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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1-31 10:39:49 ] 클릭: [ ]

상해에서 6년 만에 연길로 돌아온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한시장에서 18년 장사를 함께 했던 동창이자 동료였던 친구를 만났다.

“너는 ‘공신시장’에서 장사할 때 어떻게 했길래 만나는 사람마다 너를 외우니?”

바로 그 ‘덤’이 정으로 쌓인 것 같다. 나는 33세부터 50세까지 쭉 연길시 ‘공신시장’에서 작은 김치가게를 운영했다. 그 때 돈을 저금하며 살지 못했지만 ‘덤’은 저금하며 살았던 것 같다. 반찬 1원어치 사도 한저가락의 덤을 얹어주는 것은 내 마음이였다. 고객이 눈치를 채지 않게 슬쩍 얹어주는 덤은 그만큼 값진 정이다. 미소를 지으며 알게 모르게 얹어주었던 덤은 고향을 떠난 6년 동안 그들이 나를 그리는 원인인가부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그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덤은 마음이고 정이고 삶의 향취이고 여운이며 랑만이다.

덤은 서로에게 슬며시 스며들 줄 안다. 수묵화처럼, 사랑처럼, 소금처럼.

한번은 어린 조카가 나의 가게에 놀러 왔다가 “아재는 어째 근을 다 뜬 다음에도 넣어줍니까?” 라고 물었다. 그 때 나는 “아아, 그건 물건을 산 사람이 기분 좋게 가면 나도 엄청 기뻐서이지.” 라고 대답했다.

덤 때문일가. ‘류동고객’ 하나 없는 자그마한 시장에서 ‘단골고객’들이 김치를 사는 금액으로 네 식구가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잘 팔려 자그마한 집 한채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시장에서 18년 ‘김치가게’를 하면서 주변의 고객들과 어울려 재미 있게 살아보자고 ‘덤’으로 약속했다. 김치를 팔며 돈을 받을 때 끝의 잔돈을 깎아버리는 ‘꼭지덤’을 잊지 않는 나와 고객의 마음들이 너무 잘 맞았다. 그들도 나에게 덤을 주고 싶어 겹쳐씌워준 식품주머니도 한장 벗겨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하나라도 절약하라고 남겨두고 가는 그 고마운 마음에 나는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았다.

덤은 내가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나는 알았다.

“도라지 한근에 얼마입니까?” “5원입니다.” “4원씩 계산해서 두근을 줄 수 있어요?” “그건 안되겠는데요. 4원 50전은 될 수 있어요.” “네에, 그럼 두근을 떠주세요.”

김치 두근을 떠놓고 정히 포장한 다음 국수랭채를 한국자 떠담아드리는 나의 마음, 분명 두근은 9원인데 그대로 받으라며 10원짜리를 기어코 나에게 밀어주고 떠나는 고객의 마음. 이것이 서민끼리 주고받는 뜨거운 정이고 사람 사는 맛이 아닐가. 좀 값을 내려달라는 고객을 만나면 나는 오죽하면 그러겠는가고 생각하며 값을 내려주고 덤까지 좀 얹어주면 감사해하는 고객들을 보면서 늘 가슴이 뿌듯했다. 나는 비록 김치를 만들어 파는 일은 힘들었지만 삶의 희열을 느꼈고 이렇게 부대끼며 살아가노라면 ‘추운 인생’도 포근한 인정으로 따뜻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부담없이 주고받는 넉넉한 마음인 덤은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랭랭한 삶에 온기가 감돌게 했다.

‘덤’은 인정의 소산이고 꽃이고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을 잇는 련결고리이다.

나는 덤을 좋아한다.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문화중에 ‘덤’이라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찬가. 덤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물건 사고 그냥 가면 정이 없다고 한줌 얹어주는 덤이 사람 사는 재미이다. 나는 2년째 저녁시장으로 잘 간다. 저녁시장 제일 끝 쪽엔 팔 하나 없는 아주머니가 항상 네가지 김치를 놓고 팔고 있었다. 어쩐지 나는 별로 살 게 없는 날에도 시장끝 쪽까지 가서 그 아주머니를 만나보군 했다.

어제저녁엔 점심에 끓인 옥수수죽 한그릇을 담아가지고 시장끝 쪽으로 갔다. 10년전에 내가 늘 그랬듯이 11월이라 해는 지고 추운 바람이 불었지만 아주머니는 혹시 손님이 오겠는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네소래에 가득 담겨있는 것을 보면 잘 팔리지 않은 모양이였다. “한창 김치철이라 잘 팔리지 않아 어쩌죠? 아예 이렇게 추울 땐 좀 일찍 들어가요.”

하루의 팔리는 량을 물어보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젊은이들이 퇴근할 때 사가지고 가길래 늦게 있어야 된다며 밝게 웃었다. 나는 배추김치 두포기와 파김치를 사가지고 옥수수죽을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러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물새우를 덤으로 주면서 무우반찬을 하라고 했다. 많이 사줘서 고맙다며 연신 인사하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부근에서 한 아저씨가 먹음직한 고구마를 팔기에 5근을 샀다. 아저씨는 고맙다며 구부정한 대파 두개를 고구마를 넣은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나는 손에 받아쥐였던 거스름돈을 아저씨한테 쥐여주었다. 그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주겠다느니 받지 않겠다느니 한동안 싱갱이가 벌어졌다. 저물어가는 저녁시장에는 서로의 마음이 오갔다. 그래서일가. 나는 가끔 마음이 허전할 때는 저녁시장에 나가 사람냄새를 맡는다. 그저 파 두개이고 새우젓 한공기이지만 그 작은 덤이 마음을 너무 풍성하게 했다.

우리 삶에 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덤은 우리의 미풍량속이다. 더운 마음이 깃든 멋진 풍습이다. 덤이 있는 세상은 기필코 아름다울 것이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구수한 흥정과 교류가 없이 그저 바코드 찍힌 포장상품과 랭랭한 분위기에 돈만 오가는 대형슈퍼마켓의 소비문화를 나는 아직도 잘 접수하지 못하고 있다. 살 물건이 있으면 지금도 서시장, 아침시장, 저녁시장으로 간다. 굳이 형세에 뒤떨어진 보폭이라도 난 괜찮다. 내 마음이 ‘덤’으로 받는 따끈한 정을 요구하는 데야!

슈퍼마켓의 비닐포장에 리봉이 달린 남새보다 풀물이 들고 손톱눈에 흙물이 들어 새까만 손으로 묶은 시금치단에 더 정이 가는 게 나 혼자 뿐일가. 돈 밖에 모르는 세상이라 하지만 아직도 시장에는 덤이라는 낱말이 흐르고 있다. 나는 덤의 매력에 끌려 그 깨끗하고 화려한 슈퍼마켓으로 가지 않고 만나는 사람끼리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넘치는 재래시장에 가길 좋아한다. 슈퍼마켓에는 ‘가격표’가 붙어있고 시장에는 ‘정’이 붙어있다. 시장으로 가면 흥정할 수도 있고 자투리돈도 떼버릴 수 있다. 오늘도 아침시장으로 다녀왔다.

단순 상품구매가 아닌, 팔고 사는 물건에 사람지간의 감정교류, 거기에 정까지 ‘덤’으로 쌓아올리는 재래시장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오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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