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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 3대가 견증하는 ‘중국속도 ’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신화넷 ] 발표시간: [ 2018-09-12 17:02:40 ] 클릭: [ ]
할아버지 기관사: 속도는 30,40키로메터/시 ,승차환경은 ‘혼란, 어지럽고 차하다’
아버지 기관사: 속도는 50키로메터/시 ↑140키로메터시 ↑250키로메터시, 승차환경은 ‘아버지 때와 같이 론할 수 없게 됐다 ’
손자 기관사: 속도는 350키로메터/시 ‘나는 것 같고 ’, 승차환경은 ‘마음 한가득 행복감 느끼게 한다 ’
 
 
 
사진① 2대 기관사 강애순과 그의 아들 3대 기관사 구준걸 부자간.사진② 강애순의 부친 1대 기관사 강복림이 증기기관차를 운전하던 모습. 사진③ 기관사 강애순이 기관차를 검사하는 장면 

남경시의 강복림로인네는 경호선 남경 동기무단의‘렬차기사 세가’이다. 철도업에서 희소한 일이다. 강복림, 강애순, 구준걸(강애순의 둘째아들, 어머니 성 따름) 조손3대가 다 기관사이다. 증기기관차로부터 내연기 기관차, 내연기차로부터 전동기차, 전동기차로부터 고속렬차 및‘부흥호’동차승무팀에 이르기까지 이 조손3대는 렬차 속도가 시속 30키로메터 때부터 시속 350키로메터로의 비약,  렬차 승차환경이‘혼란, 어지럽고 차하’던 데로부터 ‘정갈하고 아름다운’데로의 변화...중국철도의 력사적 변화와 발전의 속도를 견증했다.

할아버지 강복림- 새중국 제1대 증기기관차 기관사

“멀리서 보면 동냥군 같고 가까이서 보면 넝마주이군 같은데 다가가 보면 기무단 사람이다.”는 말은 중국 초기 기무단사람들이 남겨놓은 인상이라고 한다. 

강복림은 1934년생, 1951년에 철도사업에 참가해 남경 동기무단 해방형 증기기관차의 학도 보일러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가 국산 건설형 증기기관차에 올라 사업했다.

당시 상해와 남경 사이에 경호(京沪)철도 호녕(沪宁)구간은 유일하게 철도선이 있었고 선로의 설비기술함량이 낮았다. 남경에서 상주까지 130키로메터, 기관차의 견인력은 사람이 끊임없이 물을 뿌린 석탄을 정밀하게 보일러에 퍼넣는 데 의거했다. 물을 뿌리여 산생한 수증기가 에네르기를 기계에네르기로 전환해 ‘바퀴를 끌고 돈다’.

“선로궤도는 짧은 강철궤도를 사용했고 렬차의 시속은 20,30키로메터 밖에 안되였다. 시커먼 기관차머리가 육중한 화물을 싣고 지날 때면 꽈당 꽈당 부딛치는 소리가 났고 차체는 요람마냥 내내 이리 저리 흔들거리며 바로 서지 못했다.”

“젖은 석탄 한삽에 10키로그람, 한 승무팀에서만도 6, 7톤의 석탄을 때야 했다. 도중에서 한편 료망신호를 배합해야 했고 소형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야 했으며 배풍기를 틀어 배연해야 하고 기관차를 검사해야 하고 기계에 기름을 쳐야 하고 석탄재를 청리해야 하는 등 일련의 작업이 따라야 했다. 보일러 불 때는 작업은 땀이 등을 적시는 중체력 일이며 매우 고생스럽다.”고 강복림은 회상한다.

“그 때 기관사의 목소리가 높았다. 매연과 보일러 불에 그을리고 어디라 없이 석탄, 재 먼지였다. 선풍기도 없었으니 에어컨은 더 몰랐지. 겨울이면 기관실은 찬바람이 뼈를 에이고 여름철에는 보일러실 옆이라 섭씨 70도 고온에 ‘구어진다’...”

기관실에 대해 말하자 강복림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 속에 빠진다.

증기기관차는 증기보일러가 붙어있어 기관실은 김과 연기가 미처 빠져나갈 새 없다. 렬차가 움직이면 기관실에서는 근본 앞방향을 가려볼 수 없다. 그래서 기관사는 반드시 부단히 웃몸을 창밖에 내놓으며 탐지해야 선로와 신호를 바라볼 수 있다. 언덕길이거나 눈비가 오는 날엔 그 고생이 더 막심했다.

