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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창업실록5]‘100년의 축구타운’꿈 예서 펼쳐진다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7-15 14:58:58 ] 클릭: [ ]

룡정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에 깃든 이야기 1,2,3

리문철, 장문길, 신광화‘3형제’축구문화의 기적을 창조한다

축구타운 전망효과도.

사진은 축구단지 건설현장(5월초).

약동하는 ‘100년의 축구타운’꿈

축구를 발전시킬데 관한 나라의 총제적방안에 따라 ‘축구의 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서는‘100년의 축구타운’꿈이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다.

100년전인 1908년에 항일민족애국지사들이 룡정시 명동촌에 조선족의 첫 학교—명동학교를 세워 민족의 꿈나무들에게 항일, 민족독립사상과 문화지식을 전수한 동시에 축구를 가르치면서 연변 및 길림성의 첫 축구팀이 탄생되였고 1926년에 룡정동흥중학축구팀이 평양에서 있은 국제축구경기에 참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연변축구팀은 민족의 투혼을 불살라 중국축구구단에서 ‘장백호랑이’의 선풍을 몰고 오며 중국축구발전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확보함과 동시에 하나 또 하나의 전설을 엮어 200만 중국조선족들에게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안겨주고 있다. 100년의 세월과 더불어 축구는 조선족이 가장 즐기는 운동으로, 중요한 군중문화활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조선족사회의 구심점으로, 대표적 명함의 하나로 되였다.

축구운동정신은 벌써 연변의 거대한 무형자산으로 되였으며 축구운동은 연변에서 이미 정치, 경제, 문화생활속에 깊이 융합돼 들어가 단순한 스포츠운동으로의 의미를 넘어 백성들이 가장 열망하는‘민생’화제로 되였다.

중국축구계를 감동시키는 연변축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축구단지공사 진척상황을 설명하고있는 리문철.

올해 4월에 가동한 중국룡정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이하 ‘축구단지’로 생략)는 건설이 순항, 이는 연변축구의 기원을 열어 100년이 지난 오늘날 축구를 열애하는 연변의 유지 청년기업인들이 뭉치여 뜻과 힘을 합쳐 만드는 하나의 꿈—축구프로젝트이다. 축구단지 투자규모는 3.5억원, 부지면적 30만 4000여평방메터, 건축면적이 11만평방메터이다. 주로 4개의 7인제 표준 실외 천연잔디 축구훈련장, 4개의 11인제 표준 실외 인공잔디 축구훈련장, 2개의 11인제 표준 실외 천연잔디 축구훈련장, 4개의 11인제 실내공기막(气膜)축구훈련장, 축구학교 실습훈련기지청사, 축구학교 교수청사, 축구호텔 , 선수 및 전문가 기숙사, 인공호수경관대, 시민레저광장 등 시설건설이 포함된다. 2기로 나누어 3년내에 공정을 전부 마무리할 계획, 오는 10월전으로 1기공사는 사용에 교부된다.

축구단지는 열순환계통은 지열히트펌프(地源热泵), 수열원 열펌프(水源热泵)순환계통을 사용하고 실내훈련하우스도 에너지절약, 미세먼지방지, 항온 등 선진기술성능의 공기막구조로 되는 등 국제선진표준으로 설계되였다.

축구단지의 취지 및 예기하는 효과성에 대해 룡정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유한회사 리사회 리사, 총경리(법인대표) 리문철은 “축구단지를 연변의 축구전통문화와 조선족축구문화전통을 전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 기지로, 연변의 청소년축구인재양성기지와 청소년축구훈련기지로, 연변 각 축구구락부와 국내외 구락부간의 교류의 플래트홈으로, 남방 유명학교들의 여름철 훈련기지로, 본지방 대중들의 건신기지로, 축구산업 관련 국제교류 플래트홈으로 만들어 축구가 영원히 연변에 뿌리내리게 하여 연변인민들로 하여금 축구가 가져다주는 더 많은 복지를 만끽하게 하자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하나의 리상에로 달리는 친구’

한 파트너와의 전략협력 협의식에 동석한 리문철(오른쪽), 장문길, 신광화 “3형제”.

