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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외딴섬의 비애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3-22 12:49:56 ] 클릭: [ ]

1

그녀는 사무실에 혼자 남겨졌다. 모두들 부랴부랴 자리를 뜨는 저녁퇴근이지만 그녀만은 느릿느릿 움직이였다. 얼핏 창밖으로 교문앞에 서있는 그 남자를 보았기 때문이였다. 하나뿐인 출구라 자기를 구할 방도가 없었기에 그녀는 조용한 곳에서 닥쳐오는 비바람을 맞고 싶었다.

비를 맞으려고 작심했지만 빈집에서 울리는 자기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불안했다. 어제 남자를 만나 감정의 매듭을 짓는 말을 했을 때 심상치 않은 남자의 눈빛을 보았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마음을 짓밟으며 쿵쿵쿵― 복도층계를 오르는 그 남자의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고르롭지 못한 그 남자의 발자국소리는 또다시 그녀 마음을 쥐여 비틀었다.

장장 스물두해, 남편의 출국으로 불신의 덫에 치운 그녀는 가슴속 한끝에서 피여오르는 분노와 고통으로 아픈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그녀는 남들이 자기의 상처를 알가봐 두려웠다. 하여 자기를 마음의 외딴섬 지하방에 가두고 마음속에서 불신을 먹고 자라는 괴물과 싸우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때 그 남자는 해빛 한점 없는 어둡고 차거운 지하감옥 창가에 핀 민들레처럼 그녀에게 생의 욕망을 북돋아주고 한걸음 한걸음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그녀가 배신당한 괴로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그 남자는 달려와 위안을 주었다. 그 남자의 관심은 따뜻한 해빛이 되여 그녀의 마음속 상처에 새살이 돋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로 달려오던 남자는 의외의 교통사고로 건강한 다리를 잃었다. 서로에게 향하는 련민과 죄책감이 그들 둘을 더 꽁꽁 묶어놓았고 그때로부터 그들은 손 잡고 미로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벌컥 사무실문이 열리며 눈앞에 그 남자가 장승처럼 서있었다. 놀란 토끼를 안은 듯 후둑후둑 뛰는 가슴을 안고 그녀는 조건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이러지 마, 이미 내 뜻을 다 밝혔잖아.》

그녀는 애원에 푹 젖은 목소리를 당황히 쏟아냈다. 시퍼런 불빛이 뚝뚝 떨어지는 그 남자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는 비실비실 뒤걸음질 쳤다. 독수리가 병아리 채듯 그 남자의 우악진 팔뚝이 어느새 그녀를 낚아채 품에 안고 있었다.

《안돼, 이젠 나에게 너 밖에 없어.》

그 남자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얼굴이며 입술을 감빨았다. 남자의 욕이 활화산으로 되여 감정의 소낙비를 마구 퍼부었다. 막무가내였다. 느닷없는 소낙비를 그녀는 꼼짝 못하고 다 맞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는 그녀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잠자코 있었다. 남자의 무섭게 뛰는 심장소리와 거친 숨소리는 그녀를 삼킬 듯한 세찬 파도소리 같았다.

《우리 이제 그만 제자리로…》

쾅― 남자의 주먹이 벽을 향해 날아가 쿡― 박혔다. 선지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 하던 말을 먹어버리고 나무토막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분노인지 격정인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녀자는 감히 그 남자를 마주볼 수 없었다. 덫에 치인 듯 깎지진 남자의 팔뚝안에서 할딱할딱 가쁜숨만 몰아쉬였다. 이윽고 녀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더러 어쩌라고…》

녀자는 점점 더 크게 흐느꼈다. 녀자는 남자에게 미안했고 자기 언행이 가증스러웠다. 물론 그 남자의 가정이 깨진 것이 자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의 물결에 휩싸여 깨진 것이라고 밀수 있지만 그 남자의 건강한 다리는 그녀에게 달려오다가 잃은 것이여서 책임을 깡그리 저쪽으로 던져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앞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고 구겨진 자기 인생을 되는대로 처박고 자식의 삶에 평온을 안겨주고 싶었다.

물론 남편이 살겠다고 찾아와서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러는 것이 아니였다. 대학입시를 앞둔 자식 앞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깰 용기가 없었고 자식들에게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안겨줄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온 후부터 남자는 옛날 그녀처럼 가슴속에 불신을 먹고 자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뭉게뭉게 치밀어오르는 미움과 분노와 아픔으로 자신을 달달 볶으면서 그녀에게 더더욱 집착했다. 매 시각마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했고 하루 스물네시간 그녀의 일거일동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남자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괴로움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옛날 녀자가 아파할 때 잡아주던 그 손이 오늘 자기만을 바라보며 잡아주기를 기다렸지만 녀자는 남자의 념원 대로 할 수 없었다.

