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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공무원의 생리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0-11 10:57:55 ] 클릭: [ ]

시작은 아주 순조로왔다. 양처장은 스케줄 구석구석을 꼼꼼히 체크하고 만일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사태까지도 미리 방책을 세워두었다. 깐깐한 데다가 소심한 사람이라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가 실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물샐틈 없는 사람이라 입을 모았다. 상황에 따라 욕일 수도 있고 칭찬일 수도 있다. 느슨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욕이고 철저해야 할 때는 칭찬일 것이다.

이번 일은 양처장한테는 한차례 준엄한 고험이였다. 어쩌면 올해 년말에 있을 진급을 앞두고 지도층에서 일부러 안배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장이라고 다들 듣기 좋게 불러줘서지 사실 그는 부처장이였다. ‘정무반’이 곧 혁명근거지로 학습을 떠나는데 양처장이 지도자들을 제치고 단장이 됐다. 부담스럽고 신경이 씌였지만 어쩌면 유감없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모기 한마리 끼여들 틈도 허용치 않는 완벽함을 꿈꾸었다.

그런데 출발 6일 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학습반 2조에 합류했던 조주임이 갑자기 1조로 옮긴 것이다. 어찌 보면 깨알처럼 작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양처장은 이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조주임이 건너오기 전 1조에서는 장주임의 직급이 제일 높았다. 따라서 장주임이 대회에서 중요발언을 하기로 결정 났는데 이 문제를 다시 연구해야 했다. 서렬에 관계되는 만큼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장주임은 국장급이고 ‘정무반’ 실권 일인자였다. 그런데 4주 전에 허주임이 부임되여오면서 장주임은 자리에서 손을 털고 2선으로 물러났다. 어차피 서너달 후면 퇴직이기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무방했지만 장주임은 꼬박꼬박 출근도장을 찍었다. 사람들은 앞에서는 여전히 장주임이라 깍듯이 불렀지만 뒤에서는 권력욕이 지나치다고 수군거렸다. 반면 조주임은 비록 부국장급이긴 하지만 현역이다. 전직 일인자와 현직 이인자 사이에서 누구를 앞에 세워야 맞는 것일가.

공무원사회에서는 서렬을 잘 가려야 한다. 특히 L시 ‘정무반’처럼 하급 단위가 많고 구성원 성분이 복잡하며 지도자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더더욱 서렬정리를 잘해야 했다. 자칫하면 본의 아니게 문제를 일으키고 물의를 빚을 수 있다. 마치 복잡한 교차도로에서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되면 필연적으로 접촉사고가 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처장은 그런 부분에 있어 체질적으로 뛰여난 감각의 촉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로서도 판단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출발 5일 전이다. 조주임이 1조로 옮긴 리유가 파다하게 퍼졌다. 소문을 듣고 나서 양처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2조에는 원래 고주임이라고 주임 한명이 더 있었는데, 그로 말할라 치면 다른 단위에서 부국장으로 오래 있다가 젊은 사람들의 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무반’으로 자리를 옮긴 케이스다. 그 과정에서 국장으로 진급했지만 ‘정무반’에서의 직위는 부주임으로 서렬은 4위다. 이런 경우는 누구를 앞자리에 놓든 당사자들은 서로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어중간하고 난감한 상황에서 고주임이 먼저 제안을 했다. 중요발언은 조주임에게 넘기고 본인은 사회를 맡겠단다. 서렬도 서렬이거니와 ‘굴러들어온 돌’인 고주임으로서는 당연히 자신을 낮추고 ‘박힌 돌’인 조주임을 높여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조주임의 립장에서는 자신보다 반등급 높은 고주임이 사회를 보고 자신이 발언하는 상황이 아주 불편했던 모양이다. 조주임은 친한 동료한테 슬그머니 속심을 털어놓았다. “이것은 나를 꼬챙이에 꿰서 불에 굽는 거나 같네.” 그 말이 퍼져서 그 날 하루종일 ‘정무반’ 곳곳에서 “불에 굽는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밤을 고민한 후 양처장은 다음날 아침 일찍 서기를 찾아갔다. 왕서기와는 한 고향 사람이라 가끔 허물없이 속을 터놓을 때가 있었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큰 걱정입니다.” 수심이 가득한 양처장에 비해 왕서기는 여유로워 보였다. “장주임이 발언하기로 이미 결정난 것을 알면 조주임도 굳이 나서려고 하지 않을 거요. 양처장이 직접 찾아가서 상황을 보고하고 의견을 청시하시오. 그러면 조주임의 체면도 충분히 세워주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요.”

