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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송1]장가계의 하늘을 떠인 건곤주와 조선족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2-06 11:02:02 ] 클릭: [ ]

머리글

장가계는 1994년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고장이였다. 장가계림장, 장가계농업합작사로 시작된 장가계 명칭이 세상에 차츰 알려진 것은 1982년에 설립된 장가계국가삼림공원에서 비롯된다. 조물주가 신 들린 도끼로 정교하게 깎아 다듬어놓은 건곤주(乾坤柱)와 그림 같은 계곡과 웅위로운 산봉우리들은 계림의 산수를 뒤로 밀어놓고 관광객들의 발목을 꼭 잡았던 것이다. 대용시가 1994년에 국무원의 비준으로 장가계시로 개명된 후 관광흥시전략으로 천문산풍경구, 무릉원풍경구를 집중적으로 건설하면서 해내외에 관광도시의 미명을 널리 떨치게 되였다. 하지만 산간오지에 자리잡은 장가계는 불편한 교통수단과 류숙장소 등 여러 인프라의 부족으로 쾌속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1998년 이후에야 점차 해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시작하였으나 계림에서 13시간을 기차로 이동해야 하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건곤주

하지만 장가계는 가렬처절한 해방전쟁이 한창이던 1949년 10월에 벌써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당시 조선족 전사들이 위주인 47군 139사와 141사가 대용현성을 해방하였던 것이다. 그 전투에서 416퇀의 전투영웅 리두섭을 비롯한 수많은 렬사들이 희생되였다. 당시 21살난 리두섭은 아직도 장가계렬사릉원 17렬사묘지에 묻혀있다.

북산에 자리잡은 장가계시렬사릉원

그 후로부터 정확히 49년이 지난 1998년, 장가계를 찾는 조선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해외관광객들에게 장가계라는 곳에 비하면 계림의 산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소개한 조선족 가이드들이다. 장가계시 영정구 부구장 류해림(张家界市永定区副区长刘海林)은 이들에 대해 “장가계를 찾는 관광객의 10분의 1은 한국 관광객들이다. 그들을 이름도 없던 장가계를 찾아오게 만든 사람은 바로 조선족들이다.”고 말하면서 이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엄지를 내든다. 장가계시 무릉원구관광국 시장개발판공실 부주임 장홍도(张洪涛)는 “내가 2004년도에 훈춘시텔레비죤방송국에서 장가계텔레비죤방송국으로 올 때 벌써 조선족 가이드들이 장가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오늘날 장가계가 전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게 된 데는 조선족들의 공로가 절반이상이다.”고 높이 치하한다.

《호남일보》에 따르면 올해 호남성 관광수입은 8000억원, 그중 장가계시의 관광수입이 800억원을 차지한다. 거기의 상당부분은 바로 조선족 려행사와 가이드를 통해 올린 수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무 속에 잠긴 장가계시 영정구 남장평 일대

20여년이 지난 현재, 장가계에는 조선족들이 경영하는 려행사(대리점) 38개, 각종 음식점 60여개, 쇼핑점 20여개가 있는데 이는 장가계관광산업벨트의 중요한 부분으로 되고 있다. 거기에 장기간 장가계에서 생활하면서 당지인들과 가정을 이루고 호적도 장가계에 옮긴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투쟈족을 위수로 바이족, 묘족 등 77% 이상의 인구가 소수민족인 이 땅에 조선족이라는 또 하나의 생소한 소수민족이 주인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전기인물들을 찾아 그들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타산을 들어보았다.

오늘부터 <장가계송>으로 제목하고 견문을 펼쳐보인다.

—편집자로부터

[장가계송1]관광단체 대표음식점 ‘삼천리’

장가계시 영정구 남장평의 대용로와 영강로가 교차하는 3거리 동남쪽 언덕에는 투쟈족의 전통건축과 력사문화를 료해할 수 있게 만든 투쟈풍정원인 토사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매일 수백대의 관광뻐스가 다녀갈 정도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장가계 101만명 투쟈족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관광명소의 바로 맞은켠에 붉은색 조선글로 씌여진 ‘삼천리한국료리’ 간판이 유표하게 안겨온다.

