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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베개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6-21 12:59:47 ] 클릭: [ ]

하루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지친 몸을 침대에 활 맡겨버렸다. 베개에 머리를 묻으니 너무 포근하고 따뜻하고 다정하다. 달빛이 유난히 밝다. 교교하고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문 너머로 비스듬히 들어와 은은한 빛을 뿌려준다.

베개에서 익숙한 내 체취가 풍긴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진붉은 베개, 베개모에 쌍복자가 수놓여진 베개가 너무 편안하여 남편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묻고 있는 것 같다. 새삼스레 베개야말로 아무도 모르게 사랑하는 님을 그리며 흘리는 눈물이나 행복에 겨워 활짝 웃거나 시름에 쌓여 잠 못 드는 이의 마음을 가장 잘 리해해주는 평생의 반려라는 느낌이 든다.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베개를 베고 누우면 팽이처럼 돌아치던 힘든 하루 일상에서 녹초가 된 몸도 사르르 풀리고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마음도 달콤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행복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기나긴 인생려정에서 잠은 거의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베개는 우리 삶에서 제일 가깝고 살갑고 변함 없는 친구이다. 독수공방 15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말없이 나를 지켜주고 나의 모든 번민과 고통과 외로움을 묵묵히 한몸에 받아안고 내 마음을 달래준 것은 모정의 뿌리와 어머니의 소박한 념원이 깃든 베개가 아니였을가?

베개를 베고 누우면 나는 삶에서 오는 아픔과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남편과 갈라져 생활하면서 나는 항상 남편의 베개를 내 베개 옆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고 마치 남편이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베개는 남편 대신 불평 한마디 없이 긴긴 밤 일편단심 곁을 지켜주면서 내 삶의 희로애락을 차곡차곡 담아주었다. 때로는 남편의 베개를 안고 밤하늘의 둥근 달님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힘든 마음을 하소연했으며 때로는 베개를 안고 어린애처럼 풀쩍풀쩍 뛰기도 했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는 첫날 베개모에 한쌍의 다정한 원앙새를 수놓아주었다. 그 베개에는 딸의 행복을 기원하고 부부간이 평생 금슬 좋게 행복하게 잘살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있었다. 신혼 첫날밤 베개모에 예쁘게 수놓은 한쌍의 원앙새를 보고 남편은 싱글벙글, 내 볼에 키스하며 하던 말이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다.

“여보, 우리도 이 원앙새처럼 평생 떨어지지 말고 늘 함께 하면서 이 베개에 우리의 행복을 수놓아가기오.”

친정어머니가 선물한 베개는 근 20여년 나와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했다. 그동안 베개는 어느새 색이 바래지고 베개잇이 보실보실 보풀이 일고 낡아 버릴 정도가 되였다. 하지만 버리기 아까웠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소망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감히 버리지 못했다.

내가 결혼할 때였다. 과년한 딸들이 시집갈 때면 마을의 어머니들이 제일 분망히 보냈다. 어머니들은 딸의 결혼을 앞두고 손수 사랑과 정성을 담아 베개모에 쌍복자, 수복강녕, 쌍원앙, 쌍학 등을 수놓았고 제일 좋은 솜을 놓고 폭신폭신한 이불 몇채씩 장만했다.

그리고 이불안은 광목천을 끊어다 몇날 며칠 해볕에 바래여 백설같이 하얗게 만들고 쌀풀까지 먹였다. 이불에서는 싱그러운 향기가 은은히 풍겼고 이불거죽은 가장 비싸고 귀한 비단을 씌워 한뜸한뜸 정성스레 지었다. 첫날 이불 두 세 채씩 만드는 데도 어머니들은 손이 무척 많이 갔다.

헌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예 베개와 이불을 만들지 않는다. 질이 좋고 다자인이 이쁜 침구들이 수없이 많기에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현시대 처녀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돈만 있으면 혼수로 가져갈 이불이며 베개며 방석이며 모든 것을 척척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이렇게 되였던가? 언제부터 어머니들이 식구들의 침구와 설빔을 짓고 설음식을 만들면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던 소박한 념원이 산산이 부서졌던가? 인생의 3분의 1의 시간을 베개에서 보내는 우리가 더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사랑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젠 우리 어머니들이 가족에 쏟는 지극한 정성과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사회의 발전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전통이 잊혀지고 어머니들의 정성과 사랑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들의 섬섬옥수로 정성껏 베개모에 수놓은 복자에 어두운 밤 고즈넉한 평화가 깃들어 잠든 이의 얼굴에는 행복이 어리고 외지에서 외롭게 잠자리에 들 때도 문득 다정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적막을 달래군 한다. 가족과 자식을 향한 어머니들의 소박한 마음이 바로 베개에 짙게 어려있다.

삶의 편안한 쉼터로 큰 위로가 되는 베개, 가족의 안녕과 사랑이 깃든 베개, 오늘도 나는 빨간 베개를 베고 아늑한 잠속에 빠진다.

아, 언제면 또다시 이 세상 어머니들의 념원과 애정이 담긴 베개를 베고 항거할 수 없는 모정의 뿌리를 눈앞에 그려볼 수 있을가?

 

                                                                             /류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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