양처장은 그 즉시로 조주임을 찾아갔다. 세번이나 찾아갔는데 마냥 사무실이 비여있어서 네번째로 걸음해서야 만날 수 있었다. 과연 왕서기가 예견했던 것처럼 조주임은 오랜 상관인 장주임이 발언을 하는 것이 지당하며 본인은 전적으로 조직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되는 것에 감사하며 양처장이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설 때 조주임이 짐짓 눈웃음을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양처장이 앞뒤로 고생이 많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좋은 말이 분명한데 양처장은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일종의 경고처럼 들렸던 것은 그의 예민함 때문이였을가, 아니면 어떤 징후였던 것일가.

다음날, 웬 일로 진회계가 양처장을 찾아왔다. 그는 ‘정무반’ 설립초부터 있었던 원로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이런 일은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는 취지로 진회계가 장장 50여분을 떠들었다. 현역 지도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자리에서 물러난 지도자가 나서선 안되며, 장주임도 이제는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여전히 나설 데 안 나설 데 가리지 않고 따라나서서 결국 이 사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자기가 총대를 메고 장주임을 물러나게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내용으로, 훈계 반, 과시 반이였다.

양처장은 아연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진회계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리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총대를 메려고 하는 것일가? “양처장, 나를 믿어보게. 내가 공무원 생활 몇십년인가. 이 바닥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지.” 자신 있게 웃어보이고 진회계가 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양처장은 도무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진회계의 평소 스타일을 보면 일을 키우는 사람이라 이번 일을 또 얼마나 크게 만들지 슬슬 걱정이 됐다. 그 날 오후, 뜬금없이 장주임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은 요즘 몸도 안 좋고 기력도 떨어지니 발언을 조주임한테 맡기는 것이 좋을 거라는 내용이였다. 진회계의 입김이 통한 모양이였다.

“네, 네. 알겠습니다.”만 련발하면서 전화를 받는 양처장 온몸에 비지땀이 났다. 장주임 목소리에는 크게 불쾌감이나 노여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된다. 장주임처럼 로련한 사람은 쉽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감정을 감출 수 있는 진정한 포커 페이스만이 일인자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다. 어쩌면 장주임은 지금 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친 본능을 일깨우며 어금이를 깨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처장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진회계와 얽히지 말았어야 했다. 분명 그는 양처장의 의사라고 장주임에게 전했을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항상 다른 사람 핑게를 대고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면서도 남의 의견을 전달하는 척 위장하기 위해서이다. ‘정무반’ 모든 스캔들의 핵심 메이커지만 폭탄을 던져놓고 자기는 늘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다. 어쩌면 그 수완 덕에 수많은 문제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여직 그 자리를 보존하는지도 모른다.

양처장은 머리가죽이 땡겼다. 오래동안 장주임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써왔는데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하지만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다시 조주임한테 가서 발언을 맡아주십사 매달려야 하는 판국인데 이미 심기가 불편한 그가 수락할지가 미궁속이다. 그 날 밤 양처장은 또 잠을 설쳤다.

출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양처장은 아침 일찍 왕서기를 찾아갔다. 허주임을 찾아가볼가도 생각했지만 허주임은 도무지 얼굴 보기가 힘들다. 아침에 잠간 얼굴을 내민 후 스케줄을 확인하고 별다른 사안이 없으면 급히 사라지군 했다. 마침 주임 사무실 공사 중이라 그럭저럭 핑게거리는 있었다. 사람들은 장주임이 눈치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왕서기가 반갑게 양처장을 맞았다. 서기 사무실은 허주임 사무실 바로 옆이다. 며칠 전에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는데 그 날은 공사 소음 때문에 앉아있기가 무척 괴로웠다. 어쩌면 전날 밤 잠을 설쳐 몸이 허해진 탓일 수도 있다. 양처장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 설명을 드렸다. 왕서기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일이 꼬이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조주임을 찾아가서 얘기하면 잘 풀릴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오. 항상 신중하시오. 그래야 탈이 안 나는 법이요.”

