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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특색제품 생산으로 창업한 녀기업가

편집/기자: [ 최창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5-29 09:39:27 ] 클릭: [ ]

백산시 팔도강구 반석반찬공장 원해숙공장장의 창업담

조선족녀기업가 원해숙

길림성 백산시 혼강구 반석반찬공장의 원해숙공장장은 자주창업으로 고향땅에서 민족특색의 제품 생산가공으로 800만원의 고정자산을 소유한 녀기업인이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는 얼마만한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 모른다.  

민족특색의 제품 생산으로 시작한 자주창업

금년에 57세인 원해숙녀성은 원래 백산시조선족중학교에서 사상품성이 좋고 공부를 잘해 늘 학교선생님들과 학우들의 칭찬을 받는 우수학생이였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가정경제생활난으로 말미암아 고중도 졸업하지 못한채 학교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리하여 그는 1973년도부터 몇년간 외지로 돈벌이 나갔다가 1980년도에 고향인 백산시 혼강구에 되돌아왔으며 혼강구농기계공장에서 근무하는 김충걸씨와 가정을 이루었다.

두 어린애의 어머니로 된 그는 남편 한사람의 로임에 매달려 시내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993년도에는 집에서 실험삼아 민족특색이 짙은 조선족김치를 담그어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으며 그 이듬해부터는 또 거기에 소힘줄을 좀씩 만들어 팔았는데 생각밖에 장사가 괜찮았다.

1995년 시내 모 기업에서 부공장장으로 사업하던 남편이 기업이 파손의 변두리에 이르자 정리실업을 하게 되였다. 원해숙은 기업경영에 풍부한 실천경험을 갖고있는 남편의 슬픈 마음을 달래며 1996년에는 차라리 남편과 함께 소힘줄을 가공해 시장매대에 도매가격으로 넘겨주기도 했다.

몇년간의 간고한 창업으로 일정한 실천경험이 있게 되자 1997년 원해숙은 500만원의 가동자금으로 백산시 교외에 자기의 실체인 반석반찬가공공장을 앉혔다. 그리고 전통적인 조선족김치 가공공예와 민족특색제품으로 시장을 겨누고 질과 신용을 지키는 경영모식으로 기업을 운영해나갔다.

1998년 그들은 생산규모를 확대, 5만여원을 투입해 백산시 혼강구 하구 6사 강변에 6칸짜리 150평방메터에 달하는 공장건물을 짓고 8명의 정리실업자들을 이끌고 매일같이 배추김치와 소힘줄을 대량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팔았다.

1999년도에는 5만원을 들여 5개의 제품포장밀봉설비를 구입하고 또 5만여원을 지불해 배추김치포장기계를 사들였다.그리고 2000년도에는 9만원을 투입해 소힘줄원료가공기계설비를 가설했다. 이 기초상에서 2001년에는 국가흥변부민행동 부축자금 2만원과 은행대부금 8만원을 더 지불해 소힘줄가공, 마른명태가공과 배추김치, 고추장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생산기술과 자금이 부족되고 인원이 적은데다 설비가 락후하다나니 곤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이리하여 2002년, 원해숙은 민족특색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는것만이 자기가 성공할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깊이 감안하고 선후로 여러차례 연길, 장춘, 심양 등지에 가 시장동태를 잘 파악하고 일부 이름있는 조선족기업인들의 선진경험과 선진적인 생산공예, 기술을 허심히 따라배웠다.

그녀는 또 경상적으로 연길서시장에 드나들며 장사군들한테서 연변김치, 소힘줄, 조개살양념을 만드는 기술과 재간을 배워왔으며 때론 저들이 생산해낸 고추장을 연변에 갖고가 그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부족점을 찾군 했다.