축구단지대상은 룡정시정부와 투자측이 함게 건설하는 연변의 첫 축구문화산업단지대상이고 룡정시, 연변이 경제전환발전에서 축구란 무형문화자원과 록색, 생태자원을 련결시켜 개발하는 창의산업대상으로서 경제, 문화의 혁신발전을 이끌고 청년 및 귀향창업을 이끌어내는 창의경제, 투자유치, 귀향창업의 모델공사로 주목된다.

축구단지는 광동성 광주 동관락가(东莞乐嘉)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와 연변민혁부동산(鈱赫置业)개발유한공사의 공동투자로 이루어진다. 이는 연변에서 민영자본이 사회축구령역에 투자하는 전형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축구단지 리사회 리사 3명 요인은 친구간이란 점이다. 이들은 모두 30대 청년이고 연변사람, 룡정태생이다. 리사장 장문길(39세, 민혁부동산개발유한공사 리사장)과 총경리, 법인대표 리문철(38세, 동관락가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 리사 )은 ‘짜개바지’친구이고 리문철과 부총경리 신광화(39세, 락가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 리사)는 18년을 함께 해온 동료이고 동업자이다. 이들은 다 ‘뽈개지’시절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으며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연변축구팀과 같이 울고 웃어왔으며 오래전부터 연변축구사업발전화제를 반주해왔다.

일찍 완구제조업을 해오던 리문철은 고향에서의 발전공간을 진맥하고 창업아이템도 탐색해오던 중 축구단지꿈에 올인했다고 한다. “개방의 전초지인 광주, 심수에서 창업 성장해온 한 중소기업으로서 고향의 큰 민생공사—축구단지건설에 선뜻이 나서서 정부와 손잡을 수 있은것은 축구진흥정책, 경제전환발전, 혁신발전의 량호한 정책환경, 창업플래트홈이 형성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며 또 그 기회에 고향의 친구(장문길)가 손을 잡아준 것이 축구단지 투자협력의 확고한 기초가 되였다.”고 말한다.

리문철과 신광화는 광주, 심수에서 완구제조업을, 장문길은 고향에서 광산업, 부동산업을 해오면서 10여년사이에 일정한 물질적 재부를 창조했다. 그러던 그들은 지금‘돈의 더 큰 가치의 실현 ’을 위해 축구단지를‘100년 기업’으로 선택하고 함께 건설하기로 했다.

화룡태생인 신광화는 2000년도에 연변대학리공학원 기계전업을 졸업하고 일본기업인 광주청류전자유한회사에 초빙돼 리문철과 동료로 5년반 함께 일하다가 리문철과 비슷한 시간에 퇴사해 지금까지 함께 손잡고 동고동락해왔다. 그는 “지난 10년, 우리는‘심수 드림’의 막차로 심수에서 무역, 제조업으로 창업에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는 귀향창업의 이른 차에 오른 셈이다. 당금 수익을 론할수는 없지만 축구단지는 비전이 있는 우리의 ‘100년기업’이다.”고 말하면서 할 일에 더없이 의기분발된다고 한다.

제대군인인 장문길은 고향에서 14년동안 광산업과 부동산업에 종사해온 기업인으로서 누구보다 고향의 발전 변화를 페부로 절감한 사람이다.“축구단지는 연룡도 및 룡정 해란강조선족민속특색진건설대상가운데서 우수한 대상이고 전망이 있는 대상임에 틀림없다. 이는 연변사람들의 힘을 응집시키는 대상이다. 빠른 시일내에 수익을 크게 볼 수는 없겠지만 미래 전망은 밝을 것이다. 현단계 전망설계도는 1, 2기공사로 완성할 예정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거기까지가 아니다. 3, 4기에까지 혹은 그 이상으로 축구단지를 확장할 수 있다… ”면서 60여만평방메터를 커버한 축구단지 원경전망설계도가 바야흐로 나오게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축구단지를 조만간에 상장기업으로 만들어볼 의지까지 밝혔다.

