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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특별한 잔치’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0-26 16:30:31 ] 클릭: [ ]

-기업가 조광훈부부와 그들의 조학생과의 친정이야기

‘제일 고마운 부모’와 ‘제일 행복한 딸’

국경절 기간 필자는 오랜 지교인 연변범서방프라스틱유한공사 조광훈 총경리 부부의 또 다른‘딸’ 김미영(31)의 결혼잔치 및‘외손녀’ 최형월의 돌잔치에 참석해  70평생 처음으로 그와 같은  쌍희(双喜)잔치를 견증했는데 례식장은 조광훈부부와 김미영의 각별한 ‘부모 자식’ 친정(亲情)이야기로 감동의 도가니로 되였었다.

김미영은 조광훈부부가 조학해온 한 고아이다. 이날 조광훈부부는 나란히 김미영의 부모석에 앉았고 미영이가 조광훈내외한테 편지를 올리는 식순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아버지 어머니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늘 들어왔지만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친자식마냥 사랑해주시고 소중히 키워주신 17년이란 세월은 나로 하여금 혈육을 나눈 부모 자식간 정 못지 않은, 더 진한 친정이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하였습니다.

저의 고아된 사연이 2000년 12월 연변TV방송의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그람에 방송된 며칠 후 조광훈 아버지께서 내가 다니고 있던 도문시제 5중학교에 찾아와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시며 꽁꽁 얼어들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시던 때의 기억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저의 부모석에 앉아주신 아버지, 어머니는 그 날부터 저의 부모가 되여주셨습니다.두분이 저의 든든한 뒤심으로 되여주셨기에 저는 남 부럽지 않게 대학공부까지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고 밝고 명랑하게,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장성할 수 있었으며 오늘의 행복한 가정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17년간 저에게 쏟아부으신 두분의 부모님 사랑, 그 은정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부모님 그 사랑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부모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길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더욱 노력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본받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슬하를 떠나 지금은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앞으로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17년 9월 29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행운스러운 딸 미영 올림.”

미영이의 편지는 례식장의 잔잔한 음률을 타며 하객들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대학생 부자’의 ‘축의금 없는 잔치’

미영의 결혼식은 지난해 미영이가 일본에서 신랑감(최성관)을 조광훈부부 앞으로 데리고 와서‘심사’받고 갈 때 올해로 약정한 것이였는데 결혼식을 올리려고 온 미영이네가 돌이 차는 딸애를 턱하니 안고 온 서프라이즈기쁨(意外的惊喜)을 선물할 줄은 몰랐다며 조광훈부부는 희색 만면이였다.

딸의 결혼식과 외손녀의 돌잔치를 어떻게 기념해주겠는가 고안하다가 손녀의 돌날에 딸의 결혼식을 겹쳐 치르기로 했던 것이였다. 하객을 청하는데 있어서도 조광훈 나름의 ‘준칙’으로 하객을 청하되 무릇 축의금을 받지 않기로 정하고 청첩에도 ‘축의금 없는 잔치’라 박아놓았던 것이였다. 이들 부부가 수년 전부터 가내 잔치에 ‘축의금 없는 잔치’문화를 고집해온지라 그 날 김미영네  쌍희잔치에도 방명록, 축의금 내는 자리도 받는 이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김미영을 축복해주러 온 하객들에게 ‘잔치선물’을 마련해 빠뜨릴세라 챙겨주었다.

하객중 일원인 도문시당위 서기, 연변주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사업했던 김헌선생은 그날 잔치를 지켜보고나서 조광훈의 두손을 잡고 “조경리가 마련한 오늘 쌍희례는 정말 범상치 않은, 뜻깊고 값진 잔치라고 생각합니다. 내 평생에서 처음 보는 특별한 잔치입니다!” 라고 감동을 표했다.

조광훈은 그 말에 사람 좋게 웃으면서 미영이네 쌍희 잔치에 사실 친딸의 결혼 때보다 신경을 더 쓰며 많은 것을 준비하느라 부인이 입술이 다 부르텄다며 책임성 있게 좋은 일을 끝까지 하려니 결코 쉽지는 않았다고 감회를 털면서 물론 다 미영이처럼 조학에, 결혼에, 아기 돌잔치까지 챙겨준 것은 아니지만 세여보니 지금까지 조학해준  불우한 학생이 100명 넘는다고 했다.

필자가 료해하건대 조광훈의 조학공사는 20년 넘게 진행해오고 있다.

신부 미영이를 직면하고 보니 2006년 2월께 조광훈부부가 당신들이 조학해주고 있는 황순화라는 대학생을 위해 연길의 한 회집에서 마련한 생일파티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김미영 등 조광훈이 조학해주고 있는 6, 7명 대학생이 파티 자리를 같이했었다.

그 파티에서 학생들에게 일본 참치회를 사준 조광훈은 그 리유를 두가지로 밝혔다. 한가지는 학생들에게 먹어보지 못한 좋은 료리를 먹이고 싶은 부모된 마음에서였다고 했고 한가지는 “좋은 음식,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으려 해도 돈을 버는 능력을 련마해서 돈을 벌어쥐여야만 사먹을 수 있다는 리치를 너희들이 깨치고 그만큼 생계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에서다”고 했다.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조회장은 우리들을 한가족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고아지만 이 때까지 조회장의 사랑으로 언제 어디서나 위축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고 생일을 맞은 황순화학생이 조광훈부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김미영이 이어서 인사말을 올렸다. 김미영은 당시 중국농업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조회장네 식구가 되여 함께 설을 쇤 지도 7년이 되였다 했고 1년 재수해 620점의 성적으로 중국농업대학에 입학한 것은 “ 첫 대학입시에서 지망했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서운해하는 나를 눈치를 챈 조광훈아버지가 미안해하지 말고 재수해 지망하는 대학에 가라며 지지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 날 미영이는 조광훈아버지가 자기의 사기를 돋구어주기 위해 벌써 취직자금, 혹은 사업자금으로 3만원을 자기 이름으로 예금해주었다고 말했다.

그 날 파티에 참가한 학생들의 진심어린 인사말이 이어지는 가운데서 조광훈네가 좌중의 학생들을 위해 부담하는 학비, 생활비만도 1년에 어림짐작으로 7~8만원은 족히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년 조광훈 내외는 100명 넘는 불우학생들이 대학꿈을 이루고 무지개 인생길을 개척해가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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