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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 장명순할머니, 한족이웃들에게 감사드린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13 15:40:59 ] 클릭: [ ]

1950년대 찍은 이 기념사진은 문화대혁명 때 할머니가 겨우 남긴 사진이다.

연길시 진학가 춘양사회구역 최저생활보장아빠트(低保楼)에서 홀로 살고 있는 장명순(87)할머니는 조선의용군으로 조선에 나가 조선해방전쟁과 항미원조에 참전했던 남편을 따라 1958년에 중국에 온, 60년 세월을 중국에서 생활한 조선교민이다.

전쟁에서 생육능력을 상실한 남편과 입양하여 키운 아들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고 의지가지할 데 없는 할머니는 지금 홀로 살고 있지만 이때까지 자기를 친인처럼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있는 감사한 분들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면서 기자를 찾았다. “내 죽기 전에 꼭 우리말 신문을 통해 한족분들한테 감사를 전해야겠다.”는 것이 할머니의 리유다.

해방전, 조선에서 고중을 졸업하고 교원, 회계사 등 직에 종사했던 장명순할머니는 련대장계급을 단 군관 최해룡(崔海龙)과 결혼하고 제대하여 귀국하는 그를 따라 중국 훈춘에 왔지만 여러매의 공훈메달과 대공국기훈장까지 수여받은 남편의 부상으로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이는 그녀가 6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만 고이 간직한 아픔과 유감이였다.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자기의 청춘을 선뜻 바친 영웅 남편을 위해서 이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남편에게 충성하고 남편을 위해 일생을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페부에서 우러나오는 책임이였고 의무였다.

풍운의 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훈춘현방산관리국에 배치된 남편은 문화대혁명이 터지자 하루아침에 참전 영웅으로부터 특무로 변했다. 그녀가 조선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수정주의분자로 되였던 것이다. 조선특무로 몰려 매일같이 심문을 당하고 끌려다니며 투쟁을 당한 남편은 침대에서 오래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남편이 피와 목숨으로 바꾸어온 공훈메달은 그렇게 반란파들에게 몰수당하고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했다.

“잔페된 몸으로 얼마나 많은 매를 맞고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려요.” 그녀는 매일같이 남편을 돌보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뎠다. 남편은 그녀더러 가만히 두만강을 건너 조선에 가서 허리 펴고 살라고 수차 권했지만 그녀는 불쌍한 남편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 후 남편과 이웃들의 권유로 아들을 입양해 키웠다. 국적이 없는 조교라는 신분으로 변변한 직업을 얻을 수 없었던 그녀는 1989년에 남편을 저세상에 보내고 아들을 따라 연길에 와서 살게 되였지만 7년 전에는 그 아들도 병으로 저세상에 먼저 보내야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기는 듯하였다.

홀로 된 그녀에게 정부에서는 최저생활보장아빠트의 열쇠를 쥐여주었고 진학가의 네입클로버로인자원봉사대(이하 네입클로버)의 대원들은 그의 친구로 되여주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언녕 저세상 사람이 되였을 겁니다.” 장명순할머니는 가장 어려웠던 나날 함께 해준 네입클로버의 양려진(杨丽珍, 进学街道春阳社区原书记兼主任) 대장과 춘양사회구역 서기 주위(朱伟), 문하사회구역 부서기 가립나(贾立娜), 네입클로버의 핵심대원 림숙영(林淑英)의 이름들을 한어로 부르면서 꼭 칭찬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지난 7월 26일, 매일마다 우리 집에 들려 나를 돌보던 림숙영이 심장병으로 구들에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양려진 대장에게 회보하고 그들이 나를 연변병원에 입원시켰지요.”

설이나 3.8부녀절, 로인절, 어머니절 등 명절이면 장명순할머니를 모셔다 그가 즐겨 드는 물만두를 대접하면서 한집식구처럼 대하는 림숙영은 전문 장할머니를 돌보는 네입클로버 대원이다. 기실 장할머니도 일찍 네입클로버의 일원으로 양대장을 따라 자원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었다.

네입클로버는 50세 대원이 60세 대원을 돌보고 60세 대원이 70세 대원을 돌보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런 봉사조직이였다. 장할머니가 말하는 양려진 대장도 올해 71세로 젊은 사람이 아니고 림숙영도 60이 넘은 로인이다.

혈육이라야 조선에 있는 조카들을 내놓고는 이 세상에 친인이 없는 장명순할머니는 집안에 있는 가정기물을 가리키면서 “보온병부터 침대보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회구역일군들과 네입클로버에서 가져다준 것입니다.”고 소개한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눈굽을 찍는 할머니는 “습근평 주석이 당원들을 참 잘 가르쳤습니다.”고 말한다.

혁명가정에서 태여난 양려진은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갔다가 연길백화, 백산호텔 등 단위에서 부문경리로 근무했으며 퇴직한 후 춘양사회구역 서기 겸 주임으로 일하면서 독거로인과 최저생활보조금으로 생활해가는 형편이 어려운 로인들을 잘 돌보기 위해 네입클로버(2010년)를 만든 사람이다. 그의 영향으로 서숙자, 림숙영 등 우수한 대원들이 용솟음쳐나왔으며 연길시네입클로버로인자원봉사대가 출범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이웃하면서 오래오래 살 겁니다.” 할머니는 낡은 사진첩에서 1950년대 조선에서 찍은 결혼기념사진을 꺼내주면서 늙은 모습은 신문에 나고 싶지 않으니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란다. 이 사진도 문화대혁명 때 겨우 살린 사진이라면서.

“나이 때문에 양려진도 대장직을 내려놓았지만 봉사활동에는 항상 앞장을 섭니다. 나도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면 절대 안된다고 눈을 흘깁니다.” 장할머니는 87세의 로인이지만 시력이나 청력이 50대 못지 않으며 피아노 앞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아침저녁으로 광장을 거닐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잔페가 된 조선족 참전 전사를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장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앉을 것을 기원하면서 기자는 취재노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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