“지난해 7월 중순부터 의향 상담, 실정 고찰, 투자협의 체결 및 대상 건설을 실시하기까지 원래 1년이 소요된다 했는데 실제 반년 밖에 안걸렸다. 이는 기후조건상 1년에 시공기일이 반년 밖에 안되는 현지 실정에서 보면 우리가 이미 1년이란 시간을 벌었다는 계산이 된다. 이는 룡정시정부의 의지 및 각 부문의 수준급 직능과 봉사, 연변주당위와 정부의 중시와 관심이 큰 구동력이 되였다.”며 이들 ‘3형제’는 감개무량해한다.

정확한 가치관을 창업의 기석으로

    사진은 리문철 모멘트 중의 가족사진이다. 가운데 분은 리문철의 어머니, 그리고는 리문철의 안해이고 앞줄은 이들 부부의 딸과 아들이다. 부친의 빈자리가 리문철한테는 큰 아픔으로 남았다. 5년전 리문철이 심수에로 아빠트를 사서 부모님을 모셔오자고 장식을 다그치던 때에 그의 부친은 고향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동관락가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는 리문철이 신광화와 그의 한 일본인친구와 함께 공동 운영하는 전동완구, 플라스틱완구 및 미니 가정전기제품 제조회사인데 제품은 100%로 일본으로 수출하며 년간생산액은 약 3억원 된다. 리문철은 동관락가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 및 그 회사의 경외 회사인 일본 동경웨이스트주식회사, 향항웨이스트국제유한회사의 리사이고 최대 주주이다.

장문길은 억대기업의 38세 대주주 리문철을 두고 “그는 동년배들이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생을 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취업으로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해 창업에 성공한 사나이이다. 고향건설에 미래와 꿈을 걸고 그 피같은 돈을 다 쏟아 붓는 비범한 친구이다. 이런 친구와 손잡을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리문철은 화려한 학벌도 없었고 아무런 배경도 자본도 없었다. 그는 룡정시 로투구진 로양촌의 한 농민가정 출신이고 초급중학 밖에 졸업못한 사람으로서 살길을 찾아 남하해 광주, 심수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이고 리향 18년만에 고향 ‘축구타운’ 꿈에 선뜻이 도전해 귀향창업의 코기러기가 된 열혈기업가이다.

구척사나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은 한 시골 소년의 짠한 그림자이다.

한 가정의 독자로 태여나고 자랐으나 중학시절까지 부모님이 7년간 로씨야장사길에 있다나니 소년 리문철은 부모의 사랑이 못내 그리웠고 외롭게 지냈다.

교내축구팀 골키퍼로 활약하던 소학 시절엔 그토록 갖고 싶었던 축구공도 제이름으로 남기지 못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그토록 타고 싶었던 산악자전거마저 로씨야장사를 갔던 어머니가 귀국 전날 강도의 습격을 받아 번돈을 몽땅 강탈당하는 바람에 만져보지도 못한 리문철이였다. 그러던 그는 중학교 3학년 승학을 그만두고 연변을 떠나 경제가 발달한 개방도시 취업진출을 목표로 흑룡강성의 한 봉페식 사립외국어학교로 들어갔다. 자신의 선택에 충실하려고, 단숨에 다 배워내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워 리문철은 새벽 2시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헌데 궁극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학잡비 등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1년만에 리문철은 그 학교를 나왔다. 스스로 돈을 벌겠다고 연길에서 여기 저기를 찾아 아르바이트도 해보았으나 돈은 생각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사춘기의 진통을 겪을대로 겪은 리문철은 20살을 먹으며 방황의 끝을 냈다. “진정으로 자립할것이다!”고 이를 사려물고 다른한 짜개바지친구와 함께 그 친구집과 친분이 있는 한 지인이 취직하고 있는 개방의 전초지 광주로 갔다.

