어질것이다.

바둑문화의 어여쁜 꽃은 앞으로 더욱 활짝 필리라.

/ 길림성조선족바둑협회 회장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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