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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의 빗질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6-07 11:20:30 ] 클릭: [ ]

딸애가 거울 앞에 섰다. 방금 감은 함치르르한 긴 머리의 물기를 살살 털고 가볍게 빗질하더니 이윽고 댕기 하나로 곱게 묶어 틀어올린다. 홍시처럼 한창 익는 시절이라 거울에 비치는 딸애의 모습은 이슬을 머금고 핀 싱싱한 꽃처럼 이쁘고 탄력이 넘친다. 순간 추억이 진동하며 왈칵 그리움이 몰켜든다. 엄마가 떠올랐다. 한때 엄마도 저렇게 거울 앞에서 빗질하지 않았던가.

엄마의 고향은 남녘이다. 겹쳐드는 가난으로 살길을 찾아서 두만강을 건넌 엄마는 어린 시절 훈춘 모 산골에서 부엌데기로 눈치삶을 살다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가난으로 해서 배운 것도 없고 옆에 일점 혈육 하나도 없는 엄마는 시집온 그날부터 늘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에 비하면 짝진다는 말을 밥 먹듯 들었다고 한다. 반면 아버지는 당시 농촌에서 말하면 서생이였다. 일정하게 공부를 한 아버지는 당원과 미남, 농회주석이란 이름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래서 고등말처럼 키 큰 동서인 큰엄마는 늘 동서로가 아니라 어린애 취급하듯 엄마를 부려먹고 닥달했다고 한다. 아직은 어린 것마저도 태여나지 않았고 더우기는 언니가 되여 보듬어줘야 할 동서인지라 당시 엄마의 심정은 그 얼마나 괴롭고 서러웠으랴? 매번 그런 일을 당할 때면 엄마는 소리없이 강변을 찾아 무작정 머리를 강물에 적시군 했다. 그리고는 가없는 하늘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수없이 빗질했다고 한다. 아직 키마저 다 못 자란 소녀에겐 어쩌면 그것은 일찍 타향의 혼이 된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작아만 지는 자신에 대한 서글픔을 토로하는 일종의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달고 시고 텁고 짠 시집살이 애환을 그렇게 빗질로 달랬고 날려보냈다. 그래서 녀인에게 있어서 빗질은 그냥 빗질이 아니고 일종 추억이고 발로이고 갈망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 집에는 여러가지 빗이 구전하다. 참빗을 비롯하여 두피에 좋다는 넙적한 쿠션빗과 녀인들의 긴 머리를 쫙 펴주는 집게빗… 등 여러가지 빗들이 있다. 물론 그 빗들은 딸애가 집에 올 때만이 제 값을 하지만 그 빗들을 볼 때면 늘 얼레빗 하나로 머리를 빗던 엄마를 보는 것만 같아 맘이 짠해지면서 문뜩문뜩 밤하늘의 별들과 눈을 맞추고 오래도록 대화하고 싶다.

빗살이 가늘고 촘촘하게 박힌 참빗과 빗살이 굵고 성글어 등이 활 꼴인 얼레빗은 엄마가 늘 쓰던 빗이였다. 옛날 못 살던 그 시기 사람들의 머리엔 늘 이와 서캐들이 욱실거렸다. 녀인으로서 머리를 깨끗이 거두지 못하면 자칫하다간 웃음거리를 빚어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렬악한 당시 상황에서 빗질 하나에서도 녀인의 정결함과 품위를 엿볼 수 있었다. 엄마는 머리를 감은 후 늘 참빗으로 먼저 머리를 빗은 다음 얼레빗으로 몇번 더 빗질했다. 빗질을 마친 후 솔에 비누를 묻혀 빗을 빡빡 문지르며 씻었다. 하여 엄마의 빗에선 은장도처럼 서뿔리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기운이 감돌았다.

새벽 닭울음소리가 들려오면 엄마는 잠을 깬다. 빛이 비쳐드는 집안에선 엄마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잠간 묵상에 잠겨있던 엄마가 거울을 마주놓고 넓은 수건을 무릎 우에 펼쳐놓고 서랍에서 빗을 꺼낸다. 이윽고 허리 절반까지 낭창낭창 흐르는 머리를 어깨 앞으로 잡아당겨 왼손으로 훑어내린다.

세상 풍진을 밀어버리듯 엄마가 머리를 빗는다. 빗살과 머리카락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엄마는 가르마를 따라 빗어내리다가 참빗을 바꾸어 물에 살짝 적신다. 다시 머리를 한쪽으로 몰아 손목에 힘을 들여 착착 빗어내린다… 휘어져감기는 사박사박 빗질소리가 고요 속에서 귀가에 착착 매달린다.

