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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외국기업들과 중국인들의 아름다운 만남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인민넷 ] 발표시간: [ 2018-09-06 16:10:16 ] 클릭: [ ]

지난세기 80년대 륙속 중국시장에 진출한 해외 상품과 봉사는 중국소비자들에게 참신한 생활방식을 가져다 주었다.

 2018년 7월 10일, 11메터 높이의 대형 도날드덕(唐老鸭)이 상해 디즈니휴가지에 나타나 성원공원의 새로운 풍경구로 되였다. / 주동조 찍음

 

테슬라모터스 중국 본부에서 전시한 전동자동차 / 신화사 라효광 찍음

 

2017년 코카콜라 새공장이 하북에서 생산에 투입됐다. /신화사 왕효 찍음 

 

당시의 로레알(欧莱雅)그룹CEO 오우원중선생이 상해 외탄에서 상징성이 있는 로레알광고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 로레알그룹 제공

음력설전야인 1997년 1월 26일 샘회원상가 심수복전상점 에서 회원들이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 월마트 제공

북경 로전문(前门) 컨터키점 입구에서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컨터키 제공

컨터키를 먹고 월마트를 돌아보고 로레알을 사용하고...지금 사람들은 외자기업에서 제공하는 상품과 봉사를 흔하게 접하고 있다. 그러나 당년 처음 치킨을 먹고 처음 햄버거를 먹고 처음 대형 자선상점을 돌아보고 처음 국제브랜드 화장품을 사용할 때의 신기함과 들뜬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모두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개혁개방 40년, 중국은 세계를 향해 대문을 열었다. 한패 또 한패의 외자기업이 륙속 중국시장에 진출하였는데 그것은 한차례 또 한차례의 아름다운 만남이였으며 중국사회에 새로운 풍기를 주입했다. 외자기업은 이로하여 비옥한 성장토양을 얻게 되였다. 이들이 중국에서 수십년간의 발전은 개혁개방의 기업약사에 농축되여 있다.

‘중국에 정착해 생활에 융합되다’

—컨터키는 력사성적으로 중국소비자들에 서양식 스낵을 접수시켰으며 한편 중국을 위해 자기도 개변했다.

1460평방메터 되는 3층짜리 가게, 손님들은 무려 2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서야 자리 하나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점원 장경홍에 따르면 주말만 되면 가게밖에서 줄을 선 사람들이 400여메터도 더 되였다. 하는수없이 시간을 나누고 구간을 나누어 가게에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첫 집으로 중국에 들어선 외자 료식업제인 컨터키는 당시의 ‘왕훙’(网红)이라 할 수 있다. 북경에 온 사람들마다 반드시 들려야 하는 가게였다. 하북 보정의 손호에 따르면 1988년 그가 부모 따라 처음 북경에 왔는데 컨터키가게를 지나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7.3원을 주고 연지원맛닭(吮指原味鸡) 두개, 매쉬드포테이토(土豆泥), 사라, 햄버거를 세트로 샀다. 당시 7.3원이면 한 가정에서 며칠 먹을 수 있는 채소값이다. 다 먹고난 닭튀김 빈통을 학교까지 들고 간 손호는 친구들 앞에서 자랑까지 했다 한다.

컨터키는 서양멋이 나는 대명사가 되였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음식의 계몽자로 되기도 했다. 남경의 리향은 컨터키를 먹으러 가서 있었던 우스운 이야기를 꺼낸다.“상에 앉아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식단을 들고 오는 복무원이 없었어요. 주위를 빙 둘러봐서야 자기절로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돌아갈때 어머니는 닭날개  한근을 사서 집에 들고 갔어요.”

컨터키 중국총경리 황진전은 “당시 개혁개방 초기라 <외상투자를 고무할 데 관한 국무원의 규정> 등 일련의 정책이 출범되면서 외자기업이 대환영을 받은 것은 물론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당시 북경시를 국제대도시로 발전시키다는 목표를 세운 시당위와 시정부가 ‘미국향토음식’도입을 타진하면서 컨터키의 중국진출이 이루어 졌다. 가장 번화한 거리에 세운 전문점(前门店)의 거대한 성공은 이후의 중국시장 확장에 시범적인 효과가 발생했다.”고 소개한다.