2003년, 기업을 크게 잘해보려고 원해숙은 다시 10여만원의 자금을 들여 비교적 선진적인 생산가공설비를 도입하고 20만원의 원료를 구입하여 기업의 생산규모를 부단히 확대하였다. 그런데 반찬생산은 계절의 제한을 받기에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백산시민족사무위원회에서는 2004년 1만여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그의 공장에 랭장고(冷藏保鮮庫)를 지어주어 1년사시절 신선한 조선족반찬을 생산할수 있도록 발전공간을 마련해주었다.

2005년, 뜻밖에 나타난 수단(蘇丹)홍사건은 삽시에 전국대지를 휩쓸었다. 한동안 사람들은 붉은 고추를 주요원료로 하는 반석반찬에 대해 의심을 갖고 말썽이 많았다. 한데서 영업액에 엄중한 영향을 끼쳤다.

준엄한 형세에 비추어 원해숙은 주동적으로 시기술감독국, 위생보건소의 해당 책임일군들을 모셔다 공장의 원재료구입과 제품의 생산가공, 포장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검사를 진행하고 식품안전검사를 진행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공장에서 생산해낸 제품은 다시 객상들의 신임을 얻게 되였다.

생산직장

남편 김충걸씨와 함께 고추장을 연구하고있다.

고려장을 발효시키고있다.

엄한 경영관리 좋은 경제효익 창출

제품생산과정에 그의 공장에서는 시종 불합격원료가 공장에 들어오는것을 견결히 막고 또 불합격제품이 시장에 나가는것을 단연 두절했다. 이렇게 한데서 그가 경영하는 반석반찬가공공장은 점차 규범화의 궤도에 들어섰고 발전장대해지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생산가공해낸 고추장, 소힘줄제품은 상해광대전람회에 전시되여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뿐만아니라 이 몇년간 원해숙녀성은 또 상해보건삼륭그룹연구소의 과학적인 기술지도를 받으면서 소힘줄을 위주로 대량의 생산에 들어갔다.

한데서 이 공장에서는 최근 몇년간 해마다 근 70톤의 소힘줄과 4톤의 고추장, 10여톤의 배추김치에 약간의 마른병태가공으로 년간 4만여원의 세금을 납부하고 20만원의 순수입을 창출할수 있었다.

그들이 경영하는 원래의 백산시 혼강구 반석반찬공장은 현재 해마다 년간 30톤의 소힘줄을 생산가공하고 또 깨장, 고추장 6톤가량 생산하고있는데 년간 100여만원의 생산액을 창출하고있다. 기업은 일 2만주머니의 생산규모를 갖춘 현대민영기업으로 부상하고있다.

지금까지 이 공장에서 생산해낸 《소힘줄(牛板筋)》, 《짠지》, 《풍미물고기》, 《맛을 돋구는 된장》 등 4가지 종류에 30여가지 민족특색제품은 전부 국가기술감독국에서 발급한 《전국기업제품허가증》을 얻었으며 그중 조선족김치는 국가기술감독국의 검사를 거쳐 각항 지표가 국가표준에 도달,《소힘줄》은 동북향토문화로 표지되였다.

뿐더러 이 공장의 반석반찬제품은 점차 이름을 날려 지금은 백산, 통화 지역의 많은 백화점과 슈퍼마켓에서 잘 팔리고있을뿐더러 북경, 상해, 천진 등 국내 대도시들에서 판매되고있다.

콩을 삶아 찧어서 메주를 쑤고있다.

메주를 걸고있다.

아들딸과 함께 메주콩을 고르고있다.

상해동방위성방송에서 원해숙의 창업정신을 기록편으로 찍고있다.

공장확건으로 새공장건설

기업이 점차 규모화로 발전하면서 2008년도 그들은 또 백산시 혼강구 조양촌동쪽에 새 공장자리를 정하고 선후로 200만원의 투입으로 부지면적 1400평방메터 건축면적 1080평방메터에 달하는 3층짜리 공장건물을 새로 짓고 거기에 판공실, 접대실, 화염실과 생산판매경영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50만원을 지불해 오물처리설비를 인입하고 60만원을 투입해 고온소독기재, 환보관리, 고추가루분쇄기와 남새세척기를 구입했으며 또 8만원을 들여 랭장고를 짓기도 했다.