“몸을 보면 기름때투성이,  손을 보면 손가락을 가려보기 어려울 정도로 까마귀손이 되버리고 얼굴에도 기름때자국에 땀투성이, 오직 치아만 흰색을 보였지.”

안전은 철도사람들이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근본이다. 렬차운행의 안전은 기본상 사람의 통제에 달렸다. 강복림은 1970년대에 찍은 사진 한장을 간수하고 있는데 그가  기관실에 앉아서 몸을 창밖으로 빼내여 전방 길목의 신호등을 살피는 사진이였다.

“그 때 기관사는 운행과정에서 반드시 이런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면서 강복림은 이렇게 해석한다.

작업환경이 어지럽고 간고하고 힘들고 위험했지만 물러날 길 없다고. 강복림은 이를 악물고 그 간고했던 년대로부터 버티여냈다.증기기관차  열관리기관사로부터 부기관사로, 한보한보씩 견정하고 착실하게 성장했다.

21살 나는 해에 강복림은 새 중국의 제1대 증기기관차 기관사로 승진했다. 이는 그가 생에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이다. 하여 그는 자신이 선택한 그 어려운 일을 1994년 퇴직할 때까지 44년간 견지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환경이 렬악할수록 사람의 의지를 더 단련시킬 수 있다. 강복림은 늘 자녀와 신변의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차에 대해 특수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종래로 내가 선택한 사업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아버지 강애순—전력기관차에 올라 색다른 정채로움 감수해

1983년 12월, 부친의 영향하에 강애순은 철도부문의 직원모집에 응해 남경기무단의 새로운 직원으로 되여 전진증기기관차에 올라 학도로 일하기 시작했다. 공교로운 것은 그는 부친과 함께 한 단위 기관차 승무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경호철도 호녕 구간 증기기관차는 점차적으로 퇴역하기 시작했다. 1983년 말 남경 동기무단은 증기기관차로부터 내연기관차로의 전환을 실현해 보일라공이란 직종은 그 때로부터 사라졌다.”며 강복림로인은 흐뭇하게 “강애순은 행운아였지, 철도발전시대를 맞아와 걔는 나처럼 고역을 치르지 않아도 됐다네.”라고 말한다.

기관차가 내연 동력시대에로 전환발전을 가져온 것은 혁명적인 변화이다.

1984년 12월, 강애순은 증기기관차를 고별하고 흥분된 심정으로 DF4형 내연기기관차에 올라 수습기사(学习司机)로 일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그가 운전하는 기관차는 ND5형 기관차로 승격했으며 남경-방부(蚌埠)간을 실북나들듯했다. 그 때 시속이 50키로메터 좌우로 높아졌다.

1987년에 강애순은 기관사의 꿈을 이루었고 1991년에 내연기관차 기관사증을  따낸 그는 “기관사로서 나의 터득능력은 일반인보다 높다”고 자부하면서  당시 내연기 기관차의 시속은 90키로메터/시에 도달했다고 소개한다.

작업환경이나 승차환경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내연기는 ‘기름 먹는 쥐’이다. 발동되면 소음이 크고 기름냄새가 심하다. 기관사는 대화할 때 다투듯이 ‘고함질러야’한다.”고 했으며 기관차는 경상적으로 물이 새거나 기름이 새는 페단이 생긴다 했다. 또한 조종대의 붉은 등이 켜지기만 하면 기관사는 황황해지는데 수시로 정차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고  정차하면 기관차 고장을 말해준다고 한다.

“기관사는  안전, 정각과 평온함을 지켜야 한다. 부친이 평생 기관차를 안전 운전한 걸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다!”고 강애순은 부친의 사업열의와 용기를 탄복했다.

2006년 7월, 호녕철도는 전기화 시대를 맞았다.

려객운수차나 화물차는 점차적으로 우리 나라서 생산한 제1대 전동차 견인으로 갱신했다. 강애순도 ND5기관차를 고별하고 전동기관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전동기관차는 마력이 크고 운행속도가 빠르며 깨끗하고 소음이 작고 디젤유 연소로 산생하던 페기가 없다.

“전동기관사실에는 에어컨, 신호의기가 장치돼 료망조건이 개선되였다. 더는 부친 대 때처럼 몸을 창밖에로 빼내서 탐지하며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애순은 말한다.

