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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고중66년졸업생들:우리만한 동창회는 없을 겁니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1-04 10:28:00 ] 클릭: [ ]

렬사유복녀 최록순 만년보금자리 락성식 한 장면.

반백년전 울리던 교정의 종소리

오늘도 귀전에 쟁쟁히 울리네

리상의 봉우리로 이끌어주던 메아리…

2017년 10월 31일 점심 새집들이를 하는 렬사유가족 최록순이네 집에서 그의 초중시절 동창들이 함께 부른 우렁찬 노래다.

최록순은 술잔을 높이 들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동창회는 후더운 마음들이 모여 뜨거운 사랑을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정말이지 우리(동창회)만한 동창회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이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최록순이 말한 동창회는 바로 연길현2중(지금의 룡정고중) 1966년 초중졸업생들의 모임이다. 동창회 총회장 김동준은 동창회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였다. “우리가 초중을 졸업할 때는 남자학급과 녀자학급으로 졸업하였고 졸업하는 해 문화대혁명이 터지다보니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에 간 동창들은 한명도 없어요.”

1966년 초중 졸업식 기념사진.

초중을 졸업한 이들은 혹자는 부대로, 혹자는 공장으로, 혹자는 농촌으로 내려가 각자 맡은바 일을 착실히 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에 자신의 청춘을 바쳤다. 김동준은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전사로부터 문화간사로, 제대한후 룡정시문화시장판공실, 룡정시민속박물관 등 일터에서 주임, 관장 등직을 맡고 사업하면서 룡정시에 거주하는 초중 때 동창들을 자주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과 토론해서 일년에 한두번씩 만나는 동창모임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한사람두사람 불어나면서 백여명 회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수한 년대에 태여나 특수한 일생을 살아온 우리가 퇴직한 후에라도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는 그런 우리만의 공간이 수요된 것이지요.” 김동준은 이렇게 말하면서 현재 이 동창회는 룡정분회와 연길분회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 분회에서 조직하는 분회활동외 해마다 한차례씩 총회활동을 조직하며 회원들의 생일과 자식들의 결혼 및 상사에도 자주 만나다보니 인젠 가족과도 같은 그런 존재가 되였다고 소개한다.

이 동창회의 종지에 대해서 김동준은 허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창회 종지가 따로 없습니다. 그저 동창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휴식할 수 있는 그런 하루를 잘 마련하여 주는 것이 동창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동창들의 질고를 알고 도와주며 힘을 내게 하는 것이 동창회의 역할이지요.”

2016년 졸업 50주년 기념모임.

2016년 이 동창회에서는 졸업 50돐기념일을 크게 경축하였다. 60여명 회원들이 모여 모교의 선생님을 모시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였는데 최록순이와 박송죽이를 비롯한 경제형편이 어려운 동창들의 회비를 면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다 함께 먹고 기념품도 받았는데 왜서 우리 회비는 받지 않는가고 반발할 줄이야! 할수 없이 그 돈을 받은 동창회에서는 이튿날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생활에 보태라고 그 돈을 돌려주기로 하였다.

회장과 회계가 지신진 신화촌에 있는 최록순이네 집으로 갔을 때였다. 찌그러진 오두막집에서 생활하는 최록순의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였다. 조국해방전쟁에서 피를 흘렸고 항미원조전쟁에서 희생된 혁명렬사 최덕송의 유복녀인 최록순은 평생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의 병시중을 드느라 허리까지 굽었다. 집이라야 비가 오면 부엌에서 물이 나고 추운 겨울이면 오래된 흙벽이 찬 바람을 막아내지 못하는데다 땔나무까지 걱정이였다.

최록순이 살던 낡은 집.

김동준은 전문인원을 조직하여 신화촌촌민위원회, 지신진정부, 룡정시정부를 찾아 혁명렬사의 후손의 어렵고 힘든 생활형편을 반영하고 위험주택을 개조하여 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들의 노력으로 시민정국에서 3만 5천원, 진에서 2천5백원, 촌민위원회에서 1만 5천원을 대기로 하였다. 그런데 동창회에서 기부한 2천원까지 합하여도 6만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어떻게 집 한채를 짓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애심으로 시작된 그들이 동창돕기 행동이 진퇴량난에 빠졌을 때 누군가 연길에 있는 명준회사(연변명준환경보호에너지절약보온신형건자재회사)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준다면서 찾아가 보라고 알려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였던 그들이 명준회사 안동호동사장을 찾아가 최록순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안동호는 “복속에서 살면서 이 복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렬사의 자녀가 어렵게 산다는데 의례 도와드려야지요.”라고 흔쾌히 대답하면서 5만원만 마련하면 그외의 모든 것을 회사에서 책임지겠다고 담보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분이였습니다. 큰 회사를 차리고 여기저기에 집을 지어주고 제때에 돈을 받지 못해 경제형편이 빳빳하면서도 록순이네 집을 짓는데는 제일 좋은 재료를 공급하고 제일 오래된 건축일군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김동준회장은 안동호동사장에 대해 엄지를 내들었다.

이렇게 동창회에서 애심으로 발기하고 명준회사에서 선뜻 응하면서 2017년 10월 최록순이네는 신형의 보온벽돌로 지은 따스하고도 아담한 새집에 들게 되였다. 이날 동창회에서는 1만6천원을 모아 텔레비죤과 세탁기를 마련하였으며 아담한 울바자에 멋있는 대문을 만들었고 변소도 새로 짓고 낡은 집도 허물어 주었다.

“기실 그 1만 6천원에는 자기도 환자이면서 서슴없이 5천원을 보내온 정순례, 머나먼 대련에서 소식을 듣고 천원을 보내온 김신옥, 미국에 암치료를 떠나면서 2백원을 보내온 지민현 등 천사같은 동창들의 애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동준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동창회가 정식으로 설립된후의 몇가지 일을 회억하였다.

도문에 있는 빈곤호이며 장기환자인 최창석의 병이 갑자기 더 위급해졌다는 말을 듣고 동창회에서는 50명의 동창들을 조직하여 병문안을 갔으며 5천원의 위문금을 내놓았다. 항주에서 박선월이가 위암수술을 받는다는 기별을 받고 인차 3천원의 의연금을 모아 보냈으며 박송죽이 궤양성장염으로 수술을 받을 때에도, 지민현이 암치료를 받을 때에도, 장형국이 암으로 앓을 때에도, 한정일이 요추간판탈출로 앓을 때에도 그들은 3천여원씩 보내주었다.

여름철 비만 오면 부엌에 물이차고 동창들이 달려가군 하였다.

반백년전 뛰놀던 씩씩한 그 모습

오늘도 그 건강 챙겨간다네

노래하고 춤추며 웃음꽃 피워가네

이 동창회의 회원인 리봉은은 김동준회장이 작사하고 자기가 작곡한 동창회 회가는 모두 4개 절로 되였는데 1절은 그리운 학창시절의 종소리를, 2절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3절은 학창시절의 우정을, 4절은 오늘의 우정을 노래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노래에는 그 특수한 년대를 살았고 지금 막 70고개에 올라서는 동창들의 마음이 진하게 담겼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 시대를 살았기에 동창들은 서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한다고 하면서 또 그러한 동창들이기에 오락판도 정이 듬뿍듬뿍 넘쳐나고 술 한잔이라도 맛있게 나눌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동창회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또 내가 그 일원으로 만년을 함께 한다는 게 행복합니다.” 리봉은의 페부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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