그 날 오후, 조주임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된 마당에 계속 사양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발언을 맡겠다고 했다. 양처장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였다. 하지만 찝찝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기름떡 굽듯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는 과정에 지도자들의 심사는 틀어질대로 틀어졌을 것이다. 한번 밉게 보이면 열번 잘하는 것으로도 미봉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이다. 어쩌면 그 한번으로 정치인생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장주임은 어차피 이발 빠진 호랑이와 진배없으니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듯 싶으나 아직 한창 나이인 조주임은 앞으로 볼 날이 소털 같다.

역시 자신은 여러모로 서툴다고 양처장은 자책했다. 이번 일은 훨씬 더 세련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애초에 왕서기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다. 부처장 밖에 안된 자기가 주제넘게 지도자들의 일에 나설 게 뭔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쪽으로든 해결이 날 것이고 정녕 해결을 못 봐도 그건 부처장급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지도자의 지시를 받아 충실히 리행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본분을 지킨 것인데,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다니! 양처장은 후회막급이였다. “일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해도 되지만 문제가 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무원이 되고 나서 그의 첫번째 원칙이였는데 의욕이 앞서다 보니 그만 깜빡했던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서둘러댄 것이 첫번째 착오라면 두번째는 왕서기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잡음없이 “중요발언은 어느 분이 하십니까?”고 묻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일이 틀어져도 책임을 뒤집어쓸 일도, 지도자들한테 돌아가면서 인심을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양처장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으로 인해 시답지 않은 일에서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오점을 남긴 것을 탄식했다. 풀잎에 손을 벤 격이였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다.

이 정도로 마무리된 것도 다행이라고 안도하려는 찰나, 출발 하루전 아침, 왕서기가 찾아왔다. 조주임이 많이 아파서 학습반에 불참하니 발언은 장주임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단다. “다들 뒤에서 뭔 말이 그리 많은지…” 왕서기가 말끝을 흐렸다. 양처장은 눈앞이 깜깜해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듯했다. 드디여 해결된 줄 알았는데 막판에 또다시 뒤집혔다. 너무 많이 뒤집고 너무 많이 구웠다. 기름떡이였다면 진작 타버렸을 것이다. 하긴 이 상황이 타버린 기름떡과 뭐가 다른가. 무슨 낯으로 또다시 장주임에게 부탁을 한단 말인가. 이 일만은 죽어도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왕서기는 양처장이 나서는 것이 옳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사람 좋은 그였지만 이 난국에서는 몸을 빼고 싶어하는 눈치가 력력했다. 하긴 다들 제 눈에 티가 가장 아픈 법이니깐.

양처장은 뻐근해지는 목덜미를 잡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난 한주 만사를 제쳐놓고 오로지 이 일에만 매진했는데 결국 모든 것이 말짱 ‘꽝’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우박 맞은 배추잎처럼 여기저기 상처자국만 내고 말았다. 이 바닥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절대로 문제를 만들어서는 안되거늘, 꽈배기도 아니고 이 정도로 일을 꼬이게 만들었으니 이 랑패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양처장은 눈앞으로 다가왔던 진급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정치 인생 8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아파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눈다던 조주임이 테니스라켓을 들고 날렵하게 주차장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창밖으로 언뜻 보였다. 야릇한 불덩이가 양처장의 가슴 밑으로 재빨리 굴러갔다. 순식간에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탈출이 불가능한 이 순간에 그는 튕겨오르고 싶고 거스르고 싶었다. 하지만 양처장은 그럴 위인이 못되였다. 다시 한번 조주임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일가? 양처장이 다급히 주차장 쪽으로 뛰여가고 있었다.

 

                                                                            /홍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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