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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40년]어촌의 ‘봄날 이야기’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중앙방송넨 ] 발표시간: [ 2018-05-09 17:11:46 ] 클릭: [ ]

-표박신세였던 데로부터 지금은 월수입 수만원 누리는 복지속에서

“ 지금 나는 아빠트임대 배당금으로 살고 있는데 매달 수입이 5만원 좌우 되네……”

심수 라호(罗湖)어촌 촌민 팔순이 넘은 오금청로인이 고풍스러운 사회구역활동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자한테 어촌의 천지개벽을 말해준다.

사회구역활동실 밖을 내다보면 몇십층 높이의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사회구역 광장에는 애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다. 이런 빌딩숲, 현대화한 사회구역이 풀도 안 돋던 황지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심수시 라호구 이남에 자리한 이 어촌은 향항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다. 20세기 30, 40년대부터 동관의 일부 어민들이 동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심수가 물 맑고 고기떼들이 탐스러움을 발견하고 륙속 상륙해 정착하기 시작했고 어획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촌이 생겨났다. 어린 오금청은 바로 그 때 부모를 따라 심수 이곳에 발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황무지였고 빈터였네. 작은 어선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태풍을 가장 두려워했지. 태풍만 불면 우린 어선에 있을 수 없게 되니 말이요.”

오로인은 당년의 어촌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정처없이 표박하면서 살아온 것 말고도 어촌은 변경지역이다나니 치안도 안 좋아 어민들은 악패,토비들의 성화까지 받다나니 시종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고 한다. 해방후 정부의 고무와 부축으로 어민들은 륙속 상륙해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그래서 어촌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어촌은 그래도 근근히 배불리 먹는 선에서 유지했을 따름이였다고 한다.

전환점은 지난 세기 70년대에 왔다. 개혁개방의 봄바람은 이 변경의 어촌에 먼저 스며들었다. 당중앙에서는 심수를 경제특구로 건설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날 ‘향항과 륙지를 잇는 제1통상구’로 알려진 라호통상구와 잇닿아있고 향항과 강 하나 사이두고 있는 특유한 지리위치로 하여 어촌은 하루밤 사이에 세인의 눈길을 집중시킨 핵심지역으로 부상했고 아울러 어촌의 200여명 어민들도 더없는 천시지리를 누릴 수 있게 되였다.

“개혁개방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좋은 세월을 보지 못했을 거네 .”

어촌의 오늘을 말함에 있어서 어촌 사람들한테는 공동한 키워드 ‘개혁개방’이 들어있다. 오로인은 바로 그중의 한 수혜자이다.

개혁개방은 예서 계속되였다. 특구의 령활한 정책하에 어촌의 백성들은 솔선하여 향향과 변경 소액무역을 시작했다. 운수차대와 운수선박대를 뭇고 양식업을 발전시키고 오다를 쟁취해 가공업을 시작했다.

“1979년에 이르러 어촌에는 이미 호텔, 장신구가공 등 향항의 공장들이 여러 집 들어왔다. 공장임대료가 촌민들의 호주머니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몇년 사이 촌민들은 거의다 ‘만원호’로 되였다.”

오로인이 어획을 그만둔 것도 그 때 쯤이였다고 한다. 임대료만으로도 생활비는 충족했으니까. 그 때 촌에서는 촌민들을 위해 통일로 별장식의 다층건물을 지어주었다. 개혁개방이 몇년 안된 사이 어촌은 이미 원근에 소문 높은 중국의 제일 부유한 촌으로 알려졌다.

개혁개방은 계속된다.

1992년에 심수는 농촌 도시화 개조를 착수해 어촌의 사람들은 농민으로부터 시민으로 , 촌집체는 주식회사-심수어풍실업주식유한공사로 돼 어민들은 사람마다 주주로 되였다. 배당금을 받는 외 집 임대료도 촌민들의 하나의 고정수입으로 되였다.

21세기초 경제의 쾌속발전에 따라 심수시의 외래인구가 대량으로 늘기 시작했다. 세입자가 점점 많아지자 어촌은 개조시점으로 되였다. 어촌 촌민들은 어풍실업주식유한공사와 자체로 자금을 마련하여 12층짜리 고층아빠트를 11동 지었고 20층짜리 종합청사를 1동 건설했다. 그리고 어풍실업주식공사는 어풍물업공사도 내와 전 촌 임대가옥에 대해 통일로 세놓고 통일로 관리했다. 어풍실업주식유한공사 상무부총재 황흥염은 기자한테 촌에서 통일관리한 이래 어촌의 아빠트 임대률은 련속 다년 100%를 유지하고 있으며 8년째 한건의 치안형사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소개한다.

18차 전국당대표대회 후 어촌의 개혁은 의연히 진행되고 있다.

원유 토대상 어촌에서는 430평방메터되는 로인 일간 간호봉사센터를 세워 로인들은 사회구역을 벗어나지 않고도 편리한 주가양로봉사를 향수하고 있다. 부동산개발대상 수익금으로 집체경제를 더한층 발전시켰고 촌민들의 가정수입도 한층 올렸다.

황흥염 부총재에 따르면 지금 어촌 촌민들의 수입원은 집체수입에서 나오는 배당금, 부동산 임대료, 로동성 수입 및 각종 복리보조 4개 부분으로 구성된다. 개인 로동성 수입 말고도 개인 고정수입이 매달 4만원, 5만원은 되는데 이는 어촌 촌민들 수입에서 보면 중등수준이라고 한다.

/편역 길림신문 김영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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