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수필] 늙어가는 사과의 변신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1-22 12:37:47 ] 클릭: [ ]

쪼글쪼글 늙어가는 사과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시들어가는 사과들이 못내 안스럽다. 그 상긋한 맛을 내려고 비바람을 이기며 어렵게 익어왔는데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베란다에 버려진 채 쪼글쪼글 늙어가니 말이다.

‘그렇지. 오늘은 저 늙어가는 사과들을 향긋한 잼으로 재탄생시켜야지.’

조심조심 쪼글쪼글한 사과들의 옷을 벗기면서 탱글탱글했었을 사과들의 속살이 흐물흐물 탄성을 잃어감을 감지한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쏟아져나온다. 눈가에 늘어나는 잔주름과 귀밑머리에 희끗희끗 뿌려지는 흰머리카락, 피부의 탄성을 잃어가는 나를 어쩜 이렇게 꼭 닮았을가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옷을 벗긴 사과들을 나박나박 썰었다. 내 인생도 누군가에게 나박나박 썰리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가슴 속에 차디찬 ‘사이다’를 부은 것처럼 싸했다. 그동안 수시로 간, 쓸개, 심장, 대소 창자에서 아프다고 아우성 치는 소리를 들었으니깐.

첨가제로 향긋한 레몬즙을 나박나박 썰어놓은 사과에 버무렸다. 살아가면서 나는 분명 레몬향처럼 싱그러운 향기가 내 몸 속으로 경계없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도 느꼈었다.

사과를 졸이다가 잼의 필수품인 설탕을 넣었다. 순간 눈앞에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부모님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을 비롯한 가족들의 얼굴, ‘ㄱ ㄴ ㄷ ㄹ’부터 지금까지 쭉 이끌어주신 고마운 스승님들의 얼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늘 함께 하던 다정한 친구들의 얼굴, 늘 친근한 동료들의 얼굴, 토끼 같은 내 제자들의 얼굴, 볼품없는 내 졸작들도 꼼꼼히 읽어주시며 ‘댓글’도 달아주고 고무해주던 고마운 선배님들 그리고 독자들의 얼굴이 다투어 내 머리속으로 뛰여들어온다. 순간 저도 모르게 내 인생의 ‘필수품’ 같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의 물결이 소용돌이친다.

졸이고 졸여 드디여 ‘사과잼’이 탄생했다. 숟가락으로 입에 떠넣었을 때의 그 상큼하고 달콤함이란 내 궁색한 언어로는 다 표현이 안될듯하다. 역시 화려한 변신은 아름답다. 사과가 깎이고 졸여져서 새로운 모습을 탄생하듯이 나도 여유가 없었던 예전의 생활의 때를 벗으면 ‘과피’를 깎이는 아픔은 있을지라도 아름답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사십여년 살아오면서 진정 나를 위해 살아온 삶이 구경 얼마나 될가 하고 잠간 기억의 샘을 길어올려본다. 째지게 가난한 농촌에서 태여나 다행히 대학에 붙어 공부하고 그 시절까지만 해도 대학생들에게 ‘통일 배치’라는 정책이 있어서 운이 좋게 할빈에서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집 하나 맡을 수 없는 토끼꼬리 만한 월급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지어 남들이 다 쉬는 휴식날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열심히 뛰여서 아글타글 집 장만에, 차 장만에, 애의 양육에 ‘돈의 노예’가 되여 ‘생활의 노예’가 되여 아득바득하면서 취미가 뭐고 흥취가 뭔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숨 쉬면서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물론 한때 문학은 내 존재의 비밀스런 심지이자 불꽃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라고 생각할 만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너무도 소중한 내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베란다에 버려진 늙어가는 사과처럼 그렇게 버려져있은 것 같다.

그러나 이미 흘러간 시간은 서글퍼하지 않으련다. 아파하지도 않으련다. 아니, 서글퍼하고 아파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아무리 아파하고 서글퍼도 그것은 어쩌면 결코 피해갈 수 없었던 나 자신의 운명이였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더 이상 그대로 체념하며 살 수는 없다. 자동차는 ‘유턴’할 수 있지만 인생은 ‘유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내 주위엔 항상 날 응원해주고 고무해주는 ‘비타민’ 같은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나를 아프게 란도질하던 일들을 잊고 씩씩하게 살 수 있게 한다. 그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아픔을 견디고 새로운 탄생을 맞이한 사과를 보면서 내 안에서도 어떤 욕망이 ‘퐁퐁’ 물방울처럼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리명화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