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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 ‘바람’은 언제 다시 불어올는지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4-19 13:42:18 ] 클릭: [ ]

우리 집 앞쪽 아빠트에 살고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고향의 풍습 대로 설맞이를 위해 친정집에서 일년 내내 기르던 돼지 한마리를 잡았으니 돼지고기를 가져가라는 것이였다. 부모님이 고생스레 기른 돼지인데 가족들끼리 즐기라고 사양하니 가지러 오지 않으면 우리 집까지 직접 가져다주겠단다.

그냥 받아먹는 것도 미안한데 집구석에 앉아 가만히 가져다주기까지 바란다면 더 미안하고 페를 끼친다는 생각에 나는 승낙했다. 가보니 친구네 집에서는 맛있는 갈비 쪽 고기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자며 나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설명절이 화제가 되자 고향의 설맞이 풍습들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친구네 고향에서는 해마다 설이 다가올 때면 집집마다 일년 동안 살이 통통 찌게 기르던 돼지들 중에서 언제나 한마리 쯤 남겨두었다가 잡아서 일가친척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대련 장하(庄河)라고 했다. 무슨 귀한 고기도 아니고 시장이나 슈퍼에 가면 제일 흔한 게 돼지고기인데 왜 이렇게 번거롭게 장만하냐고 했더니 친구는 그래도 설은 ‘제맛’으로 쇠야 기분이 좋다면서 ‘제맛’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제맛’으로 설을 쇠지 못한 지 벌써 10여년이 넘었다는 것을 느꼈다. 시대는 돈으로 뭐든지 다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였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번거롭다’ 아니면 ‘귀찮다’는 핑게로 아예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뭐든지 생산하는 업체들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뭔가 점점 희미해져가고 또 소실되여가고 있다.

과거 우리 동네에서도 설 무렵이면 가래떡을 썰어 떡국을 끓이고 순대를 만들고 찰떡을 치며 집집마다 분주했다. 어느 음식이든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다. 한번은 할머니와 엄마가 마주앉아 몇십키로그람 되는 가래떡을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썰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 많은 것을 다 먹는가고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저고리 소매로 닦으며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고 이제 큰아버지랑 고모들이랑 친척들이 모이게 되면 나누어주고 이웃들 하고도 나눠 먹는다고 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엄마도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가래떡을 썰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쿵쿵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부엌으로 나가보니 아빠는 금방 지은 찰밥을 절구에 넣고 쿵쿵 치고 있었고 엄마는 찰밥을 짓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동네 아줌마까지 와서 절구의 찰밥을 손에 물을 묻히며 번지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절주 있게 찰떡을 치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나도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아직 잠에서 채 깨여나지 못해 퀭한 두눈으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데 아빠가 문득 “너도 한번 쳐볼래?” 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그때 우리 집에서 쓰던 절구는 쇠절구라 정말 무거웠다. 한두번 치니 온몸이 기진맥진해졌다.

“녀자애가 이런 걸 하면 사내처럼 팔뚝이 굵어진대. 그러면 시집도 못 가.”

엄마가 옆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 말에 집안은 이른아침부터 웃음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설전야에 일찌감치 우리 집에 찾아온 명절분위기였다. 아빠의 힘 덕분에 탱글탱글 윤기 돌던 한알한알의 찰밥들이 어느새 찰떡으로 변신했다.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찰떡에 팥고물을 묻혀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그 맛이야말로 영원히 잊지 못할 최고의 맛이였다.

이런 설명절의 ‘제맛’을 다시 되찾고 싶어 엄마에게 예전처럼 한번 설을 쇠자고 말하려다가 스스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였고 이전과 많이 달랐다. 아니, 이젠 아예 확 달라졌다. 예전의 맛이 그리우면 우리는 먼저 시장이나 슈퍼를 찾는다. 시장에서 떡국이든 김치든 모든 것을 편히 살 수 있다. 누가 만들었든 어떻게 만들었든 뭐나 다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시대의 발전으로 우리의 생활이 풍요로와졌지만 그대신 원래의 모든 것 바로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풍습’은 한자로 바람 ‘풍’(风)자에 습관 ‘습’(习)자이다. 나는 ‘풍습’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일정한 시기에 너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주목되거나 흥취를 가지게 되여 또한 그 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그런 ‘바람’이 일게 되고 그렇게 인 ‘바람’이 오랜 시간과 끊임없는 반복속에서 어떠한 습관으로 변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바람’은 시대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바람’과 순풍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그 ‘바람’과는 역풍으로 마주쳐 결국 원래의 매력을 꿋꿋이 잇지 못하고 미미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하여 우리는 옛시절에 흔했던 그 모습들을 잊지 못해 마음속에서만 다시 되새긴다.

현란하고 풍요로운 지금의 세상에서 원래의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우리는 그래도 원래의 그 모습들을 두 눈으로 보고 체험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은 구경조차 해보지 못하고 커가고 있다. 원래의 그 모습들을 그대로 지키지 못한 우리가 죄송스럽다.

래일은 또 래일의 바람이 불기 마련이건만 어제의 그 ‘바람’은 언제 한번 다시 불어올는지…

 

                                                             /(대련)최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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