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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괜찮다, 괜찮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2-07 12:28:50 ] 클릭: [ ]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날 하늘은 작정하고 나를 어떤 궁지로 몰고 갔던 것 같다. 너무나 힘들었던 그 해 3월,느닷없이 폭설주의보가 내린 날이였는데 늦게 퇴근한 나는 2남 3녀와 조우했다. 먼저 설명을 좀 드리자면 나는 나의 직장과 내가 사는 아빠트단지를 이어주는 한수로를 매일 30분 정도 걸어서 출퇴근하는데 신호등을 네번 건너야 한다.

첫 십자로인 화산로에 이르렀을 때 방금 택시에서 내린 웬 사내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 다가와서 룡탑(龙塔)이 어딘가고 물었다. 나는 몸을 반쯤 돌리며 “바로 저기잖아요.” 하고 하늘공중을 가리켰다. 그러나 룡탑은 보이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철탑으로서는 가장 높은 타워라는 336메터 높이의 룡탑이 빌딩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내에게 어떻게 찾아가라고 알려주고 나서 넓은 화산로를 부랴부랴 건너 뒤돌아보니 그제야 어둑어둑한 창공에 소소리높이 치솟은 룡탑이 시야에 안겨왔다.

두번째 십자로인 숭산로로 가는 중간 쯤에 옥산로라는 한적한 갓길이 있는데 길건너 쪽은 별로 크지 않은 시민공원이다. 거기서 한 40대 녀인이 역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성(省)도서관에 가는 길을 물었는데 나는 옥산로에 나있는 도서관 뒤울안 쪽문까지 데려다주었다. 퇴근길이 좀 멀어졌지만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공원을 에워싼 다른 한갈래 갓길을 따라 숭산로에 이르렀다. 그 때 어떤 녀인이 또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 웬 일이람?’ 나는 30대의 이 녀인이 무슨 말을 걸어올지 궁금했다.

“따거(大哥),제가 지갑을 잃어버려 그러는데… 뻐스 탈 돈 좀 주실래요?”

너무나 뜻밖이였다. 새파랗게 젊은 녀인이 길가에서 낯 모를 사내를 보고 뻐스 탈 돈 달라고 손을 내밀다니… 이 녀인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잔돈을 꺼내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길을 건너서야 뒤돌아보니 녀인이 삼사십메터 앞에 있는 숭산로뻐스정류소가 아니라 공원 안으로 다시 쓱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왠지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 사이 눈발이 굵어지고 거리는 몹시 질척거렸는데 세번째 십자로이자 개발구중심거리인 홍기대가에 이르러보니 교차로에 차들이 수십대 뒤죽박죽 엉켜붙어있었다. 신호등은 어김없이 바뀌고 있었지만 차들은 신호를 무시한 채 앞에 생긴 틈사리로 겨끔내기로 끼여들었다. 헤드라이트를 짓부릅뜨고 와이퍼를 세차게 휘저으며 으르렁거리는 차들이 마치 먹이를 다투며 싸우는 한무리의 짐승들 같았다.

‘한심한 놈들…’

내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터져나왔고 속에서 뭔가 욱 치밀어올랐다. 그 때 웬 녀인이 또 나에게 다가왔다. 남방말씨를 쓰는 30대 초반의 녀인이였다.

“따거, 제가 그만 우리 일행과 갈라져서… 저녁 사먹게 돈 5원 주실래요?”

‘이건 또 무슨 수작이람?’

나는 우두망찰 녀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녀인은 나의 눈길을 피해 아미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마주보았다. 문득 방금전 뻐스비를 좀 달라던 녀인이 떠올랐다. 역시 잔돈을 구걸하는 녀인일가? 그런데 뭔가 다른 게 있었다. 무엇일가? 결코 뻔뻔스럽지 않은, 그게 그러니까… 정숙하고 단아한 면이 있어보였다.

‘이 녀인은 진짜로 어떤 어려움에 부딪친 게 아닐가? 오죽하면 폭설이 내리는 이 밤 길거리에 서서 낯선 행인에게 손을 내밀겠는가…’

어떤 련민이 문득 내 가슴을 가득 메워왔다. 나는 지갑을 꺼내들고 백원짜리를 한장 뽑아 건넸다. 그런데 녀인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눈시울까지 붉어진 녀인은 내가 기어이 손에다 돈을 쥐여주자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꾸벅 절을 했다.

“따거, 니 쩐쓰 호우런!”

녀인이 이런 한마디 말을 남기고 사라진 후 나는 덩덩한 채 자신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그런데 난 왜서 한번 또 한번 모함과 배신을 당해야 했던가?’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심각한 물음이 아닐 수 없었다. 녀인은 어쩌면 낯선 남자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 고마웠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믿어주고 나눠주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다면 나는 어떠했던가? 진짜 좋은 사람이라 불리울 만큼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왔는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길을 건너는데 누군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세상이 어디 좋고 나쁨을 그토록 명쾌하게 분별할 만큼 그리 간단합디까?”

나는 우뚝 멈춰섰다.

‘그래, 세상은 물론 복잡하지만 도리는 간단하지 않은가. 다만 우리는 늘 자신의 어떤 리익에 눈이 어둡고 앞이 가려 분별을 못할 뿐. 나도 당신도 어쩌면 그런 인간이 아니였는지 모르겠군.’

누군가와 속심이라도 터놓으려는듯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야 나 혼자였다. 내 어깨에 손을 얹어줄 이는 더구나 없었다. 한가닥 비애가 가슴에서 괴여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느닷없는 분노와 울화가 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불덩이처럼 불쑥 솟구쳐오를 줄이야…

그랬다. 그 나날 나는 분명 가슴에 시도 때도 없이 타오르는 하나의 무서운 불덩이를 품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보다 남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는데 어느 날 난데없는 ‘칼끝’에 옆구리를 푹 찔리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분통함과 억울함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타번지고 있었다. 사는 게 뭔지 지나온 삶이 참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그 허무함에 나는 자신에게 삶의 의미란 구경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군 했지만 기실은 지나온 삶 뿐이 아닌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신음 같은 한마디를 내뱉으며 나는 펄쩍 정신이 드는 것만 같았다. 그 불덩이는 누군가에 의해 댕겨져 이 세상을 향해 불길을 내뿜고 있었지만 그 불길의 피해자는 결국 나 자신 뿐이 아니던가. 그렇게 내 몸과 맘이 날로 망가지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어쩌면 삶이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에 몰렸는데 나는 어이하여 속수무책으로 뻔히 쳐다보고만 있었던 것인가!

눈은 점점 더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검은 하늘이 펑 뚫린듯 억수로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걷고 걸으며 나는 내 가슴도 저렇게 펑 뚫려 그 따위 불덩이 하나 쯤 이 폭설에 작살냈으면 좋겠다고 되뇌였다. 그렇게 네번째 십자로를 지나고 태산로 아빠트단지도 지나쳐 남대직가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내처 걷고 또 걸었다. 급행군하는 병사마냥 한시간 반 넘게 걷고 걸어서 내가 도착한 곳은 할빈동역 광장이였다.

그 곳에서 나는 20여년전 이불짐을 메고 출구 앞에 나서서 두리번대던 바로 그 사내를 만났다. 사내는 내 어깨와 머리 우에 두툼하게 쌓인 흰눈을 훌훌 털어주며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했다. 나는 그만 목이 꺽 메였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 모를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리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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