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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85]“어찌보면 문화가 곧 돈이지요”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06 10:39:21 ] 클릭: [ ]

ㅡ백년부락의 주인 김경남 민속문화 전승에 혼신을 다하다

관광성수기가 지난 10월말,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도문시 월청진 백룡촌 백년부락은 쥐죽은듯 고요하다. 몇년전에 소문을 듣고 와보았던 그 집, 검은 기와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으면서 그 아래 백의민족 상징답게 흰 벽을 장식한 백년고택, 전형적인 조선족팔간기와집은 옛 모습 그대로 정갈하다.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조용하게 세상을 살아가던 백룡촌에 어느날 갑자기 조선족전통가옥을 일떠세우고 해내외에 이름난 관광명소를 만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백년부락의 주인 김경남(66세)이다.

■ 새 벽돌기와집 허물고 초가집 짓고… 전국력사문화명촌으로 되기까지

김경남이 중국조선족백년부락 건설이라는 ‘창업'에 몸을 담근 지도 어언 8년 세월이 흘렀다. 동생이 집을 허물어서 재목으로 쓰겠다고 산 백룡촌의 백년고택을 그저 허물어버리기엔 아까와 손을 대 수건을 한 것이 지금의 백년부락의 원형이다.

백년부락 민속박물관에 전시한 조선족력사 관련 민속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경남

“지금은 거의 집집마다 벽돌기와집이지만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농민들의 꿈은 초가집을 허물고 벽돌기와집을 덩실하게 지어놓고 사는 것이였지요. 헌데 저는 그와는 반대로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새 벽돌기와집을 두채나 사서 허물고 그 자리에다 초가집을 지었지요. 그때 사람들은 저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더군요. 다들 저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김경남은 백년부락 건설 초기의 그 때를 회억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집을 한채 두채씩 늘구어가다나니 이제는 28채가 되여 완연한 백년부락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들어간 개인돈은 300만원에 달한다.

“정부에서도 백년부락 조성에 아낌없는 방조와 지지를 주었습니다. 2년 사이에 540만원이 투입되였구요. 공정기계도 무상으로 동원되였지요.” 김경남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백년부락이 결코 오늘의 규모에 이르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백년부락은 지금 전국특색마을, 전국전통부락, 전국력사문화명촌 그리고 길림성 문물보호단위라는 굵직굵직한 명예를 지니고 있다.

■ “우리의 민속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백년부락에서 올해로 2회째 중국조선족전통씨름경기가 열렸다.

우리 민족 민속문화에 대한 김경남의 사랑은 지극하다. 백년부락에서 제일 큰 건물인 민속박물관에는 그가 짬짬이 한점 두점 수집해들인 민속유물 1,000여점이 수장되여있다. 조선족민속유물이 해외에 흘러나가 인터넷에서 경매되고 있다는 정보를 장악하고 안타깝게 여긴 그는 해외에까지 나가 고가로 물건을 사서 다시 ‘모셔' 오기도 했다.

“백년부락에서 민속박물관을 세워 조상들이 써오던 민속유물들을 전시해 후대들더러 흘러간 민족의 력사를 되새기고 민족의 넋을 지키게 하도록 하련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일전 한푼도 받지 않고 자기 집 대물림보배들을 서슴없이 내놓았습니다. 사람마다 민족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용약 나서는 바람에 제가 오히려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민속유물 수집에 나섰을 때의 잊을 수 없었던 감회를 터놓으면서 김경남은 조선족민속문화는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실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 백년부락의 만만찮은 유지보수비에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피땀으로 전통민속마을을 만들어놓으니 일이 그쯤해서 끝나는가 했더니 가는 길은 결코 순풍에 돛 단 격이 아니였다. 요즘 김경남은 해마다 늘어만 가는 만만찮은 유지보수비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푸술하다.

백년부락에서 펼져진 축제 한마당.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관광성수기 한철에 몰려드는 유람객들만 보고 저를 대부자처럼 여기지요. 실지 저의 속타는 마음과 어려운 사정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초가집들의 이영을 래년 봄에 당장 바꿔야 하는데 벼짚을 살 돈도 마련되여있지 않은 상황이라 답답하기만 한데도 말입니다. 정 안되면 비닐박막이라도 사다가 이영을 덮어놓던지... 보기 흉해도 별 수 없지요.”

백년부락은 초가집들이 많은지라 이영을 한번 바꾸자 해도 10만원이 들어간다. 그것도 연변에서는 수확기로 가을을 해 벼짚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멀리 흑룡강성 목단강지구에까지 가서 구입해와야만 한다. 전기료금도 일년에 4만원이나 나온다. 이렇게 한해에 들어가는 유지보수비만 20만원에 달해 관광성수기 한철에 오는 유람객들한테서 받는 입장료로는 태부족이다. 그래서 지금 김경남의 속은 바질바질 타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김경남은 백룡촌 빈곤호들을 위한 일에는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촌에 있는 빈곤호 12호에 3,000원짜리 땔나무 한차씩 사주어 겨울을 나게 하였다.

“백룡촌이 있어 백년부락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형편이 좋아질 때가 있겠지요. 그 때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많이 베풀고저 합니다.” 김경남의 순박하고 진정한 내심의 발로이다.

■ “관광객들에게 민속문화를 알리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민속문화의 소중함과 중요성에 대해 처음부터 깊이 깨달았던 건 아닙니다. 조선족전통마을을 꾸리는 과정에 관광객들의 치하와 정부의 중시와 지지를 받으면서 점차적으로 백년부락 자체가 문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지요. 어찌보면 문화가 곧 돈이지요.”

김경남:“어찌보면 문화가 곧 돈이지요.”

백년부락 민속박물관에 소장한 민속유물

김경남은 문화와 산업의 공생관계에 대해 제법 그럴듯하게 풀이했다. 실로 김경남은 농민이지만 농민이 아닌 문화인이였으며 론리사유에 밝은 ‘철학가’였다.

올해에도 백년부락을 찾은 관광객이 수만명에 달했다. 김경남은 관광객들이 조선족전통가옥을 둘러보고 조선족전통음식을 맛보고 조선족전통민속유물들을 참관하면서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때, 그 때가 제일 기쁘더라고 말한다.

“여름철 관광성수기에 젊은 대학생 녀자애들이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달려와서 조선족치마저고리부터 대여해 찾아입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저희들끼리 좋아서 깔깔 웃을 때면 저도 따라서 젊어진 듯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경남의 주름진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피여있었다.

백년부락의 주인 김경남, 그가 가는 길이 비록 가끔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 길은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가는 길이기에 기필코 휘황찬란할 것이다.

/길림신문 리철수 김성걸 리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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