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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무성의 대화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8-23 10:51:23 ] 클릭: [ ]

하루 스물네시간 중에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시간은 기껏해야 대여섯시간 취침시간 뿐이다. 지루했던 오늘 하루의 해가 저물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새로운 아침이지만 내게는 하루하루 반복되여가는 육아의 나날이였다. 수유, 집안 청소, 빨래, 식사 준비로 다망한 매일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산휴가 끝나고 출근 날자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이런 반복 속에서도 변하는 건 나날이 커가는 아기 모습과 나날이 늘어가는 얼굴의 주름들이였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 모습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나날의 무미건조는 때론 역시 견뎌내기가 고달팠다.

그래서 육아도 육아지만 지루했던 시간들을 달랠 수 있었던 게 역시 지금 세월에 와이파이만 터지면 남녀로소 누구든 즐기는 위챗방이였다. “애기, 잘 크고 있지?” 고향 친구한테서 보내온 안부 메시지에 마음이 갑자기 따스해진다. 그래도 저 멀리 떨어진 고향 쪽에서 나의 현황을 궁금해하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친구가 있길래 온몸에선 사르르 온기가 돌았고 육아로 피곤해진 몸 구석구석에선 비록 짧지만 정이 오가는 이 말 한마디에 순간 희열이 넘쳐난다. 이게 바로 음성 통화가 아닌 몇글자 안되는 문자로만 오고가는 무성 대화의 위력이였다.

“오, 잘 크고 있어. 너도 잘 지내고 있지?”

오고가는 안부 메시지로 서두를 떼고 그 다음으로는 위챗방에서 떨고 있는 수다들이다. 은은한 노래소리에 그윽한 커피향이 넘쳐흐르는 카페처럼 분위기 있는 장소가 아니여도 좋았고 특별히 시간을 따로 빼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꼭 필요로 하는 건 단 두가지, 하나는 인터넷, 다른 하나는 편한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만 통하면 자기가 편한 시간에 맞춰 그 누군가와 교류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터넷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아침 일찍 보내온 안부 메시지였지만 나에게는 아기를 재우고 난 깊은 밤, 한숨 돌릴 시간에나마 메시지 확인이 가능했다. 이쪽 문자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든 편한 시간에 할 수 있게 넉넉한 시간 여유를 주고 있어서, 그리고 몇백리 몇천리 떨어진 거리지만 짧은 문자로나마 마음이 오고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런 면을 본다면 요즘 세상에선 단지 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샐러리맨 친구나 변호사 친구나 어쨌든 누구한테든 공감이 갈 것이다. 그러니까 거리 땜에, 아니면 시간 땜에 만나지 못하는 유감스런 마음을 위챗으로 달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나 다음주 고향에 내려가는데 시간 내줄 수 있어? 얼굴이나 한번 보자.”

갑작스레 보내온 문자에 마음이 완전 들떴다. 고향에 내려온다는 말에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대가 된다. 이게 얼마 만인데 하며 마지막 만남에서 지금까지 날수도 아닌 해수로 따져보니 퍼그나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학창시절 그 모습, 그 성격 그대로 남아있는지, 동반자는 만났는지, 가족은 불었는지… 만나기도 전에 혹시 마음속 상처를 긁어내는 건 아닌지 하는 수심에 그동안 위챗에서 감히 물어보지 못했던 현황들을 만나서 꼭 알아보고 싶었고 만나기도 전에 그에 대한 상상이 온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설레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다음주 스케줄을 짜놓는다. 시간이 안된다 해도 방법을 대서라도 시간을 짜내고 싶었다. 아기 수유는 어쩌고? 갑자기 큰 걱정거리가 머리에 떠올랐다. “아가야, 미안한데 그 날 하루만 우유 먹어줄 수 있겠니?” 하며 새근새근 잠속에 깊이 빠진 아기를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해본다. ‘아니야, 이것보다는 우선 애기 아빠한테 우유 타는 법과 우유 먹이는 법, 기저귀 바꾸는 법을 배워줘야지.’ 그래서 이튿날부터 시작한 아기 아빠 맹훈련이였다. 노력 끝에 며칠간의 실기 훈련은 나에게 그래도 그나마 마음을 좀 내려놓고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결실을 보여주었다. 친구를 만나는 설레임과 기대감은 그렇다 치고 지금 상황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한 그 대가도 조련찮다고 생각하니 ‘큭’ 하고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 날이 닥쳐왔다. 그래도 정작 집문을 나서려고 하니 걱정이 태산같아 아기 아빠한테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서야 간신히 집문을 나섰다. 약속한 시간 대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는 벌써 창가 옆 자리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만난 지가 옛날이지만 위챗에서 봤던 최근 모습이 떠올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였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뭘 그리도 유심히 들여다보는지 내가 옆에 다가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은희야!”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이게 몇년 만이야.’ 하며 서로 부둥켜안기라도 하며 반가와할 줄 알았는데 “오, 왔구나.” 하는 덤덤한 소리에 살짝 실망되기도 했다. ‘하긴 위챗으로 지금 모습 지켜보고 왔으니 뭐 그렇게 흥분되겠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고향엔 웬 일이니?” 하고 묻자 “오, 사흘간 휴가 내고 잠간 내려왔어.” 묻는 말에 용건만 답하고는 또 고개 숙여 뭔가 열심히 들여다본다. “지금, 무슨 일 하고 있어?” 하고 물으니 “아직도 무역이야.” 하고 묻는 말에 답하고는 고개가 또 숙여졌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대화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오랜만의 만남은 이렇게 피동적인 대화로 이어졌다. 마음속에 남은 건 오로지 부풀어진 기대감 대신 푹 주저앉은 실망감 뿐이였다.

귀가길에 나서 싸늘한 가을바람에 흔들거리는 가로수 소리를 들으며 잠시나마 사색에 빠져본다. 인터넷 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건 무엇인가고. 인터넷 쇼핑, 인터넷 구직, 인터넷 통화 등 역시 일상생활 속에 편의를 도모해준 건 인정할 만하지만 때론 너무나도 이에 얽매여있었고 또한 대신 우리들이 응당 갖추어야 할 그 무언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점점 숙여만 지고 있는 고개, 언제 가면 한번 고개 들어 시선을 마주치며 심성을 나눠볼 수 있을는지…

/최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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