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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 3동비’의 하나-아극당아 덕정비 출토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연변뉴스넷 ] 발표시간: [ 2017-11-17 12:58:28 ] 클릭: [ ]

 -훈춘 청조말기 력사연구에  진귀한 실증물로 

최근 훈춘시 영안진의 우봉승(65세)촌민이 훈춘-울란호트 고속도로 옆에서 129년전 즉 1888년에 훈춘 부도통(副都统) 아극당아(依克唐阿)를 위해 세운 덕정비를 발견했다.

우씨가 매일 다니는 산책길에서 우연하게 발견했다. 도로옆 배수구를 파는데서 일군들이 파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씨도 처음엔 그저 지나치며 다녔다고 한다. 몇차례 내린 비에 씻긴후의 그 비석에서 우씨는 다시 대량의 번체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한다. 훈춘에서 나서 자란 우씨는 유난히 훈춘의 력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라 비석의 글씨를 뜯어 보고는 혹여 이 비석이 자신이 들어온 훈춘의 ‘3동비(三幢碑)’가 아닐가 하는 생각에 훈춘시문물관리소에 찾아가 보고했던 것이다.

해당 부문의 감별, 연구를 거쳐 그 비석이 광서년간 훈춘의 첫 부도통으로 있었던 아극당아의 덕정비란 것으로 확인되였다.

비석은 화강암으로 되였는데 높이160센치메터, 너비 60센치메터, 두께가 45센치메터로 되였는데 기본상 완정하다. 비석을 발견한 현장에서 비좌(碑座)도 찾아냈다. “흠차(钦差),도호(都护)...광서6년” 등 432자의 비문이 또렷이 알려졌다. 1888년 동지달에 세운 것으로 씌여졌다.

훈춘시문사위원회 리수수주임에 따르면 이 비석는 훈춘의 백성들이 훈춘 첫 부도통으로 있은 아극당아가 훈춘에 취임해 있는 기간에 렴정위민한 공덕을 칭송하는 덕정비이며 각 민족 인민이 외래침략에 대항해 나선 진실한 력사와 근대 훈춘에만 특유한 동북변강문화특점도 반영해 주고 있다면서 이 비석은 력사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아극당아는 만족사람이다. 청조 광서 7년(1881년)에 훈춘에 부도통관공서를 세웠는데 아극당아가 첫 부토통으로 부임했었다. 외적을 물리치고 국가 주권과 령토완정을 수호하는 투쟁에서 탁월한 공적을 세워 아극당아는 ‘호장군(虎将军)’으로 추대되였었다. 사상 오대징, 아극당아, 리금용 3명 청조관원을 위해 세운 덕정비를 ‘훈춘3동비’라 하는데 아극당아 덕정비의 발견은 훈춘의 청조말기 력사를 연구하는데에 매우 진귀한 실증물로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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