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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촌장의 고민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1-08 12:12:05 ] 클릭: [ ]

밖에서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새벽잠에 빠졌던 명훈이는 웬 사람이 신새벽부터 성화인가고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끌신을 신고 나가 대문을 열었더니 권씨였다. 아들 덕호가 ‘수용소’로 들어간 날부터 매일 찾아온다. 권씨는 계속 하던 말을 옹알거리며 명훈이 앞에서 볼품없이 찌든 얼굴로 눈물을 찔끔찔끔 짠다.

덕호는 한주일 전에 마을에 사는 한족집 진령감네 딸을 ‘강간’하여 ‘수용소’로 들어갔던 것이다. 40살을 코앞에 두고 장가를 못 가더니 끝내 일을 치고 말았다. 덕호가 잡혀간 다음날 명훈이는 진령감을 찾아갔다. 명훈이가 진령감을 보고 서로간에 일을 좋게 처리하자고 말했더니 진령감은 이건 분명 ‘강간’이라고 하면서 수염이 까시시한 입으로 곰방대만 쫄쫄 빨았다. 명훈이가 “집의 딸도 문제가 있다. 덕호도 그만하면 사내답고 벽돌집도 있고 하니 결혼을 시키고 말자.”고 바투 들이댔더니 진령감은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생각 같아서는 주먹이라도 한매 안기고 싶었지만 명훈이는 꾹 참았다.

권씨는 손등으로 눈굽을 주근주근 누르면서 아들을 구해달라고 징징거렸다.

명훈이는 아침을 먹고 볼일이 있어 현성에 갔다가 그 걸음에 덕호를 만나보았다. 덕호는 반달 동안 ‘수용소’에 있더니 수염이 와자자하고 거칠해졌다. 명훈이를 본 덕호는 제발 자기를 풀어달라고 애걸했다. 명훈이가 ‘수용소’ 문을 나서는데 생각 밖으로 진령감네 딸이 덕호를 보러 왔다. 명훈이는 웃음집이 흔들흔들했다. 진령감 딸이 명훈이를 보고 웃었다. 명훈이는 속으로 ‘X같은 진령감 어디 두고 보자.’고 쾌재를 불렀다.

명훈이는 현성에서 돌아오는 길로 진령감을 찾아갔다. 인츰 술상을 차리라고 닥달했다. 명훈이가 당신 딸이 ‘수용소’로 덕호 보러 갔다고 말하니 진령감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다. 믿지 못하겠으면 저녁에 딸이 돌아오면 물어보라 하고는 명훈이는 진령감네 집에서 나왔다. 뜻밖으로 진령감이 명훈이를 쫓아나왔다. 살기등등하던 령감이 갑자기 기가 폴싹 꺾이고 곰상곰상해졌다. 진령감이 명훈이를 집안으로 끌었다. 진령감은 덕호네가 돈 5만원만 내면 자기네가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명훈이는 본인이 아니니 결정을 짓지 못하겠다면서 덕호가 나온 다음에 다시 보자고 했다.

덕호는 진령감 딸이 ‘강간’이 아니라고 법원에 찾아가는 바람에 반달 만에 풀려나왔다. 현으로부터 명훈이네 마을에 새농촌건설자금 200만원이 내려왔다. 마을길을 개조하란다. 좋은 일이였다. 명훈이가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마을에 로동력이 없었다. 좋은 돈벌이였지만 마을에는 일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덕호네 형제에다 한국이나 연해지구로 나가 돈이나 벌고 돌아온 ‘신사’들이 20여명이 있었으나 손끝에 흙을 묻히려 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비들비들하는 령감들이 아니면 로친들이였다. 명훈이는 할 수 없이 이웃마을의 한족들을 불렀다. 하루에 100원 벌이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일은 생각 밖으로 진척이 빨랐다.

그러던 어느 날, 뢰향장이 마을로 왔다. 뢰향장은 명훈이와 동갑이였지만 명훈이가 생일이 자기보다 두달 앞섰다고 명훈이를 보고 언제나 형이라고 불렀다. 뢰향장이 왔지만 명훈이는 그닥 반갑지 않았다. 요즘 마을길을 개조하는 일로 심기가 어지간히 비틀어져있었다. 명훈이가 뢰향장과 일터를 돌아보고 뒤마을로 가는데 어디선가 떠드는 소리가 났다. 명훈이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걸었다. 덕호네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득 모여 마작을 치다가 모순이 생긴 모양이였다. 명훈이는 대뜸 속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잘 놀아준다. 한족들은 돈을 버느라고 눈코 뜰 새도 없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마작판에 앉아 몇푼 안되는 돈 때문에 떠들다니 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명훈이는 씽하고 구들에 뛰여올라가 마작상을 둘러메쳤다. 마작이 여기저기 뿌리워나갔다. 명훈이는 마작을 놀아도 좀 눈치를 보면서 놀라고 엄포를 놓았다.

