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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칼럼] 사람 찾기 경기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03 14:24:13 ] 클릭: [ ]
 
김동수 
지난 세기 80년대까지도 여러가지 대중성 운동대회가 많이 열렸는데 빼놓지 않는 운동항목이 곧 물건 찾기와 사람 찾기 경기였다.

물건 찾기는 스타트를 뗀 선수들이 달려가던 도중 모래 한줌이거나 작은 돌멩이로 눌러놓은 종이쪽지에 적혀있는 물건을 찾아들고 누가 먼저 종점까지 달려가면 1등을 하는 경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만 빨라서 되는 일이 아니다. 본의 아니게 어떤 물건이 차례지는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책상, 걸상 같이 무겁고 덩치와 부피가 큰 물건이 차례지면 상대를 이기기는 열번도 틀렸고 반대로 축구공이나 배구공같이 작고 가벼운 물건이 차례지면 일등은 식은 죽 먹기였다.

사람 찾기 경기도 물건 이름이 사람 이름으로 바뀌였을 뿐 형식과 내용은 마찬가지로 사람을 재빨리 면바로 찾아야 했다.

아마도 대학교 2학년 쯤인 것 같다. 학생운동대회에서 사람 찾기 경기 선수로 뽑히였는데 달려가다 종이쪽지를 주어 펼쳐보니 ‘녀학생’이라고 적혀있었다.

‘에라 됐다.’

나는 다짜고짜 한창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반 녀학생들 앞으로 달려가 주저없이 아무 손이나 잡아채가지고 종점으로 달려갔다. 그 날 운이 좋게도 1등을 하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여 나는 난생처음으로 그 녀학생과 데이트했다. 말 그대로 ‘금상첨화’로서 사람 찾기 경기가 행운과 사랑을 선물한 것이였다.

전생에 ‘사람 찾기’와 친구로 사귀였던지 졸업 후 교직원운동회가 있어 또 사람 찾기 경기 선수로 나서게 되였다.

이왕과 마찬가지이다.

종이쪽지를 펼쳐보니 ‘교장선생님’이라고 적혀있어 목이 터지도록 교장선생님을 부르며 찾았으나 방금까지도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야단이라구야.’

그 사이 경기는 결속되고 나는 종점에도 못가보고 눈 먼 장님처럼 선자리에서 사위만 두리번거리다가 맹랑하게 탈락되고 말았다. 사후에 알게 되였지만 일이 꼬이려고 그랬던지 늘 주석대 한가운데 엄숙히 앉아계시던 교장선생님이 그 때 따라 배가 몹시 아프고 뒤가 너무 급하여 화장실에 다녀온 것이였다.

‘허참. 그것도 모르고.’

시합이야 어찌됐든 그 사람 찾기 경기는 매일같이 코와 이마를 맞대고 일하는, 조금은 메마르고 따분한 사업터에서 두고두고 진지하고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웃음과 생기를 가져다주는 ‘뉴대’와 ‘조미료’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사람 찾기 경기 대신 ‘새로운 형식과 수단과 내용의 사람 찾기’가 우리 주변의 허다한 령역의 구석구석에서 류행병처럼 성행하고 있는데 지어는 화장터에 가서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하니 이보다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강변의 조약돌처럼 많은 사례는 지면이 흐릴가봐 이만 줄이고…

따지고 보면 사람 찾기는 허술한 행정관리와 제도적 장치의 틈새도 문제겠지만 가장 관건은 권력과 금전의 ‘물밑교역’이 가로세로 엉키여 야기된 전반 사회적인 ‘신용위기’라고 본다. 너무나도 정상적인 일도 사람을 찾아야만 해결이 가능하고 또 사람을 찾아야 시름이 놓이고 어딘가 믿음이 가고 지어는 직성이 풀린다고 하니 이런 심리적인 반응으로 들떠있는 사람들을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가?!

나는 자신이 없다.

결국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스스로 집단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거나 또는 자각적으로 제도나 법규를 잘 지키는 성실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본보기가 될 대신 되려 멍청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상이 더는 ‘아라비안나이트’나 ‘천방야담’같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행인 것은 ‘성실’과 ‘공정’이란 네글자가 사회주의핵심관의 주요내용의 한부분인데 이 가치관 실현의 관건은 착실하고 제대로 된 시달 및 개선이다. 상처가 곪아 보기 싫고 흉하다고 백방으로 덮어감추고 가리기만 하면 나중에는 골수까지 병들어 온몸을 망치게 됨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흙과 모래가 날리던 운동장에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도록 벌어지던 사람 찾기 경기가 몹시 그리워난다.

 

                                                                        길림신문/김동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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