2012년 기관차형은 11D형과 SS9형 전동기관차로 갱신되였다. 강애순은 의연히 남경-항주간 려객 동차 기관사 중임에 부임했다. 전동기관차시대 기관차가 이끄는 건 500톤이상되는 중력형 기차이고 기관사는 한사람 당직제를 실시한다.

짧은 6년간에 강애순이 운전한 기관차형은 7가지에 달한다. 기관차형의 빈번한 변화는 철도발전의 궤적을 반영해주고 있다.

1997년 4월 1일 -4월 18일, 철도는 6번째로되는 대면적 운행도 조절 및 속도를 높이였다. 경호선 호녕구간 렬차는 최고로 140키로메터/ 시로부터 160키로메터/시, 250키로메터/시로 업그레이드되였다.

올해 55세 나는 기관사 강애순은 철도상에서 27년째 300여만키로메터를 평안하게 달려왔다. 지금 강애순이 운전하는 렬차는 남경과 상주 등 구간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는 “철도의 전동시대 기관사의 작업환경은 점점 우월해지고 있는바 부친 때 시절과 같이 론할 수 없게  되였다”고 감개무량해한다.

손자 구준걸——‘부흥호’위에서 새 기적 써간다

역시 천성적으로 철도인의 피가 흘러서인지 구전걸은 어려서부터 기차에 대해 특별히 흥취를 가지였다. 2009년 8월 ,‘90’후인 그는 소주철도기계학교를 졸업하고 남경 동기무단에 배치돼 할아버지, 아버지의 ‘계주봉’을 침착하게 이어받았다. 그는 HXDB형 전동기관차에 올라 화물차 부기관사로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새시대 고속철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고급스러운 ‘부흥호’기차가 조국 각지에서 질주하며 려객들로 하여금 마음 한가득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부흥호’를 운전하는 데 있어서 기관사에 대한 요구는 보다 높다.

2015년 층층 선발을 거치고 경쟁자를 물리치며 구준걸은 뜻대로 시험을 통과해 나젊은 고속철도 기관사로 되였다. 손자 구준걸이 중국의 제일 선진적인 기차를 운전하게 되였음을 알게 된 할아버지 강복림은 내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해하며 엄지를 내들고 “내 손자가 운전하는 기차는 속도가 내 아들이 운전하던 내연기 렬차의 2배이고 내가 운전했던 증기기관차 속도의 10배 된다.”고 감언한다.

가문에 고속철도 기관사가 생겨났음에 구준걸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식구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더없이 자랑스러워한다. 요즘 구준걸은 시속 350키로메터 되는 ‘부흥호’기차를 운전해 남경과 상해 도시군간을 질주하고 있다.

“시속 350키로메터로 고속기차를 운전하는 건 나는 것 같다”

구준걸은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럴수록 책임이 더 크다는 걸 느끼고 있다. 매번 기관실에 앉을 때면 그는 ‘눈은 여섯곳을 바라보고 귀는 팔방의 소리를 들으며 손과 발은 같이 움직이고 정력을 고도로 집중하며 평온하게 기관차를 조종한다’는 것을 견지한다. 특히 차문, 신호, 차량탑재 단말기 등 관건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눈이 가고 입이 가고, 손이 가고 마음이 감’을 지키고 있다.

성과는 분투에서 얻어진다. 기관사 직에서 구준걸은 자신을 꾸준히 높은 요구로 단련하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탄탄한 실력과 어려움을 달갑게 견디여내고 이겨내는 정신으로 동년배가운데서 두각을 내밀어 중국철도 상해국그룹공사로부터 ‘우수공청단원청년’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오늘날 남경-상해 구간에 원 증기기관차 시대의 한갈래 호녕철도선이 있던 데로부터 경호고속철도, 호녕도시간철도 및 호녕 기유 철도선 3선이 병행하는 데로 발전했으며 각 선로마다 소임을 다하는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였다. ‘철룡(铁龙)’이 나는듯 질주하는데 시속은 할아버지 때 그 시절의 30, 40키로메터/시로부터 최고로 350키로메터/시로 상승했다. 철도는 지난날의 보통쾌속렬차‘푸른 렬차’로부터 에어컨 쾌속렬차로, 특별쾌속렬차로 발전했으며 더한층 지금의 고속철도 동차승무팀렬차시대에로 발전했으며 철도의 승차환경도 점점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변했다.

http://www.xinhuanet.com/2018-09/01/c_1123363107.htm

/출처 신화넷, 편역 길림신문 김영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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