3일전이였다. 청도에서 돌아온 성수가 자기 이웃 한족과 싸움이 붙었다. 리유라면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분명 이웃에 살고 있는 한족이 도적질했다는 것이다. 결국 주먹이 오가고 성수가 한족을 때려 팔이 부러졌다. 향에서 경찰이 오고 성수는 자기는 ‘도적놈’을 때렸을 뿐이라고 말하니 경찰은 증거를 내놓으라고 했다. 결국 성수는 ‘파출소’로 끌려갔고 벌금 5000원을 하고 나왔다. 그 후부터 명훈이는 마을길에서 차소리만 나도 속이 철렁했고 때때로 밤잠을 설쳤다.

하루는 향으로 갔다가 명훈이는 뢰향장을 찾아갔다.

“뢰향장 내 한가지 요구가 있소.”

“무슨 요구…”

“난 촌장을 못하겠소.”

뢰향장은 허허 수집게 웃으면서 입을 다셨다.

“제길 난 정식으로 말하는데 웃긴…”

뢰향장은 명훈이에게 차물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또 이웃마을 때문이지… 그렇다고 해서 래일 그들이 당장 마을을 떠나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저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럼 누구하고 말하겠소? 뢰향장 밖에…”

량볼이 잔뜩 부어오른 명훈이는 자기 앞에 있는 차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후 못마땅한 눈길을 던지고 뢰향장사무실을 나왔다.

향에서 돌아오던 명훈이는 마을길에서 덕호를 만났다. 진령감의 딸이 덕호의 몸에 찰떡같이 딱 붙어있었다. 세상일이란 참 우습다. 며칠전에 ‘강간범’으로 ‘수용소’에 들어갔던 덕호가 매일 그 문제의 녀자를 데리고 다닌다. 오늘 따라 그녀는 너무 추하지 않았고 퍽 순실해 보였다. 허리가 짤룩하고 살색이 투명하여 녀자다운 데가 있었다. 명훈이는 덕호를 한쪽으로 불렀다.

“이 눔아, 너 정말 저 녀자와 결혼할 거니?”

덕호가 씩 웃었다. 장가를 가지 못해 술만 마시며 명훈이를 찾아와 장가를 보내달라고 하면서 꼭 아주머니 같은 녀자를 얻겠다고 물고늘어지던 덕호였다.

“너 싸가지 없는 눔이구나. 내가 돈이나 주고 말라지 않았니.”

“아따, 민족이 다르면 뭐라오. 외토리로 평생 늙어죽겠소? 그럼 아주머니를 주겠소? 흐흐…”

“이 자식, 또 시작이네.”

명훈이는 덕호의 뒤통수를 살짝 치면서 말했다.

“형이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아오?”

덕호는 명훈이의 말에 도전이라도 하려는듯이 그녀의 팔을 끼고 걸어갔다. 멀어져가는 덕호를 쏘아보던 명훈이는 팔을 홱 내저으면서 ‘에그, 내 저 새낄…’ 하고 혼자 뇌까렸다.

며칠 후 진령감이 명훈이를 자기 집으로 청했다. 명훈이는 일이 바쁘다는 핑게를 대고 응하지 않았다. 한참 후 진령감의 손자가 와서 뢰향장이 진령감네 집에서 기다린다고 하자 명훈이는 할 수 없이 진령감네 집으로 향했다.

명훈이가 진령감네 집에 당도하니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명훈이를 본 진령감이 맨발바람으로 달려나와 손을 끌었다.

“난 그래도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와주어 감사하네, 감사해…”

명훈이가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데 뢰향장이 명훈이를 보고 손짓했다.

“뢰향장, 마을에 왔으면 먼저 우리 집으로 찾아와야지. 내 집에는 앉을 자리가 없소? 술이 없소?”

“저것 보지. 우리 형님이 또 ‘꼬디’를 쓰는거. 나야 지나가던 걸음에 들린 것이고 이렇게 만나면 되지 않는가.”

뢰향장은 허허 웃으면서 명훈이에게 담배를 권했다. 마을사람들 몰래 면목 없는 술을 마시는 것이 싫어 명훈이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옴찔옴찔하다가 술상이 들어오자 몇잔 마시고는 뢰향장을 끌고 인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때 진령감네 며느리가 행주치마에다 손을 썩썩 닦으며 술상으로 다가왔다.

“촌장어른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셨는데 제가 좀 술 한잔 권할가요?” 진령감 며느리의 집요한 만류에 명훈이는 다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쳇, 그 주제에 술에 접어들자구? 인물만 고우면 단가? 술이야 그래도 우리가 호걸이지.’ 하고 속으로 으시대면서 명훈이는 사발을 가져오라 하고는 술 한사발을 단모금에 굽을 냈다. 진령감 며느리도 따라서 마셨다. 결국 명훈이가 ‘띠’가 끊어지고 덕호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 마을에는 명훈이가 진령감 며느리와의 술시합에서 대패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명훈이는 술에 졌다는 소리가 찜찜했다. 명훈이는 어느 날인가 술로 꼭 그들을 봉창하리라 윽별렀다.

