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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 건강과 행복을 찾아주는 백의천사

편집/기자: [ 최창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4-26 11:41:33 ] 클릭: [ ]

--장백현중의원 김경철 원장에 대한 이야기

장백현중의원 김경철 원장

장백조선족자치현중의원의 김경철(43세) 원장은 장장 20여년간 고향의 의료위생사업에 몸을 담아 인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환자들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어 사회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고 있다.

1997년, 김경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장춘종업원의과대학(长春职工医科大学)을 졸업하고 마록구진중심위생원에 배치받았다. 그는 병원에서 외과림상(临床)에 종사하게 되였다. 갓 사업에 참가해서 그는 로중의들의 선진적인 의료기술과 경험을 참답게 학습하는 한편 과외시간을 리용해 의료위생방면에 관한 서적들을 부단히 탐독하고 림상의술을 허심히 학습하여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점차 실천에 옮기였다. 더우기 그는 장백현의 비교적 이름있는 로중의였던 아버지한테서 많은 우수한 의료기술을 이어받아 환자들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잘 치료해주어 사람들로부터 "건강과 행복을 찾아주는 백의천사"라고 불리웠다.

김경철의 아버지 김호연(75세)로인은 원래 이 병원에서 원장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농촌에서 약가방을 메고 맨발의사로 이 집 저 집에 찾아다니며 무엇인가를 귀에 꽂고 맥을 보고 주사를 놓던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다면서 그 때로부터 그는 의사사업에 호기심이 끌려 오늘 자기의 리상이 현실로 되였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배우면서 림상치료에 경험을 쌓았고 또 자기가 실제사업을 하는 과정에 새로운 림상치료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2000년도부터 그는 통화, 백산시중심병원에 가 3년간 외과의학지식을 전수했으며 광동성광제병원에서 연수하게 되였다. 따라서 김경철의 업무수준과 의료기술이 날따라 현저한 제고를 가져왔다.

병원지도일군들이 실무학습을 하고 있다.

김경철의 의료기술이 점차 제고되고 의덕이 높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그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았다. 이리하여 2011년 장백현위생국당위에서는 그를 마록구진중심위생원 원장으로 제발시켰다.

병원에서 원장직을 맡은 김경철은 조직의 신임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공산당원의 표준으로 자기를 더욱 엄격히 요구해왔으며 의무일군들의 업무학습을 틀어쥐고 업무지식을 부단히 연찬했다. 하지만 마록구진중심병원은 현성과 아주 가까운 데다 사업위생환경이 차하고 또 차액단위로서 의무일군들의 로임을 기본상 자체로 해결해야 했다. 자그마한 향진위생원에 의무일군만 해도 36명이나 되였다. 게다가 의료환경이 극히 차하고 병원도 현중심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병을 보이러 오는 환자들이 극히 적었다.

김경철은 의무일군들을 조직하여 일터강습을 부단히 진행함과 동시에 나젊은 의사들을 타지역의 큰 병원에 보내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와 업무를 연찬하게 했으며 의무일군들의 봉사질을 부단히 제고했다. 그리고 그들이 주인공적 정신으로 모든 환자들에게 친인다운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2013년 그는 현으로부터 50만원의 자금을 쟁취해 병원건물을 훌륭하게 보수했으며 또 여러모로 자금을 모아 전자동 생물화학기기, 채색초음파 등 의료기구를 구입해왔다.

의무일군들의 의료기술과 봉사질이 진일보 제고되고 의료환경조건이 크게 제고되면서 차츰 당지는 물론 외지로부터 많은 환자들이 이 병원에 찾아들었다. 의무일군들의 로임도 차액에서 현재정에서 지불하는 전액단위로 넘어가면서 로임대우가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병원에서 원장 직을 맡은 그는 이러저러한 행정사무가 많았고 볼일이 많아 매일마다 시간을 바삐 보내고 있지만 주치의사로 사업하면서 맹장수술에 남다른 기술을 갖고 있는 그는 환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계속 수술대에 마주서 기본상 하루에 3, 4명의 맹장수술을 해야 했다. 이리하여 여러 향진의 농촌환자들은 물론 장백현성과 무송, 송강하 등 지역에서도 많은 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이 병원에 찾아와 병을 치료하군 했다.