“할줄 아는 것이 뭐냐?”

첫마디부터 입이 막히였다. 고민, 후회막급이였으나 물러날 길이 없었던 리문철이였다. “이제부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지어는“월급을 주지 않아도 배우게만 한다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로 결국 완구를 만드는 청류전자회사라는 일본기업에 취직했다.

당년에 배운 일본어가 리문철의‘구명 지프라기’이자 ‘자본’이였다면 자본이였다. 일어는 써먹을 수 있어도 학력이 낮아 월급 400원으로 일본측 생산총책임자의 통역으로 일을 시작했다. 성실하고 열심히 배우고 눈썰미 빠르고 발 빠른 리문철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따라서 월급도 배로, 10배, 20배 …로 직상승해 3년후에는 1만원대에 이르렀고 장려금도 일정하게 받게 되였다.

떠날 때 외사촌누나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2800원을 받아쥐면서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것이다”고 선언했던 리문철은 말한대로 했다. 또 그렇게 일에만 전념했기에 살길이 생겼다.

회사측에서는 전반 생산선에서 깨달음이 빠르고 깊은 리문철을 5년만에 업무경리로 승진시켰다.

바로 그때 광동성 일대의 완구제조시장에 대해 깊이 파악하고 일본의 완구시장에 대한 독립적인 판단을 할수 있었던 리문철은 회사의 승진을 마다하고 퇴사, 창업을 선택했다.

동료 신광화가 퇴사를 선택한 것도 그때였는데 일본회사의 피라미트식 체제상 당시 중국 회사원에게는 1만원정도의 로임선이면 상승공간이 더는 없다는 판단에서였고 리문철과 두사람은 5년남짓이 종사해온 완구제조업의 생태에 대해서도 꿰뚫었기에 퇴사후 창업할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리문철은 곧 신광화와 일본측의 한 친구와 함께 일본에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일본시장의‘오다 따기’에 용을 써‘첫 자본금(第一桶金子)을 손에 쥘수 있었고 2년후인 2007년에 이들은 창업자본 100만원으로 동관락가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를 설립해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종업원은 초창기의 120여명으로부터 지금의 3000명으로 늘어났고 년간 생산액도 3억원 규모에 도달했다.

창업 성공의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확한 가치관이 창업의 기석이였다. 정확한 가치관이 없다면 옳바른 인생관, 세계관도 있을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꿈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여 자신의 가치, 능력을 키우느라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

축구문화산업에 대한 그의 일가견은 이렇다.

“자본형경제시기, 제조경제의 폭발성 성장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나라와 각급 정부는‘창의경제’,‘사회경제’,‘창조산업’,‘경제의 전환발전’을 적극 선도하면서 여러가지 우월한 정책환경과 봉사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경제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형세하에서 지역간, 나라간, 그리고 정부와 기업인, 기업인 서로간에‘호조합작 상생발전(抱团取暖)’이라는 적절한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에 더없이 공감하고 있다.

맨주먹으로 심수에서 친구들과 손잡고 자본금을 만들고 나름대로 재능을 합치여 자신의 가치, 능력을 최대화하고 공사의 쾌속성장을 꽤해 일정한 부를 창출했다면 축구단지는 이미 창출한 부를 모아 정부와 손잡고 사회자원을 개발하여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거창한 사업이다”.

세계 제2의 문화산업대국으로 불리우고 있는 일본을 본업의 소비시장으로 상대해온 리문철은 오늘날 경제발전에 문화적 인소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절감한다면서 문화가 경제의 핵심적 동력이 될 때 창출해내는 그 부가가치는 가늠할수 없을 정도로 엄청 크다고 말한다.