마을길을 포장하는 일이 막바지에 올랐다. 명훈이는 뒤마을로 갔다가 무연하게 펼쳐진 앞논벌을 바라보았다. 보뚝에 올라서니 바삭하게 달구어진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왔다. 싱그러운 여름의 풀내음이 코속으로 파고들었다. 성급한 아이들 몇이 강가에서 깔깔거리며 헤염치는 것이 보였다. 빠훌리강의 강가모래가 해빛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명훈이는 우썩우썩 자라고 있는 벼들을 바라보면서 잔잔한 애수에 잠겼다. 이사짐을 싣고 나가는 사람은 조선족이고 들어오는 사람은 한족들 뿐이다. 명훈이는 고향벌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였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듯 허허로움이 한가슴 가득 차올랐다. 가슴에는 언제나 잔가시 같은 것이 껄끔거렸다. 명훈이는 왕대산자락으로부터 진을 치면서 들어오는 비를 보면서 마을로 향했다. 비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명훈이는 마을길에서 진령감을 만났다. 명훈이는 진령감을 보고 술 한잔 하자고 꼬드겼다. 전날 진령감네 집에서 술벼락으로 망신을 당한 것이 옹이로 마음에 박혀 내려가지 않았다. 진령감을 청해 집에 도착한 명훈이는 안해 미월이더러 술상을 갖추라고 했다. 단 둘이는 술을 마실 멋이 없다고 명훈이는 술 마실 사람 몇몇을 불렀다. 마실 사람들이래야 성수를 비롯한 몇명 뿐이였다.

밖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술 마시기에는 좋은 날이였다. 권커니작커니 술잔이 몇순배 돌아갔다. 술 두병이 굽이 났다.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비실비실 자리를 피했다. 명훈이와 진령감만 남았다. 명훈이는 만취되여 비 내리는 마을길을 팔자걸음하며 집으로 돌아갈 진령감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또 술 한병이 굽이 났다. 명훈이는 진령감를 보고 우리 마을에 와서 사니 어떤가고 직통배기로 물었다. 진령감은 조선족은 의리를 지켜 좋고 더우기 벼농사를 하려면 수리시설이나 농토환경이 한족마을보다 더 좋다고 했다. 명훈이는 진령감의 술잔에 련속 술을 부었다. 이제 술을 붓는 명훈이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미월이가 죽자고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가고 도달거렸다. 명훈이는 술병을 들고 진령감에게 붓자고 보니 술잔이 보이지 않았다. “왜 술잔을 감추면서 시시하게 노는가”고 명훈이가 꼬부랑소리를 하자 진령감은 자기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 조화였다. 금방 아물아물하여 보이지 않던 술잔이 분명 진령감 앞에 있었다. 결국 진령감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명훈이가 쓰러지고 말았다.

덕호의 결혼식 날이다. 명훈이는 덕호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덕호의 결혼식을 도맡아나섰다. 명훈이는 식전부터 바삐 돌아쳤다.

점심때가 되자 잔치객들이 모여들었다. 뢰향장도 왔다. 신부가 덕호네 마당으로 들어오는데 명훈이는 마을에 있는 로년협회 로인들을 동원하여 춤을 추게 하고 미월이네 동아리들도 춤판에 몰아넣었다. 갑자기 새납소리가 나더니 골목에서 진령감네 동아리들이 양걸을 추면서 나타났다. 명훈이도 질세라 사람을 불러 로년협회에 가 새장구며 북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미월이네 동아리들에게 집에 가서 한복을 입고 오라고 재촉했다. 새납소리와 꽹과리소리가 고조에 오르면서 진령감이 앞으로 다가와 한발이나 되는 곰방대로 명훈이의 옆구리를 꾹꾹 찌르다가 흥이 나 돌아갔다. 새장구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한복을 입은 미월이네 동아리들이 춤을 춘다. 명훈이도 춤판에 뛰여들었다. 덕호도 새각시를 데리고 춤판에 합세했다. 명훈이는 신 들린 사람처럼 거의 발광적으로 춤을 추고 소리를 질렀다. 명훈이의 얼굴로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이 줄줄 흘러내렸다. 명훈이의 입에서 갑자기 〈아리랑〉노래가 터져나왔다. 그 노래소리는 앞산에 텅텅 부딪쳤다가는 다시 벼꽃이 하얗게 피는 벌판으로 울려퍼졌다.

새장구소리와 꽹과리소리가 한데 어울려 온 마을이 떠나갈 듯했다.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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