“2003년에 개업하여 오늘까지 15년간 이 식당을 견지해오고 있습니다.” 도문 태생인 신선옥(53세) 사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신선옥사장

하늘길로 3000키로메터, 기차길로 4500키로메터 떨어진 이곳에 식당을 개업하기까지 신선옥 사장의 인생경력도 3천리는 실히 될 것 같았다. 신선옥은 도문, 룡정 등지에서 보따리장사, 과일장사를 하다가 남편과 함께 길림, 북경 등지를 전전하면서 식당을 경영하고 또 2002년에는 계림에 진출하여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식당을 경영하던 중, 장가계를 다녀간 남편의 친구들로부터 장가계의 발전전망이 계림보다 밝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지금 이 식당 자리는 말 그대로 논이였지요. 그시절 리수 남쪽에는 거의 인가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투쟈풍정원을 가리키면서 “저 토사성도 2009년인가 건설했으니 그 때는 이곳이 그냥 둔덕이였지요.”라고 말한다.

새로 지은 건물이였지만 집값은 평방메터당 3000원 좌우, 그 때 600평방메터의 식당건물을 샀더라면 지금 쯤 돈낟가리에 앉았을 거라면서 그녀는 그사이 집값이 거의 10배는 뛰여올랐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장가계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이 살림집 가격이 평방메터당 1500원씩 하던 그 때에 집을 많이 장만하였다.

개업 초기 식당 내부를 정리할 할 때부터 신선옥을 따라 함께 일한 라쌍전(罗双全 녀, 투쟈족, 1983년생)씨는 “우리 사장님, 참 좋아요. 편하게 일을 시켜요.”라고 하면서 한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기 때문에 이 식당 복무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함께 일해온 친구들이라고 소개한다. 31세인 풍견(冯娟)씨도 초중을 졸업하고 이 식당에 와서 일하였는데 그는 이곳에서 시집을 갔고 아들까지 낳았으며 아들은 이미 9살이라고 소개한다.

단체손님만 받는 ‘삼천리한국료리’는 기타 영업집에 비해 일이 단순하다. 하지만 복무원은 더 바쁘다. 음식상은 많지만 식사 위주이기에 절주가 빨라 다른 손님이 오기 전에 상을 거두고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많을 때에는 하루에 뻐스 100대가 저희 식당을 다녀갑니다.” 설걷이가 끝날 새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바삐 돌아치다나면 복무원들은 해나른해진다. 하지만 다른 식당에 비해 출근시간이 비교적 짧고 살뜰한 사장이 자기들의 마음을 알아주기에 거기서 힘을 얻는다고들 말한다.

한국 온성에서 온 관광객 정모씨(76세)는 아침식사를 하고 국가삼림공원으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중국에 와서 상해, 중경 등지를 거치다나니 민족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가 이날 이 식당에서 된장국과 김치를 먹고 군을 뗐다고 엄지를 내들었다.

신선옥 사장은 일반적으로 관광단체의 식사는 일인당 20원 표준 밖에 안되기에 리윤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지난해 같은 경우는 매일 뻐스가 5-6대 밖에 없다 나니 매달 10만원씩 밑졌지요. 복무원들 로임과 집세도 못 벌었으니… ” 힘들었던 그 때를 회억하면서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장가계는 결코 노다지판만은 아니였던 것이다.

운무 속에 잠긴 투쟈풍정원. 바로 맞은켠에 ‘삼천리한국료리’가 있다.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법이고 또 꾸준한 분투 가운데서 기회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신선옥 사장은 장가계에 와서 ‘아리랑’식당도 해보고 ‘불고기집’도 경영해봤는데 그래도 관광객들만을 위한 단체음식을 하는 것이 모험도 크지 않고 편안하다고 판단한다.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 그는 단순히 따분한 단체음식만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메뉴를 가진 불고기집을 경영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제 5년, 10년이 지나면 장가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요. 고속철이 들어오고 국내관광객이 많이 밀려올 때를 념두에 두고 열심히 음식업을 해보고 싶다.”고 미래를 구상해보았다.

안도 태생인 만중려행사의 가이드 김운하(41세)씨는 관광단체 음식을 하는 식당이 여럿이 있지만 가격이 합당하고 환경이 깔끔하고 복무태도가 좋은 이곳을 많이 리용한다고 하면서 신사장과는 언니동생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이며 고향을 멀리 떠난 이곳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하였다.

장가계조선족부모회에 가면 벽에 <장가계송>이 적혀있는데 한구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자랑스런 우리 민족 슬기로운 남녀들아 / 거둔 성적 만족 말고 / 형제민족 단결하고 / 이 나라에 감사하며 / 닫는 말에 채찍질해 / 무릉도원 장가계서 / 더 큰 꿈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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