남자는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절망이 가슴을 숨 가쁘게 턱턱 내리눌렀다. 남자는 그녀에게 숨 막히게 꽉 조이고 있던 덫을 스스로 풀어주었다. 남자를 두고 녀자는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흐느낌을 실은 그녀의 멀어지는 발자국소리는 남자의 심장을 비틀어 피를 짜고 있었다.

봄부터 애지중지 키워온 새싹/ 여름 되여 록음으로 한가슴 채웠는데/ 가을의 풍요로움은 누가 앗아갔나?/ 텅 빈 가슴에 울리는 처량한 새소리

남으로 날아가는 철새가/ 걸음을 멈췄더라면/ 남자의 가슴에 활화산이/ 사화산으로 남았을가!

 

2

집에 들어서니 오구작작 떠들어대는 딸애들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였다.

〈그래, 내 선택이 맞는거야!〉

그러다가 인츰 자기가 가증스럽고 역겨워졌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꾸역꾸역 밥을 퍼먹으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창밖의 동정을 살폈다. 어쩐지 창밖에서 서성거릴 그 남자의 그림자가 자꾸 알른거렸다. 그녀는 짐짓 태연한 듯 설겆이를 했다. 애들은 공부하다 잠들었고 요란스레 텔레비죤을 틀어놓고 있던 남편도 잠들었다. 창밖에서 스며들어오는 부드러운 별빛이 불안에 싸여 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카텐을 치려다 말고 살그머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눈에 익은 그 남자의 그림자가 그때까지도 창밖 층집아래에서 얼른거리고 있었다. 착각인가 싶어서 카텐뒤에 숨었다가 다시 내다보다가 올려다보는 그 남자의 눈길과 마주칠 번했다. 그녀의 심장은 또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호히 카텐을 치고 전등불을 껐다. 녀자는 꺼진 불빛을 보고 그 남자가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더구나 남자의 마음에 불을 달아놓았다. 그 남자의 그림자는 불가마에 든 개미처럼 더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했다. 그녀는 풀썩 물앉았다. 그녀는 밑도 끝도 없는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했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속으로 두손 모아 빌었다.

《딩동―》

쿵― 녀자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분명 자기 집 초인종이였다. 점점 더 급하게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그녀의 심장은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일어나려다가 그만 다시 물앉았다. 사맥이 탁 풀리면서 머리가 하얗게 비여있었다. 여태껏 자는 것 같던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문을 열게.》

녀자는 더더욱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 남자가 다 지독하게 무서웠다. 집안에서 숨 막히는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녀자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누군가 물에 적신 얇은 종이를 한겹한겹씩 그녀의 얼굴에 덮는 듯한 느낌이였다. 이윽고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니가 물러나라. 이십여년 전 나는 가난하고 못나서 란이를 너한테 빼앗겼지만 지금은 아니야! 니가 란이한테 지금까지 어떻게 대했는가는 너절로도 알 것이고 또 우리 둘은 함께 죽을 때까지 살자고 약속했다. 나는 지금 잃을 건 다 잃었고 이제 나한테 남은 건 란이 밖에 없다…》

《나는 아직 법적으로 남편이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무슨 리유든지 란이만 이 가정을 선택한다면 나는 란이와의 가정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