2011년도 이 공장에서 연구개발한 차조기(紫苏)계렬농산물제품정밀가공 기술개조는 시발전개혁위원회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는바 당해에 건설대상을 세우고 민영기업발전계획에 넣어 비준되였다.

2012년에는 백산시민족사무위원회, 혼강구정부의 부축과 대폭적인 지지로 100만원의 자금을 쟁취했고 시재정국으로부터 농업건설대상부축자금 20만원, 혼강구농업국, 구재정국으로부터 20만원에 달하는 농업건설부축자금을 쟁취했다.

알아본데 따르면 지금 한창 건설중에 있는 차조기계렬농산물제품정밀가공건설대상은 총 1300만원을 투입하게 되는데 올해안으로 대상신청, 투자건설, 등록비준을 마무리고 2015년에 정식생산에 투입하게 된다.

생산에 투입되면 년간 200톤의 참깨기름과 참깨잎 정밀가공으로 참깨장 등 여러가지 차조기계렬농산물제품 600만톤 생산하게 되는데 현저한 경제효익을 창출할수 있다. 그리고 정리실업종업원, 농촌여유로력 80여명의 일자리를 배치하게 된다. 현재 그의 기업은 800여만원의 고정자산을 갖고있다.

2013년 9월, 성인대상무위원회 리룡희부주임은 공장을 관람하고 이 공장에서 생산가공한 반석반찬제품은 특유한 우리 민족의 브랜드제품으로서 민족특색이 짙고 맛이 좋을뿐만아니라 사람들의 신체에 아주 유조하다면서 그들이 공장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계속 잘 꾸려나갈것을 바랐다.

그리고 지방 정부에서 적극 부축하고 금융계통에서 500만원 이내의 신용대부금을 내줄것을 요구했다.

소힘줄 영양제품

소힘줄

입맛을 돋구는 소힘줄 맥주와 함께

소힘줄제품

입맛을 돋구는 소힘줄 반찬

맛나는 차조기 고추장

사회를 위해 적극 봉사

근년래 원해숙녀성은 공장확건으로 자금이 긴장한 상황에서도 종업원들을 전부 사회보험에 참가시켜 그들의 양로금문제를 해결하였고 또 기업의 곤난종업원과 곤난농민대학생가정을 적극 돕고있다. 해마다 설명절이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곤난종업원가족을 찾아 위문, 그들에게 입쌀, 밀가루, 콩기름, 과일 등 물품을 사다주는 등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기도 한다.

몇년전 백산시 혼강구 하구사회구역에 거주하고있는 백정이라는 한 한족녀학생은 가정생활이 몹시 어려워 중학교마저 다니기 어려웠다. 이 사연을 알게 된 원해숙은 달마다 그한테 일정한 생활보조금을 해결해주어 그가 우수한 성적으로 장춘대학계산기전업에 입학하게 했다. 그가 대학교에 다니는 기간 그녀는 또 새옷과 새 이불, 기차표까지 사다주었으며 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경제상 적극 도와주었다.

2008년, 통화시 오도강진에 살고있는 한 녀학생이 중경사범대학에 입학한후 학습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생활난으로 추운 겨울에도 솜신, 솜옷이 없는것을 알고 무상으로 3000원어치의 소힘줄제품을 주어 그가 그것을 팔아 학잡비로 쓰게 했다.

본 기업 종업원 송녀사의 남동생이 신체가 허약하고 가정경제수입이 없다는것을 알고 지금까지 련속 10년간이나 경제상 부축하고 생활상 여러모로 도와주고있다.