바람이 불어도 흩날리지 말라고 엄마는 머리에 까만 삔을 둬개 꽂은 다음 뒤로 넘겨 틀어올린 후 비녀를 찌른다. 거울에 비끼는 선이 고른 엄마의 모습은 독특한 머리스찔로 하여 한결 단정하고 아련하다.

머리가 슬쩍 곡선을 그어 한결 미남인 아버지가 한때 사랑의 기로에 섰다. 엄마보다 한결 젊고 뽀얗고 거기에 글 읽은 한 녀자가 아버지에게 끝없이 윙크했다. 총각시절에 이어 두번째로 아버지 앞에 차례진 녀자였다. 처음 차례진 녀자의 유혹 앞에선 그렇듯 담차게 헤여나온 아버지였지만 필경 남자의 맘은 꽃속에 가있다고 아버지는 초생달 같은 녀자의 눈섭 앞에서 이전과는 달리 잠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삶은 노래가 아니여서 아버지도 엄마의 그 어떤 부족함에 권태감이 몰켜왔으리라. 어느 날 술 한잔 한 아버지는 처음으로 엄마와 목청을 높였다. 비록 아직 불꽃 튀는 단계는 아니였지만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세월 같으면 맨발바람으로 뛰쳐나오는 녀자들도 있으련만 엄마의 눈길은 자식들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엄마는 찬물에 와락와락 머리를 감은 후 끊임없이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삶은 엄마에게 고달픔이란 숙제를 내주었다. 배운 것이 없는 엄마이지만 숙제를 착실하게 풀어갔다. 엄마는 인내와 관용으로 먼저 가슴을 풀어헤쳤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운 법이라 흔들리던 아버지가 돌아섰다. 그냥 허공 속에서 잠간 그녀와 눈빛만 교환했을 뿐이지만 엄마의 손을 잡고 가슴이 타도록 자신의 오점에 불을 질렀다. 결국 엄마의 빗질이 무너질 것 같던 가정을 다시금 해빛으로 포근히 감싸주었다…

틈이 있으면 바람이 스며들고 쯤이 있으면 달빛이 새여든다. 고요가 흐르는 적막 속에서도 엄마는 빗질을 멈추지 않았다. 갈대가 쓰러졌다 일어서듯 평생을 한치의 흔들림없이 살아갈 사람이 어디에 있을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흔들림은 만물의 법칙이고 일종의 예술이 아니겠는가. 땅이 있는 한 하늘이 가지 않는다고 엄마는 아버지를 믿었다. 엄마는 흘러가는 구름을 한없이 바라보았고 반짝이는 별들과 쉼없이 눈길을 맞추었다. 엄마의 그 빗질은 차분한 기다림이요 안존한 녀자의 품위였다.

빗질은 엄마의 생채기를 따뜻이 어루만져주고 새살이 나도록 보듬어주었다. 머리를 빗는 일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였고 사랑을 검증하고 다지는 행위였다. 누가 말했던가. 참된 사랑이란 구걸이 아니고 눈물이 아니고 참된 수련끝에 펼치는 상호에 대한 관용과 믿음이라고. 녀자의 마음은 호박속보다 더 좁아서 옹졸하기 그지없다고 했지만 엄마의 가슴은 바다처럼 넓고 비단처럼 곱기만 했다. 아버지는 다시는 그 어떤 바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직 나래를 엄마라는 꽃에만 접었다.

부부란 먼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이다. 그만큼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인내하면서 가끔 상대를 위해 희생과 타협도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가 바로 그런 녀인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엄마는 당신 손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빗질해드렸다.

봄이 가고 여름이 무르익던 어느 날 가을의 들국화를 그리며 엄마도 조용히 세상에 닻을 내렸다. 이제 엄마의 손은 아무 것도 쥘 수가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누님이 다가서며 머리를 빗질해드렸다. 자식의 빗질을 받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그렇듯 평온했다. 이제 엄마는 그 모진 세월의 눈물과 불안과 아픔을 모조리 벗어버리고 자신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란 그 마지막 빗질을 위한 버팀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는다. 순간을 살아도 더 보기 좋고 더 멋진 자기만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한다. 머리를 빗는 것은 단순한 치장만이 아니다. 빗질하면 거울을 보게 되고 거울 앞에 서면 자기를 비춰보게 된다. 어쩌면 빗질에는 돌아보는 세월이 있고 마음의 수련이 있고 래일에 대한 소망이 있는 것 같다. 엄마의 빗질, 어쩌면 그것은 삶의 노하우가 아닐가?

해살이 고운 아침이다. 저 거울 속에 비치는 엄마의 눈빛이 노을처럼 곱다. 이제 나도 거울 앞에 다가서서 엄마처럼 차분히 마음의 빗질을 해보고 싶다…

 

                                                                                  /맹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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