남편의 대답이였다. 녀자는 갑자기 귀가 먹먹해나며 머리속에서 전류가 지나가는듯 웅― 하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두 남자가 열변을 토했지만 그녀는 불을 내뿜는 듯하는 두 남자의 눈빛 밖에 볼 수 없었다. 두 남자의 눈빛이 무수한 총알들이 되여 그녀에게로 날아와 꽂히는 듯 그녀는 그 순간이 너무 힘들고 괴로왔다. 문득 남자는 앞가슴 옷섶을 열더니 오른손을 옷깃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윽고 무언가를 방바닥에 꽝― 하고 꺼내놓았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던 날숨을 겨우 뽑아내쉬였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이였다. 남자는 그것을 꺼꾸로 들더니 꿀꺽꿀꺽 몇모금 마셨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무작정 남편에게 쑥― 내밀었다. 남편은 아예 그 손을 탁 밀쳐내며 거절했다. 그토록 단호했다. 쾅― 술병을 쥔 남자의 손이 방바닥을 내리치면서 술병은 삽시에 산산쪼각이 나고 말았다. 방안에선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마주 노려보는 두 남자의 눈길은 하얀 연기를 피워올리며 상대를 찌륵찌륵 지지기라도 할 듯이 푸른 불을 내뿜었다. 집안은 한껏 당긴 활시위마냥 팽팽해졌다. 그녀는 가슴에 못 박힌 듯이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집안은 그대로 작렬할 것만 같았다. 순간 그녀는 스스로가 너무 저주스러웠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그녀는 이 시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녀자는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흑흑― 공포에 질린 녀자의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기신기신 목구멍으로 기여나왔다. 그 울음소리가 남자의 등을 밀었는지 아니면 한쪽 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공포에 떨고 있는 녀자의 모습이 남자의 등을 밀었는지 남자는 말없이 일어서서 걸어나갔다. 절룩절룩 움직이는 남자의 뒤잔등에는 무거운 비애가 비껴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남자의 손에 눈길이 멎자 녀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책의 채찍이 무섭게 그녀의 마음을 후려쳤다. 남자의 큼직한 손, 그 손은 옛날 어둠속에서 만신창이 된 그녀를 보살펴주던 손이였다. 지금 남자가 내민 저 손을, 자기가 잡아주어야 할 저 손을 캄캄한 어둠이 잡아당기고 있었다.

남자는 나가려다 말고 머리를 돌려 그녀를 눈에 담았다.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여 그 눈길을 피했다. 남자는 문을 열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3

하늘끝까지 펼쳐진 어둠속에서 아침해살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달은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을 총망히 감추었고 온밤을 시커먼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지지리도 길게 독무를 추던 어둠도 거무스레한 치마자락을 질질 끌며 쫓기 듯 황망히 자취를 감춘다.

부시시 눈을 뜨자 마자 이름 없는 작은 도시는 요란스럽기 그지없다. 푸푸― 여기저기에서 굴뚝들이 뿌연 한숨을 풀풀― 뿜어대고 밤새 잠잠하던 큰길에서 쪼르르 달아다니던 차량들이 란리가 난 것처럼 분주히 뿡뿡― 소리를 지르고 급한 걸음으로 또각또각 분주히 출근하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꽝― 하늘땅을 뒤흔드는 요란한 광음이 잠에서 채 깨여나지 못한 이름 없는 작은 도시를 마구 뒤흔들며 둔중하게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순간 도시의 한쪽 끝 건물의 베란다 창문 하나가 통채로 산산쪼각 나며 작렬하더니 펑 뚫린 가슴을 붙안고 서있었다. 순식간에 구멍난 쪽으로 고인물이 흐르 듯 사람들이 그 곳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그 층집 울안은 기웃거리는 구경군들로 꽉 채워졌다. 벌써 손에 핸드폰들을 꺼내들고 커다란 동굴아구리 같은 창문으로 시커먼 연기를 마구 토해내는 층집을 렌즈에 담기에 여념 없다.

이윽고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며 공안국 차 몇대가 마당에 멈춰섰다. 한참 후 호기심으로 가득차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헤집고 담가에 피범벅이 된 남자 한명을 급급히 들고 나왔다. 담가아래로 축 드리워진 손끝에서는 검붉은 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피방울들은 뒤늦게 도착한 구급차의 길에 피비린내를 휘뿌리며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무섭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뒤이어 불룩하니 흰 보를 씌운 울룩불룩한 불명확한 형체를 담은 담가가 들려나왔다. 담가에 덮은 흰 보는 어느새 진붉게 푹 젖었고 피물을 뚝뚝 떨구는 흐트러진 한모숨의 길다란 머리카락이 흩어진 사연의 실마리를 설명해주면서 피를 찍은 붓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 〈련정사〉라는 글귀를 쓰고 있었다. 콩나물시루속처럼 빼곡이 박혀서서 머리를 한껏 치켜들고 길게 목을 빼든 사람들의 시선이 담가를 향해 움직이더니 한동안 갈대숲처럼 술렁거린다.

우우― 술렁이는 그 갈대숲, 비릿한 냄새를 싣고 그 숲을 흔드는 바람, 사각사각 아픈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갈대들, 그 숲우의 하늘가에서 울리는 처량한 새의 울음소리, 새날은 따스한 해볕으로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황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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