환자들의 회복상황을 알아보고 있는 김경철(오른쪽) 원장

2013년 4월의 어느 하루, 외지로부터 50대의 한 녀성이 13세의 딸애를 데리고 김원장을 찾았다. 김경철은 그 애의 병을 자세히 검사하니 급성맹장염이기에 급히 수술을 해야 했다. 당시 환자가 수술을 하려면 반드시 1,000원이란 수술비용을 병원에 바쳐야 했다. 그런데 그들 모녀는 겨우 200원 밖에 없었다. 가정생활이 몹시 어려워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먼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서 환자를 수술실로 밀고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이튿날 그는 의무일군들을 동원해 그 애의 치료비를 해결했다.

2013년 음력설이였다. 설명절이라 단위에서는 숙직인원을 내놓고 모두가 설 쇠러 집으로 갔다. 그런데 장백현 보천산진의 편벽한 농촌마을로부터 한 녀성이 중학교에 다니는 17세의 아들애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왔다. 진단을 거쳐 급성맹장염이였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생활형편이 더없이 어려운지라 수술비용을 해결할 수 없었다. 김경철은 원장으로서 설날도 쉬지 않고 그 애 수술을 원만하게 마쳤다.

또한 그 때는 설명절이여서 식당들에서 모두 문을 닫았기에 환자가 따뜻한 밥 한끼 먹자고 해도 먹을 곳이 없었다. 김경철은 안해와 함께 물만두를 빚고 밥을 지어 병원에 날라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음력설에 맛나는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형편을 고려해 수술비용을 전부 병원측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남자애가 출원하는 날, 그의 부모들은 오래도록 김경철의 손을 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격동된 나머지 "감사합니다. 너무도 감사합니다. 김원장이 진짜 우리 집의 은인입니다!"라고 감명깊게 말했다.

수술실에서의 김경철(왼쪽) 원장

2015년 8월, 김경철은 사업수요로 인해 현중의원 원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현중의원은 원래 장백진중심위생원이였다. 현중의원은 비록 현성소재지의 비교적 번화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병원건물이 1983년도에 지은 3층짜리 낡은 건물이여서 기초시설이 락후하고 실내시설이 낡아빠지고 소방설비가 요구에 부합되지 않아 엄중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였다. 뿐만 아니라 병원 복도에 들어서면 냄새가 어찌도 심했던지 상급 해당 부문들에서 여러차례나 이곳에 내려와 검사한 결과 환경위생이 백산지역에서 가장 락후한 편이였다.

병원의 락후한 면모를 하루빨리 개진하고 의무일군들의 사업적극성을 크게 불러일으키고저 김경철은 우선 사회구역의 여러 기층에 공공위생봉사소를 세우고 중점으로 방역, 보건, 공공위생, 빈곤부축사업을 진행했다. 불구자나 년세가 많고 신체가 허약한 로인들, 장기병환자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병을 진찰하고 면비로 약을 떼주기도 했다. 그리고 진내 여러 촌과 사회구역에 여러 명의 의과대학졸업생을 배치하여 기층 위생봉사기능을 진일보 제고했다.

현정부와 현계획위생국의 지지하에 그리고 김경철 원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지난해 그들은 185만원의 자금을 모아 병원건물을 다시 훌륭하게 보수했다. 사무실과 여러 과실의 책상 걸상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컴퓨터도 전부 새것으로 안장했다. 선후로 100여만원의 자금을 투입해 입원실, 화험실, 주사실, 화상치료실, 수술실에 각종 설비를 구전하게 갖추었다. 그리고 전자동 생물화학기기와 심전도기, 동태심전도기, 혈리자(血离子)분석기재 등 기계설비를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병원의 과학기술함량을 진일보 제고하고 뇌출혈, 뇌혈전 등 질병의 진찰과 로인들의 만성병 구급치료수준을 부단히 높이고 있다.

현재 장백현중의원은 기본의료, 공공위생, 예방보건, 건강회복을 일체로 한 종합성 병원으로 환경이 깨끗하고 환하며 공공시설이 구전한 일류의 병원으로 매진하고 있다.

다년간 김경철 원장은 근 2,000명의 맹장염, 산증(疝气) 환자들에 수술을 진행했지만 의료사고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아 상급 위생부문과 전문가들의 충분한 긍정과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선후로 김림성위생계획 선진사업자, 길림성기층의료위생 및 계획생육봉사계통 우수공산당원 등 영예칭호를 수상했다.

글/사진 최창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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