30여년후의 지금, 5600여개 컨터키식당이 중국의 1200여개 도시에 분포되여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이후의 맥도널드, 피자헛, 요시노야, 전궁부 등 중외 브랜드는 중국의 스낵시장을 풍부하게 했으며 세계 각지의 정제한 료식을 중국 도시생활에 ㅇ유입시켰다. “우리의 최초 중국진출 구호는 ‘둘도 없는 좋은 맛을 내자’이다. ” 컨터키는 서방의 참신한 맛을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스낵시대를 열었다고 황진전은 말한다. 표준화, 공급사슬 관리, 맛통제 체계 등 신흥료식업의 경영방식이 이로부터 중국에 들어왔다.

30여년의 루적을 거쳐 컨터키는 중국에서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2017년까지 컨터키 소속 그룹 백승중국은 700여개 본토 공급상을 가지고 있는데 본토 구입량은 근 200억원에 달해 총 구매량의 85%를 점한다.

로북경닭고기말이, 순콩물, 안심유툐, 닭알살고기죽...이는 근년에 컨터키에서 전문 중국시장을 겨냥해 연구 개발한 특색 음식이다.

월마트 ‘중국의 개혁개방 덕으로 발전’

—월마트 현대소매업을 흥기시키고 도시화 발전과 중산계급의 빠른 굴기의 기회 맞다

1996년의 심수, 월마트가 중국에서 첫 월마트쇼핑광장과 샘회원 상점을 개업했다.

1992년까지 마지막 표증인 량표가 중국 소통분야에서 사라지게 되였다. “상점이 문을 열자마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심수의 리녀사는 “전에는 문건을 사려면 줄을 서야하고  유리창 너머로 물건을 보며 판매원들에게 살 물건을 말했는데 자선상점에서는 마음대로 물건을 고르게 하고 마음대로 보게 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말한다.

월마트 등 첫진의 외자소매업의 진출은 대형 현대슈퍼를 사람들 눈앞에 펼쳐놓았다. 없는 것이 없으며 마음대로 물건을 고르는 느낌이 그렇게도 좋았다고 그때의 심정을 회고하는 손려.

월마트 중국회사 사무부 고급 부총재 석가제는 당시 심수에 극소수의 본토 백화슈퍼상점, 향항상점, 면세점이 있은 외 대부분이 편리점 혹은 작은 가게였고 대형 슈퍼가 별로 없었다고 소개한다. 월마트 홍호 쇼핑광장과 향밀호 샘회원상점 영업면적이 모두 1만평방메터를 넘었다.

월마트 등  외자기업은 규모가 앞섰을 뿐만 아니라 운영리념, 관리제도로부터 현대 소매업종 모식을 중국에 도입했고 중국 본토 소매업의 구조를 개변시켰다.

현재 월마트는 전국 180여개 도시에 400여개 상가를 개설, 새 가게 영업액은 두자리수로 성장하고 있다. 석가제는 “중국시장에서의 월마트발전은 개혁개방의 덕을 봤다.”고 말한다.

‘미래 중국시장에 신심이 충만되여있다 ’

—로레알로 말하면 중국은 시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 혁신의 중추중의 하나다.

지난 세기 90년대 상해 포동대개발은 상해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했다. 1997년 프랑스 빠리에서 온 로레알그룹 본부가 상해에 정착, 이와 함께 국제브랜드 색조화장품을 중국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20년전 로레알 전문미발 제품부의 주보용은 높은 곳에 서서 사진을 찍기 좋아했다한다. 머리를 염색한 사람들의 수를 알기 위해서였다.

입사 21년 된 로레알 사업확장부 황홍빈은 “당시 사람들은 색조화장을 크게 접수하지 못했는데 하고싶어 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래도 대번에 인차 접수한 것은 립스틱이였다.”고 말한다.

1997년에는 중국소비자들에게 머리염색 리념을 보급할 때였고 1998년에는 중국에 첫 약품화장품 브랜드를 도입했다. 2001년에 중국 남자들의 피부관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1년만에 로레알은 중국의 제1대 화장품그룹으로 성장, 중국도 로레알의 세계 제 2대 시장으로 되였다. 2017년 로레알 중국실적은 두자리수의 강세 성장을 기록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외자기업 진출’은 중국소비자들에게 거대한 진동과 개변을 주었다. 이런 개변은 신선한 상품과 봉사이며 또한 참신한 생활방식이기도 했다. 취재를 받은 모든 외자기업들은 과거의 세월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중국시장 미래에 신심이 충만되여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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