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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김춘희의 ‘겨울 산속의 하얀 집’에 살고 싶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1-22 12:30:25 ] 클릭: [ ]

김춘희는 대학교 때부터 시를 썼고 지금은 우리 문단에 꽤나 알려진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우리 모두의 령혼의 안식처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겨울 산속의 하얀 집이고 싶다〉(외 16수, 연변시인협회 편찬, 《시향만리》13-14, 연변인민출판사)를 좀 보자. 그녀의 인생 소망이 고스란히 피여나고 있다. “바람 불면 바람 먹고/ 눈 오면 눈 먹고” 자연순응적이다. 그리고 ‘기다려지는 이 없어도’ ‘길 따라 찾아오는 이에게’ “슬퍼도 따뜻하고/ 외롭고 서러워도 아늑한/ 깊은 산 눈 덮인 동화 속의/ 하얗게 다정한 작은 집이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애가 넘쳐난다. 이 시에서 자연과 인간의 교향곡 속에 우리 시대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흘러나온다. 이런 시적 빠뽀스는 많은 시들에서 구구절절 토로된다. 〈흐르는 강물 앞에서〉는 바로 흐르는 강물에서 인생의 후회를 느끼게 되고 메마른 인생의 풍요함을 추구하게 된다. 〈겨울낚시〉를 보면 “온갖 욕심/ 온갖 번뇌”를 녹이며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겨울낚시를 노래하고 있다. 〈2월의 하늘은〉에서는 오고 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즐기는 자연융화적인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 새의 날개를 달아주면〉에서는 자연친화적인 새에 반해 인간은 가령 새가 되더라도 자연친화적이 될 수 없는 비극을 읊고 있다. 인간이 너무 인위적으로 변해 자연과 너무 멀어져있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를 노래한 시는 〈무덤이 꽃으로 피기까지〉에서 고조된다. 인간의 죽음조차도 죽음 자체로 끝나지 않고 생명으로 피여나는 일종 우주만물의 상생원리가 읊어지고 있다.

이외에 〈사람아〉에서는 인간의 ‘아픈 마음 아픈 날들을’ 보살피는 휴머니티를 호소하고 있다. 〈타도하자, 그거〉(사랑, 어디 그렇게 흔한 거더냐)에서는 남의 사생활까지도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좌’적인 정치시대의 비극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사랑에 대한 진한 인도주의정신을 내비치고 있다. 〈눈〉에서는 이런 인도주의가 ‘케익 같은 하얀’ ‘눈을 노래하던 마음에’ “오늘도 지구촌 그 어디에선가/ 주린 창자 달래는/ 죄없이 맑고 진실한 눈동자들”―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보다 넓은 경지에로 승화된다.

김춘희의 시에서 이런 휴머니즘적이며 생태주의적인 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시는 현단계 보편적인 인간애가 부족하고 인위적인 생태평형 파괴가 란무하는 상황 속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 세상 시인들 가운데 사랑을 노래하지 않은 시인이 어디 있으랴. 김춘희도 마찬가지이다. 시와 사랑은 찰떡 궁합이거늘! 〈꽃잎아〉를 보자. 이 세상에 사랑이 영원히 안주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따라서 〈1월이 오면〉에서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사라진듯한 1월 한겨울에 아이니컬하게 고양되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란다. 사실 이 아이니컬이 인생의 진실에 다름 아니다. 〈겨울나무〉는 마음이 하나로 이어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김춘희는 얼마전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유별난 줄로 안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에 대한 시로 피여난다. 〈당신 하나에 시 한수〉는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당신 하나에 시 한수/ 나 하나에 용서 하나 빌면서” 그리움과 용서를 빌고 있다. 〈당신은 아십니까〉에서는 돌아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하고 있다. 〈눈이 내린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는 눈이 되여 내린다. 그리고 ‘산이 되고 강이 된’다. 결국 어머니는 온 우주가 된다.

김춘희는 조선족 시인으로서 민족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눈을 보니 눈이 그립다(겨울새)〉를 보면 애모픈 자연으로부터 환기된 인간애, 민족애를 톺아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김춘희의 시는 ‘시는 그 사람이다’는 명제에 잘 들어맞는다. 그녀의 시는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있다. 그녀의 성격과 인간됨됨이가 이렇다. 그녀는 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를 ‘신성시’한다. 한수 한수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진중하게 탄생시킨다. 녀자가 아이를 낳듯이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노래는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이런 시들은 바로 그녀의 개인적 사연이 깃든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그녀는 다부지게 작게 생겼어도 스케일은 크다. ‘재상의 마음속에 배를 노닐 수 있다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우주를 품을 수’ 있다. 그녀의 시에서 우주자연을 노래하고 민족애나 민족얼을 읊고 보편적인 인간애를 고취한 시들은 그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자연스러움과 진정성, 그리고 큰 스케일은 김춘희 시의 한 특성으로 볼 수 있겠다.

미시적으로 볼 때 김춘희의 시는 예술적으로도 뛰여난 면들이 있다. 〈꽃잎아〉에서 “연분홍 고운 입술로 입 맞추며/ 열리는 가슴마다를” “향기로 물들이던/ 4월의 예쁜 꽃잎”에 기탁하여 사상감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시적 감성이 풍부하고 뛰여나다. 〈눈을 보니 눈이 그립다(겨울새)〉도 마찬가지이다. ‘무덤이 꽃으로 피기까지’에서 무덤을 시적 자아로 의인화한 것은 ‘낯설기 하기’에 성공적이다.

현대시의 이미지창조 차원에서 놓고 볼 때도 그럴듯한 면이 있다. 〈1월이 오면〉에서 “울다가 얼어서 반짝이는/ 하얀 목소리”는 사랑의 순진무구하고 절절한 감정을 잘 이미지화했다면 〈눈〉에서 눈을 ‘하늘시루의 하얀 입김 날리며’로 이미지화한 것은 상상력이 뛰여나다. 〈겨울 산속의 하얀 집이고 싶다〉에서는 제목에서 보다 싶이 상황설정과 ‘하얀’ 이미지를 관통시킨 것이 인상적이다.

이외에 시적 표현장치에 있어서 〈사람에게 새의 날개를 달아주면〉을 보면 “사람에게 새의 날개를 달아주면/ 사람도”를 매 련 첫시작에 반복함으로써 인간과 새의 극명한 대비를 이끌어내여 주제를 고양시키고 있다. 〈타도하자, 그거〉(사랑, 어디 그렇게 흔한 거더냐)는 사설형식으로 되여있되 객관적 사실과 서정적 의론을 잘 결합시키고 있다.

김춘희의 시는 적어도 한번 읽어볼 만하다. 우리 시대에 감로수가 되리라!

 

                                                                         /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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