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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바람의 전화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8-09 11:17:31 ] 클릭: [ ]

일본에 가면 ‘바람의 전화’가 있다.

2010년 로후대책으로 일본 동북쪽의 이와테현가미헤이군오쓰치정(岩手県上閉伊郡大槌町)에 이주해온 정원설계사 사사키 이타루(佐々木格)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촌형에게 다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려고 뜰안에 전화박스를 만든 것이다.

전파가 없고 줄 없는 전화였지만 눈앞에 형님을 그리며 생전에 못해 드린 이야기를 하고 나니 슬픈 마음이 조금씩 달래졌다는 ‘바람의 전화’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해에 해일이 발생한 후 갑자기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는, 그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로부터 찾아오는 발걸음들이 끊기지 않는다는 ‘바람의 전화’이다.

시야를 점령해버린 푸른 바다, 거센 파도가 보내주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하늘 끝이 바다를 끌어안은듯 너무나 잘 어울리는 천애, 하늘에 비해 바다가 검은색임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닥 멀지 않게 바라보이는 저 언덕, 수수한 동북인의 인품을 느끼게 하는듯이 별로 가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편안한 언덕이다. 그 언덕을 향해 나는 한참을 걸었다.

그 이름 없는 언덕을 찾아 몇시간을 달려온 나, 잠시 울먹이는 무언가를 느꼈으나 인츰 차분한 마음을 되찾았다. ‘바람의 전화’ 라는 글발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 저거구나. 하늘나라와 련결이 된다는 전화가…’

몇년을 별렀는지 모른다. 37년 전에 떠난 엄마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내가 엄마가 가신 그 나이에 이르면서 한없는 그리움에 젖어 살게 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마음구석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바람의 전화’를 찾아온 것이다. 한번 심호흡을 길게 했다.

“딸랑―” 주인이 달아놓았을 추가 달리지 않은 종(钟)이 바람결에 흔들려 자기 존재를 알려주었다. 문을 열고 천천히 박스의 좁은 공간에 몸을 들여놓았다.

검은색의 다이얄식 전화기가 눈에 띄였다. 전화옆에 메모가 놓여있었다.

“‘바람의 전화’는 마음으로 말합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주세요. 혹은 바람소리가, 혹은 파도소리가, 혹은 새소리가 들려오면 당신의 마음을 전달해주세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물이 울컥 치밀어오르고 목이 꺼―억 메였다. 전화가 없었던 그 세월을 사셨던 엄마에게 다이얄 몇번을 돌려야 하나…

‘0’을 한번 돌렸다. 다이얄이 제자리로 되돌아오기 전에 입을 열었다.

“여보세…” 중도에서 멎은 내 목소리.

엄마와 전화를 해본 적이 없는 나, 가령 전화가 전파를 타도 엄마가 내 목소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전화기를 든 채 한참 멍하니 바깥 하늘을 쳐다보았다. 숨이 막힐듯이 울기가 올랐다. 막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밖으로 문을 밀었다. 정자에 앉아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던 6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나를 학교에 보낸 얼마 후에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 내가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을 땐 아침에 따뜻한 밥을 해주던 엄마가, 아직은 따뜻한 엄마 얼굴이, 엊저녁에 한 이불을 덮고 쥐고 잤던 가느다란 엄마 손이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심장마비로 마흔두살의 아까운 나이에 멀리 떠나버렸던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약속했잖아…”

엄마는 주말에 영화 보러 같이 간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작문콩쿠르에서 일등하면 이쁜 신을 사준다고 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길어구에 쪼크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멀리 그림자가 나타나길 얼마나 애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던 내가 어언 이렇게 엄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새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파도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나는 하얀 작은 둥지로 느껴지는 전화박스로 다시 들어갔다. 눈을 지긋이 감고 ‘바람의 전화’기의 다이얄을 돌렸다.

“엄마…

나 엄마 딸. 이제 엄마보다 더 나이 먹었어요… 결혼해서 아들두 낳았구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엄마…

갑자기 떠난 엄마 때문에 나 외로웠어요. 원망스러웠고 답답했고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

동화책 《빨간 구두》를 읽어주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늘 위안이 되였습니다.”

갑자기 전화박스 밖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간 눈물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들한테 동화책 읽어주는 걸 등한시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엄마가 늘 소학교에서 가르치셨던 ‘현대화’가 이미 실현된 지 오래 돼요. ‘로케트’가 진짜로 하늘에 날아올랐어요. 지금은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어요. 음식도 랭장고에 저장하구요. 빨래도 ‘세탁기’로 해요…”

“엄마…

한복을 입는 사람이 적었던 그때 세월에 당당하게 한복을 입으셨던 엄마가 너무 멋졌어요. 사람들이 뒤돌아보군 했던 이쁜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그 때 굽이 높은 구두가 있었더라면 엄마에게 잘 어울렸을거얘요. 요즘엔 사진도 채색으로 나와요. 흑백사진에 칠하는 색사진이 아니고 원래색 그대로 나오는 사진 말이얘요. 전화도 휴대폰이구요…”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쯤 엄마랑 온천려행 하고 싶어요…”

나는 전화박스에서 나왔다. 내리던 가랑비도 멎었다. 하늘이 너무 시원하게 높아보인다. 기세가 사납던 바다가 잔잔한 물결로 주름을 잡는다. 물결 우에 반사되는 반짝이는 해볕이 다이아몬드를 방불케 한다.

상큼한 내음을 후― 뿜어본다. 엄마 옷깃의 기미를 느낀듯, 향기로운 엄마의 냄새를 맡은듯, 내 속의 내음도 엄마의 향기를 닮은듯…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보였다.

울먹이며 ‘바람의 전화’에 다가서던 사람들도 웃는 얼굴로 전화박스에서 나온다. 한참을 서성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나와서 통곡하는 이들도 보인다. 두 손자를 앞세우고 지진으로 세상을 뜬 아들한테 한동안의 회보를 했다면서 후련해하는 할머니도 보인다. “여보, 여보” 부르기만 하다가 평온한 얼굴을 하고 나오는 녀인도 보인다.

예고 없이 떠난 가족을 이렇게라도 가까이에서 느끼려는 모두의 마음을 ‘바람의 전화’가 받아주는 것이다.

멀리서 정원 손질에 여념이 없는 사사키씨는 말없이 수걱수걱 제일을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모습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바람의 전화’로 엄마와 마음껏 대화하고 그리움을 쏟을 수 있어 더없이 행복했다.

진정 ‘바람의 전화’가 고마웠다.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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