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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51]선생님의 향기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1-06 14:51:10 ] 클릭: [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의 손 잡고 학교를 가는 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여있다 .

나는 이 모습을 넋없이 바라보며 잊을 수 없는 내 동년에 황홀한 꿈을 심어주었던 선생님의 향기를 찾아 행복했던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우리 집은 오빠와 언니 둘 그리고 남동생과 녀동생에 나까지 모두 여섯남매였다.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는 장기환자였고 아버지 한분의 로동력으로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였다. 어릴 때 나는 언니들이 물려주는 옷을 기워입었고 새옷은 언제 입어봤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해 돈화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령하 30도가 넘을 때가 많았다. 소학교는 마을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학 후 집으로 돌아갈 때면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에 어느새 눈섭은 할아버지 눈섭으로 되였고 입은 얼어서 말도 더듬거리며 잘하지 못하였다. 맞받아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뒤걸음치며 걷다가 넘어지기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한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귀가 얼어서 벌겋게 부었고 살짝 건드려도 떨어져나갈 것만 같이 꼬댕꼬댕해있었다. 어머니는 감짝 놀라시더니 터밭에 나가 눈속에서 가지대를 가져다 끓여서 그 물로 씻어주셨다.

소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우리 학급에는 김련숙선생님이 담임선생님으로 오셨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인자한 모습이여서 우리들은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급 학생들의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엷은 옷을 입고 항상 추위에 떨며 옹송그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난로 곁에 앉히였다.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만 같아 너무 행복했다.

어느 하루, 하학 후 집으로 오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오셨는지 나를 지켜보시던 선생님께서 “수건이 온기가 없겠구나, 춥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추워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주저없이 자신이 두르고 있던 토색 목도리를 나의 머리에 포근히 감싸주셨다. 그리고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추운 겨울이니 꽁꽁 잘 감싸고 다녀라. 잘 견디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금새 마음속에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이 물결치고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을 바라보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뜻한 향기를 선물하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사랑의 눈길, 사랑이 손길, 그 마음에서 뿜어져나오는 따뜻한 향기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다 몰아내고 나의 마음과 교실을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로 가득 채워 훈훈하였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사랑은 추위에 떨고 있는 가녀린 나에게, 가난하게 살아 주눅이 들어 움츠리고만 있던 나의 소심한 성격에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목표와 꿈이 있게 되였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여 꼭 선생님과 같은 향기 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소학교도 졸업 못한 애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나 나는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를 마음에 담고 열심히 공부하여 학기마다 우등생이 되였다. 초중도 4키로메터 되는 거리를 통학하면서 열심히 다녔다. 추위와 가난에 떨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는 언제나 나를 감싸주었고 그 향기는 그 어떤 어려운 상황도 극복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닥쳐오자 나의 꿈은 산산이 짓부셔졌다. 오빠, 언니처럼 대학에도 가고 담임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건만 모두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비록 나의 꿈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향기를 생각하면서 자녀들을 꼭 훌륭한 선생님으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살았는데 애들을 맡겨놓고 일할 생각으로 여섯살, 일곱살 된 두 딸을 일학년 한반에 입학시켰다. 학생이 모두 여덟명이였는데 선생님 한분이 어문, 수학, 한어를 모두 가르쳤다. 마을엔 소학교도 졸업 못하고 중퇴하는 애들이 많았다. 이곳에 계속 살다간 애들을 선생님으로 키우기는커녕 눈 뜬 장님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맨주먹으로 큰언니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도시에 와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나가고 저녁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일하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으로는 도저히 고급학년으로 진학하는 애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로씨야행을 택하였다. 시베리아의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와 생명의 위험까지 더불어 삶에 지쳐 살아갈 용기를 잃어갈 때 선생님께서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잘 견디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나의 귀전을 두드린다. 시베리아의 허허벌판에서 버려진 것 같은 나에게 선생님의 사랑의 따뜻한 향기는 내가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였고 인생의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데 등불이 되여 나의 갈길을 밝혀주었다.

삼년 반 동안 열심히 일하여 두 애의 학비를 모두 마련하였다.

큰딸은 공부를 잘하여 연변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통지서를 받아쥔 나의 눈은 어느새 기쁨의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아! 우리 딸도 이젠 선생님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김련숙선생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어른거린다. 큰딸도 나의 담임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엄마와도 같고 언니 누나와도 같은 자상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원했다. 작은애는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류학 가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두 자녀는 지금 각자의 일터에서 충실하게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추위에 떨고 있는 나를 감싸준 선생님의 따뜻한 향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던 나의 담임선생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손자손녀들에게 들려준다.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 그 향기는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에서 등불이 되여주었고 활력소가 되여주었으며 이순이 넘는 오늘까지도 나와 함께 동행한다.

생활고를 벗어난 나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듯. 학원 선생님은 자애로운 분으로서 학원생들에게 아낌없이 배려해주시고 알쏭달쏭하여 잘 깨닫지 못하여도 차근차근 가르쳐주신다.

김련숙선생님의 향기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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