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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계절 두만강 동년추억의 영원한 메카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1-11 11:22:19 ] 클릭: [ ]

두만강은 우리의 력사이고 인생이며 자애롭고 풍요로운 어머니강이다. 두만강의 사계절은 내 동년추억의 영원한 메카이고 내 령혼의 안식처이다.

추억의 실타래를 풀어 동년을 회억하면 제일 처음 떠오르는것이 진달래꽃, 살구꽃 만발하고 송아지 갈갬질하는 오붓한 고향마을과 루루천년 흘러내리는 두만강이다. 내가 살던 집은 두만강과 직선거리로 2백메터도 안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들려오는것이 골짜기의 고요를 깨는 두만강의 오돌찬 여울소리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골의 하루는 그 소리속에서 시작되고 고요하게 흐르는 달빛과 함께 영글어갔다.

일찍 일어난 아버지께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소에게 여물을 주는것이다. 《애비 없이 살아도 소 없이는 못산다》는 그 시절에는 소가 식구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전날 저녁에 놓았던 통발과 줄낚시를 거두려 두만강으로 나간다. 눈을 잡아뜯으며 따라가 버들꼬챙이에 팔딱이는 모래무치며 버들치며 돌쫑개를 꿰는 일은 나의 몫이였다. 그러다가 줄낚시에 은빛이 번뜩이는 어른 팔뚝만한 《두만강이아리》(두만강야레라고도 함)가 꼬리로 물을 치며 걸려나올 때는 환성이 절로 터졌다. 땅에 끌리는 고기꿰미를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개선장군마냥 늘 신바람이 났다.

두만강은 사계절 산골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였고 삶의 왕국이였다.

두만강의 봄은 산기슭에서 남먼저 피는 진달래꽃과 보송보송하고 통통하게 살이 찌는 버들개지와 아이들의 버들피리소리로부터 시작되였다. 물이 잘 오른 약손가락만한 버드나무를 꺾어 반들반들하고 흠이 없는 곳을 손칼로 껍질만 동그랗게 오리고 가볍게 껍질주위를 두드리고 살짝 비틀면 버들껍질이 통채로 그대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부는쪽의 겉껍질을 살짝 벗겨내면 버들피리가 완성된다. 입에 넣고 불면 야무진 소리가 난다. 볼이 터지도록 피리시합을 하고나면 입안이 다 얼얼해진다. 버들피리를 불면서 두만강기슭의 버들숲에서 쇠채며 물쪽찌풀을 뜯어먹는 사이에 어느덧 록음방초 우거지면서 세월은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다.

여름이면 제일 재미 있고 신나는것은 두만강에서의 자맥질이였다. 제일 먼저 배워야 할것은 《개발헤염》이고 그다음은 애들이 《메드레》라고 하는 《자유헤염》이였다. 제일 수준 높은 헤염은 물우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동동 떠가는 《밴대헤염》이였다. 큰 녀석들이 파도치는 두만강을 헤염쳐 건너가 대안에서 소리치며 손을 흔들 때면 어린 나는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이 두만강에서 떠내려오는 떼목을 자유자재로 타고 내리는것이 정말 멋있었기에 나는 부지런히 헤염치기를 익혔다. 소학교 6학년이 되자 나는 두만강을 헤염쳐 건느기에 도전했다. 한번에 두만강 건느기에 성공하자 두만강에서의 여름놀이는 말그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출렁이는 두만강과 맴맴 영악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속에서 푸르러갔다.

가을은 아이들한테 너무 풍요로운 계절이였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강가에서도 허기진 배를 채울수 있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오후이면 학생들을 동원하여 생산대의 이삭줏기와 옥수수따기를 돕게 했다. 어떤 곳에서는 아예 수업을 중단하고 며칠동안 가을이 뒤쳐진 생산대의 일을 시켰다. 생산대에서는 통이 크게 돼지를 잡고 찰떡을 쳐 아이들한테 먹였다. 그 재미에 가을철 이삭줏기때는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한명도 없었다.