이밖에도 그들은 또 여러차례나 시조선족로인협회에 돈을 기부해 년세 많은 조선족로인들이 시내구경, 야외관광을 떠나게 했으며 시조선족중학교에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성인대 리룡희(중간)부주임과 함께

백산시룡두기업

창업스타

성심업주

기업에선 세대주 가정에선 현처량모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며느리로, 훌륭한 딸이 되고 현처량모가 되는것이 원해숙녀인의 념원이였다. 결혼생활 35년간 그는 부모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온 집안 가정화목에 충성을 다해왔다.

1980년, 24살 꽃나이의 원해숙은 당시 혼강구농기계공장에서 근무하는 김충걸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맏며느리로 김씨가문에 시집을 왔다. 정작 시집을 와 보니 집에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모두 장기환자로 시름시름 앓고 계셨는데 시어머니는 언녕 반신불수로 되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집을 오자부터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친부모처럼 높이 모시면서 온갖 정성을 몰부어왔다. 언제나 돈을 아끼지 않고 맛나는 음식을 장만해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밥상에 올리군 했으며 매일같이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옷을 깨끗이 씻어드렸으며 집을 거울같이 환하고 깨끗하게 거두어 이웃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워낙 빠듯한 살림에 시부모의 치료비까지 보태자니 경제곤난이 막심했고 저녁늦게까지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다보면 하루에 2~3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이뿐이 아니다. 두 어린애의 어머니로 된 원해숙은 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또 어린애들도 돌봐주며 밭농사도 지어야 했기에 매일마다 팽이처럼 드바삐 돌아쳐야 했다. 더우기 가정경제난으로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였지만 오직 시부모의 병치료에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그녀는 짬시간을 리용해 농촌의료위생방면에 관한 서적들을 부단히 탐독하면서 농촌의료림상기술을 허심히 배웠다. 하여 그녀는 끝내 농촌맨발의사(간호사)합격증을 타게 되였다.

농촌맨발의사(간호사)가 되자 그녀는 시부모를 위해 직접 절로 약방을 떼고 주사도 놓아주어 그의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생전에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앞에서 언제나 며느리의 자랑을 하군 했다. 그러던 시아버지는 간경화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한체 1988년도에 저세상으로 갔고 시어머니는 1990년도에 세상을 떴다. 시아버지는 림종전에 며느리의 손을 꼭 잡고 《자네는 우리 김씨가문의 가장 좋은 며느리오》라고 말했다.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그녀는 또 길림시 영길현 쌍하진으로부터 생활래원이 없는 친정 아버지, 어머니를 집에 모셔왔다. 기업을 꾸리느라 일이 더 없이 많고 다망했지만 언제나 부모를 높이 모시면서 자식의 의무를 담당해왔다.

몇년간 그는 해마다 부모님들을 시병원에 모시고 가 신체검사를 시키고 또 여러가지 보신약을 대접하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 그는 푸짐한 상을 차리고 일가친척들과 동료들을 청해다 아버지, 어머니의 80돐 팔갑생일을 아주 멋지게 치렀다.

올봄, 그는 또 부모님들을 모시고 해남으로부터 남경, 북경, 광주 등 대도시를 구경시켜 로인들 만년생활을 다채롭고 기쁘게 해드리고있다.

원해숙은 부모님들은 잘 모실뿐만아니라 남편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며 자식들을 엄하게 잘 키워 출세시키고있다.

그의 딸 김기매(34세)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을 졸업한후 또 북경대학 한어언어연구생을 마치고 지금은 자주창업으로 북경에서 자체로 회사를 꾸리고있으며 이미 결혼하여 새 가정을 이루었다.

아들 김구(28세)는 한국 연세대학 경제관리학부를 졸업하고 지금은 심양, 대련에서 창업하고있다.

현재 원해숙의 가정은 혼강구 국태사회구역의 132평방메터에 달하는 살림집에서 3대로소가 남부러움을 자아내며 오손도손 화목하게 살아가고있다.

부모의 팔갑생일

화목한 3대 한가정

원해숙녀성 조선족로인들과 기념사진

/최창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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