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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그릇의 의미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2-20 10:54:09 ] 클릭: [ ]

그릇은 용량에 따라 크고 작은 구별이 있다. 항간에서 흉금이 넓어 베품이 넉넉한 사람을 큰 그릇에 형용한다면 속마음이 비좁고 궁색한 타입을 흔히 작은 그릇에 비유한다.

그릇이란 서로의 공간을 비기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상부상조할 때 평화롭지만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고 항상 자기 그릇 채우기에 올인하다 못해 남의 그릇까지 훔쳐본다 든가 아니면 남의 그릇의 허물만 끄집어내여 괴롭힌다면 진짜 사촌이 땅 사도 배 아픈 린색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여느 동창생모임의 일이다. 빙 둘러앉아 첫 인사말은 그렇듯 한데 술 둬 순배 돌아가니 저마끔 그릇의 크기를 자랑한다. 회전의자에 앉아 호통치던 일, 괴춤이 부풀도록 횡재하던 일, 참으로 꼬장꼬장한 눈초리 가진 그릇들과 끝내 왱강댕강 충돌이 생겼다. 불미스러운 일이 어제를 이어 오늘까지 벌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가, 가진 것이 많아 큰 그릇이 아니오, 쥔 것이 없어 작은 그릇이 아니다.

조상 덕은 못 입어도 이웃 덕은 입는다는 말과 같이 인간은 서로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사는 감정을 앞세운 존재이다. 겉으로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지만 곁에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못본체 지그시 눈 감는 부자가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 있으랴, 사회에 도움이 없는 불필요한 존재밖에 안된다. 받쳐든 밥그릇이 크지 않아도 이웃에 유익하고 사회에 보탬을 주는 일이라면 선뜻이 나서는 사람은 재물을 떠나 고상한 경지에서 뭇시선을 독차지하는 새시대의 큰 그릇임이 틀림없다.

19차 당대회 대표인 연길시 원휘사회구역 당총지 서기 림송숙은 3,300여세대를 도맡아 보살피는 진달래꽃'의 전형이다. 부모 잃은 고아를 키워준 은혜와 정성, 실족청년에게 새 삶을 살도록 등대불 같이 밝혀주는 포옹과 배려, 독거로인의 손발이 되여 고달픈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낮과 밤을 두고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우리 사회는 곧바로 이런 적선적덕의 피라미트를 쌓아올린 큰 그릇의 주인공이 많아야 한다.

주고받는 커피 한잔속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친절과 상냥함이 진지하게 슴배여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인간애를 첫자리에 놓는 사람이 교원이 되고 의사가 되고 리더가 되는 공동체에서 인간은 생각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령역이 넓혀지는 일은 자명하다.

그릇의 모양새에 귀천이 없다. 부대끼며 사는 동안 동족끼리 서로를 치켜 세워주고 정겹게 시선을 나누는 가운데 너와 나 그릇의 의미가 더 크게 곱게 둥글어질뿐이다.

                                              / 길림신문 칼럼리스트 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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