가을이면 제일 재미 있는 놀음은 《콩싸개》(가을한 콩을 알을 털지 않고 그대로 불에 구워먹는것. 콩설이라고도 함)를 해먹는것이였다. 두만강가의 넙적한 돌우에 마른풀과 잔나무가지를 쌓아놓고 그우에 주어온 콩이삭 반단쯤 올려놓고 불을 단다. 불길과 함께 탁탁 소리를 내며 콩이 익는데 나무막대기로 탈싹탈싹 가볍게 두드리면 콩꼬투리가 떨어지면서 갈라진다. 그다음 웃옷을 벗어 활활 바람을 일으키면 재가루는 다 날려가고 노랗게 익은 고소한 콩알만 남는다. 오구작작 모여앉아 콩을 주어먹는 그 맛, 이 세상 어느 곳에 그런 맛이 있으랴! 한참을 주어먹으면 두손가락은 물론 입술까지 검댕이투성이다. 그런대로 두만강물에 대충 씻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선다. 그러다가 어느 지꿎은 아이가 그곳에 오줌을 갈기면 너도 나도 빙 둘러서서 오줌세례를 퍼붓는다. 달아오른 돌에 오줌발이 떨어지면서 뽀얀 물안개가 피여오른다. 환락의 웃음소리와 함께 동년의 아리숭하고 파란 꿈이 쏟아지는 가을은 석양빛처럼 빨갛게 물들어갔다.

겨울의 두만강은 얼음과 눈으로 장식된 동화의 세계였다. 그때는 무엇이나 귀한 시대였다. 내가 스케트를 몹시 부러워하자 솜씨 좋은 아버지가 야장간에서 쇠로 스케트날을 벼리고 그우에 신바닥모양으로 다듬은 나무판을 댔다. 그리고 나를 업었던 띠로 줄을 만들어 《목스케트》를 만들어주었다.

두만강이 얼면 강에는 조선마을의 애들도 나와 함께 놀았다. 그때 생활형편이 우리보다 훨씬 좋은 그 애들은 가죽으로 만든 스케트를 탔고 옷도 교복차림이였다. 그 애들의 호주머니에는 늘 개눈깔사탕 등 먹을거리가 있었다. 때로는 두편으로 갈라져 호케이시합을 했는데 축에 끼지 못하는 애들은 응원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승부는 늘 《가죽스케트》를 탄쪽보다 《목스케트》를 탄쪽이 우세로 나뉘였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아이들 세상에도 어울리는것 같았다.

겨울방학이 되면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돼지똥을 줏는것이였다. 그때는 집집이 검정돼지 한두마리씩 키웠는데 겨울이면 밖에 풀어놓았다. 생산대에서 이듬해 봄에 밭에 낼 거름을 지원한다면서 소조공부가 끝나면 끼리끼리 작은 부삽과 물푸레나무로 결어 만든 광주리 아니면 싸리나무를 쪼개여 만든 소쿠리를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너도나도 돼지똥 주으러 다니니 차례진 임무를 완수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아침에는 슬쩍 언 똥은 쉽게 주어담을수 있지만 저녁나절엔 꽁꽁 얼어들어 도끼나 괭이로 끄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럴 때면 똥부스레기가 한두개쯤 입안으로 날려들어가군 했다. 그런대로 침을 탁― 뱉고 대강 일을 끝낸후 또 두만강으로 뛰여나가 볼이 벌겋게 얼고 두손이 꽛꽛하게 될 때까지 뛰놀았다.

이렇게 두만강은 사계절 아이들의 삶의 천국이였고 어머니품이였다.

지난가을 친구 몇몇이 두만강에 대한 끝없는 회포를 풀려고 발원지로부터 훈춘 방천까지 두만강문화체험답사를 했다. 그런데 두만강은 나의 동년시절의 두만강이 아니였다. 더는 강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토닥토닥 울리던 녀인들의 정겨운 방치질소리를 들을수 없었고 낚시질하는 로인들의 모습도 찾아볼수 없었다. 오염으로 혼탁해진 두만강물은 우리들의 눈을 흐리웠다.

부디 내 마음의 메카를 돌려다오.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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