연변의 축구문화는 전국의 열점화제이기에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축구문화산업은 축구산업과 문화산업이 융합되는 신흥산업이다. 축구단지는 바로 축구문화를 핵심으로 무형의 축구운동정신과 유형의 축구운동물질로 정신적,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정신과 문화의 산업, 미래지향적 록색산업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룡도개발전략 및 중국 룡정해란강조선족민속특색진건설프로젝트의 하나인 축구단지건설대상은 매우 우수한 대상이고 전망이 있는 대상이다. 때문에 인생 제2막의 시작과 도전으로, ‘100년기업’으로 축구단지대상을 선택했다. 전면초요사회를 이은 ‘두번째100년’에 가서는 연변에 자랑스러운 축구타운이 서게 될 것이라 우리는 확신한다.”고 표한다.

축구관련 경기, 구락부, 교육과 양성, 레저와 건강, 호텔 등 봉사시설을 일체화한 축구문화종합체로서의 축구단지는 불과 2년내지 3년사이에 지역사회에 새로운 축구문화체험과 소비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며 리문철은 축구산업과의 융합발전사슬에 관광, 미디어, 오락, 건강, 양생 등 산업이 련결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또 축구단지 밖의 민속, 생태 본연의‘축구마을’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 즉 축구단지와 ‘축구마을’들을 아우르는‘100년의 축구문화타운’을!

“‘생태문화’,‘민속문화’가 연변의 특색이라면 이제부터는‘축구특색’이 가세할 때이다. ‘푸른 하늘, 맑은 물’을 자랑하는 연변에 민속마을처럼 축구타운도 당당하게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시작한 축구단지는 축구타운을 낳는‘믿알’이고 부화기이다.”

리문철이 보여주는 축구타운 원경전망계획도(스케치)에는 표준축구장이 15개로 증가되고 축구, 스포츠관련 시설외 6만 평방메터되는 경관거주단지, 조선족민속미식거리, 레저광장 등으로 조화를 이룬다.

축구타운은 국내 일류의 축구 집중훈련중심, 경기중심, 연수중심, 축구관련 미디어중심을 일체화한, 중국 북방에서 규모가 웅대하고 기능이 구전하며 록색, 생태적이고 체육운동과 전민건신운동을 훌륭하게 결합하는 축구의 성지로, 해란강반의 관광 레저락원으로 전망된다면서 리문철은 연변 “축구타운”의 꿈을 실현하는 로정에 더 많은 유지인사들이 동참하기를 바랐다.

긍정적에너지, 행복에너지가 넘치는 리문철의 모멘트에서도 축구단지건설과 더불어‘100년기업(百年企业)’‘인본주의(以人为本)’‘한마음 한뜻(志同道合) ’‘미래를 개척(开辟未来)’등이 키워드로 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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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 자이크로주식회사와 전략협력관계 맺어

한국 자이크로주식회사 최창영 대표리사와 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 리문철 총경리가 량사간 전략협력협의서에 싸인했다.

5월 18일 , 룡정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는 첫 반가운 파트너를 맞았다.‘세계를 무대로 모자이크를 완성해가는 ’축구유니폼, 축구용품 등 스포츠용품 , 스포츠교육, 인재육성을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사업 전문업체인 한국 자이크로((ZAICRO)주식회사 최창영 대표리사가 축구단지를 방문해 량사간 전략협력협의를 체결했다.

최창영 대표는 협력협의내용에 대해 “중국 국내서 제일 큰 축구단지로 전망되는 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와의 협력을 통해 자이크로가 중국시장 개척에서의 플래트홈을 넓히고 또 한국의 축구, 스포츠관련 우수한 자원을 이 축구단지로 유치해들여 축구단지발전에 공유할수 있도록 하며 특히 자이크로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축구지원사업을 해온 등 토대를 리용하여 한중간 유소년축구선수들이 세계로 나갈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연변 유소년축구선수육성에 일조할것이다 ”고 표했다.

소개에 의하면 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조성에 국내외로부터 관심과 협력의향을 표해오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리문철 총경리는 상해 출장 중인데  한 축구문화산업 관련 빅데이터회사와의 협력을 추진하고있는바 해당 협력이 이루어지면 해란강축구문화산업단지 정보과학기술부분에서 큰 힘팔을 얻게 될 전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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