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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커스는 아파서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7-05 12:56:51 ] 클릭: [ ]

어쩌다 나선 려행길이다.

아들애는 방학이 아니기에 동행하지 못한 려행길, 집에서 외할머니와 잘 지내리라 믿고 제주도 려행길에 나섰다.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여 여기저기 돌다가 서커스를 구경하게 되였다. 려행길에 서커스관람이라니. 엉뚱한 것 같지만 려행일정의 하나로 들어있고 또 여태껏 텔레비죤으로만 보았었던 서커스를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기대 반 호기심 반이였다.

서커스 단원들은 중국 아이들이란다. 원형의 서커스 무대 우에 어린 아이들이 씩씩하게 등장하며 인사를 한다. 열네살 우리 아들애보다 더 어려 보이는 애들, 문득 저 애들은 학교는 어쩌고 있지 하는 로파심이 든다.

무대 우엔 두개의 수직철봉이 설치되여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단원들이 둘씩 짝을 지어 그 철봉에 오른다. 원숭이를 방불케 하는 민첩한 동작들, 객석에선 박수소리가 울려퍼진다.

단원들은 철봉을 두손으로 혹은 다리로 혹은 한손과 한발로 지탱하며 갖은 묘기를 부린다. 철봉에 꺼꾸로 매달려 땅을 향해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던 한 아이는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에 멈춰선다. 객석에선 감탄과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저러다 상하면 어쩌지. 만에 하나 실수하면 어쩌지.’

바닥에 보호용으로 매트리스 한장이 달랑 놓여있고 특별히 위험한 동작을 할 때면 대원 두명이 그 매트리스를 들고 보호모드를 취한다.

‘모두 내 아들보다 어린 애들인데.’

순간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아들애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 애들도 부모가 있을텐데 저런 출연모습을 부모가 본다면 얼마나 손에 땀을 쥘가.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고 환호성과 박수소리 속에 어둠에 얼굴을 감추고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나는 눈물을 막았다. 서커스를 보면서 펑펑 눈물을 쏟는 이는 나 말고 또 있을가.

아들애를 할머니께 맡기고 한국에서 일에 전념하던 그 때의 어느 날 저녁 늦은 퇴근길 골목에 서너살 돼 보이는 남자애가 엄마와 함께 나왔다. 아빠 마중 나온 듯 엄마가 앞에 오는 아빠를 알려주자 그제야 졸랑졸랑 아빠 향해 달려가는 어린 아이.

참 이쁘고 귀엽다고 흐뭇한 웃음을 물고 돌아서자 불시에 쏟아지는 눈물에 집에까지 울며 왔던 그 때처럼. 서커스를 보는 내내 눈물은 멈추지가 않았다.

아들애를 처음 유치원에 보내던 때. 안 가겠다는 아들애를 “유치원에 안 가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고 달래서 유치원 문어구에 내려놓으려 할 때면 아들애는 울며 불며 내 목에 매달린다. 자기의 두팔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내 옷깃을 이발로 꼭 물고 놓으려 아니한다. 그때 아프던 마음. 어린 아들애는 한사코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절벽에서 떨고 있는 아기새를 날으라고, 창공에 날아오르라고 떠미는 어미새의 마음인양 그런 아들애를 떼여놓고 돌아서는 내 마음도 지금처럼 찢어졌다.

아들애의 학업을 위해 한국에서 돌아온 뒤 어느 날, 나와 함께 길에 나섰던 아들애는 불시에 나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내가 사람이여서 좋습니다.”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해서 다시 물었더니

“사자나 호랑이는 아주 어릴 때 엄마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은 오래도록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너도 많이 그리웠었구나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이젠 3년 세월, 아들애는 부쩍 커서 키도 내 키를 많이 넘었고 여러가지 일들을 자기절로 척척 해낸다. 아들애와 둘이서 영화구경도 가고 싶지만 아들애는 어느새 친구와 함께 영화 보러 가는데 더 익숙해졌다. 한겨울 스케트 타러도 친구와 함께라야 간다. 대견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서운함도 없지 않아 있다.

얼마 전에 있은 여름방학에 아들애는 학교의 조직하에 서안으로 려행을 떠났었다. 왕복 60여 시간의 려정을 기차에서 시달려야 한다고 하니 저으기 근심되고 걱정되였지만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시름을 놓았다.

그러나 아들애를 기차역에 바래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뭔가 잃어버린 듯 허망하고 불안했다.

짧은 려행을 보내고도 마음을 조이다니? 이제 대학은 어떻게 보내고 사회에는 어떻게 내놓을 것인가.

그래도 보내야겠지. 내 마음에서, 내 곁에서 날개를 굳혀가고 날으려고 퍼덕이는 너를.

너와 엄마는 한몸이였다가 분리되였다. 태줄은 잘렸지만 엄마와 너는 보이지 않는 태줄로 이어져 엄마는 그 태줄을 통해 너를 어루쓸고 걱정하고 사랑한다.

엄마 아빠가 부모님 곁을 떠난 것처럼 너도 장차 엄마 아빠 곁을 떠나 자립의 길을 걷겠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던 그 시절의 어린 너는 씩씩하게 걸어나가겠지. 어느 순간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걱정을 약간 부담스럽게 느낄 때도 있겠지.

사회라는 이 무대는, 인생이란 이 무대는 서커스무대처럼 위험할 수도 힘들 수도 좌절할 수도 있겠지. 네가 자기가 가진 인성과 기량과 기초로 서커스를 할 때 엄마는 그저 널 바라봐야겠지. 80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가 40대인 엄마를 걱정하 듯이.

서커스는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이라는 매트리스를 들고 아들아, 엄마와 아빠가 너의 서커스무대의 보조로 널 지켜서면 안되겠니.

 

                                                                        /김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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