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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림동, 재한 조선족 26년 애환 모두 담았구려

편집/기자: [ 김가혜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1-29 19:25:24 ] 클릭: [ ]

- 한국 속 조선족 삶의 터전, 대림동에 가보다

대림중앙시장의 한 일경.

#‘한국 속 작은 중국’ 대림.. 중국어가 더 편한 곳

길거리에서나 시장에서나... 한국말보다는 중국말이 더 잘 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말을 할 줄 몰라도 일생활이 가능하다. 정겨운 우리 고향 연변말투가 구수하게 들려오는 곳 - 바로 ‘한국 속 작은 중국’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이다.

실제로 지하철 대림역 10번 출구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중국어 간판으로 된 상가는 물론 연변 각 지역 이름을 내세운 음식점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 출구에서 좀더 앞으로 인행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중국말도 꽤 잦게 들려온다. 이어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골목으로 굽어 들어가면 대동초등학교와 다사랑어린이공원이 골목길을 사이두고 나란히 보인다.

재학생 대부분이 중국조선족 학생인 서울대동초등학교.

이 서울 대동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문화학교로 유명하다. 실제로 전교 435명 재학생중 318명이 다문화학생이다. 그중 거의 대부분인 71.5%가 조선족학생이고 303명 학생의 부모가 중국국적이다. 대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63명중 43명이 조선족어린이다. 중국조선족 어린이 비률이 73%에 달한다.

대동초등학교 아이들이 뛰노는 랑랑한 소리와 함께 정겨운 고향 연변말투와 중국어가 섞여서 들려오는 곳은 학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다사랑어린이공원이다. 대림 거주 중국인들의 쉼터이자 각종 행사와 활동이 활발히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집생각 많이 나시죠?" "나다 말구요."

취재 차 공원을 찾았을 때 연길에서 왔다는 말에 같은 연길출신이라며 두 손 꼭 잡아주며 반겨주던 임춘자(60세) 아주머니. 타향에서 친인을 만나기라도 한듯 덥적 손잡아주던 그 따뜻한 손길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에 들어와 어언 16년, 잘 살아보려는 꿈을 안고 집을 떠나 로무를 나온지 벌써 십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 그날 공원에서 만났던 임아주머니와 같은 해에 한국에 왔다는 안선자 아주머니(60세), 장춘에서 왔다는 서아주머니(53세), 아들 내외가 한국에 정착하다 보니 5개월 손자를 봐주러 심양에서 왔다는 장아주머니(59세)... 다사랑어린이공원은 타지에서의 힘듦을 서로 나누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작은 ‘소통의 장’이였다.

이어 공원을 지나 그 길을 따라 좀 더 가면 인츰 대림중앙시장이 보인다.

"중국 손님들 덕에 먹고 살아가는 거죠. 더불어 살아가고 있어요." 손님에게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한국가게 사장.

“우리 가게 고객 80~90%가 중국 손님이죠. 저희는 이젠 상생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어요. 덕분에 저희도 밥 먹고 사는거죠.” 팔고 있는 상품중에 짝태와 같은 연변상품이 많길래 조선족이 하고 있는 상가인 줄 알았는데 한국상인이 하고 있는 가게였다.

대림중앙시장에 들어서면 연길서시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여서 류달리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판매되고 있는 상품 대다수가 중국상품과 중국 각 지역 특산품이였다.

대림중앙시장의 한 양꼬치가게가 떠우인으로 가게 홍보를 하고 있다.

대림중앙시장에서는 한족말로 씌여있는 간판을 따라 음식점에 들어가면 한국말보다는 한족말로 음식 주문이 훨씬 더 편하다. 소통도 더 쉽다.

지어 요즘 중국에서 한창 뜨고 있는 떠우인(抖音)으로 가게를 홍보하며 장사를 하는 양꼬치집도 찾아볼 수 있어 신선감을 주기도 하였다.

# 대림동 전에 가리봉동 있었다

사실 최초의 ‘한국 속 작은 중국’이 대림동이였던 것은 아니다.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일자리를 찾아 넘어온 조선족들이 제일 처음 머문 곳은 구로구 가리봉동이였다.

일자리가 많았던 구로공단과 가깝고,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지하철 1·2호선이 지나고, 안산 등 경기 서남부 쪽과 서울 강남으로의 교통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생활 24년 차이자 재한동포총련합회를 설립하여 12년째 재한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김숙자 회장은 “가리봉동은 조선족들의 희로애락이 슴배여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 가리봉동 일대가 재개발지로 지정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벌집촌’도 재개발이 추진됐다. 이후 가리봉동에 거주하던 중국조선족 상당수가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인 대림동으로 하나둘씩 옮겨갔고 2005년부터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대림2동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만 3398명, 가리봉동은 9045명으로 나타났다.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해 있는 가리봉시장과 련결된 올리막길 주택단지를 가로지나 올라가면 벽면에 가리봉동에 관한 이 같은 간단한 력사를 적은 조형물이 있다.

# 대림동에서 자양동으로, 양꼬치에서 마라탕으로

인천의 차이나타운, 구로구의 가리봉동, 영등포구의 대림동에 이어 광진구도 2011년 건대입구 주변을 특화거리인 ‘중국문화음식의 거리’로 지정했다. 이 거리는 통상 ‘양꼬치거리’로 불린다.

2년 사이 급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거리.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관광지 느낌이였다면 가리봉동과 대림동은 중국인 집거지에 가까웠고, 근 2년 사이 급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광진구 자양동은 ‘먹자골목’ 분위기를 띠였다.

광진구 양꼬치거리로 지정된 골목에는 실제로 한집 건너 양꼬치가게라 해도 무방했고 더불어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 맛류행을 타고 있는 ‘마라탕’과 ‘마라썅궈’ 상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건대입구 근처에서는 이러한 마라탕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요즘 마라탕이 인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마라탕은 또 어떤 다른 맛일가 하는 기대를 안고 가리봉동과 대림동에서 각각 먹어보았다. 생각 밖으로 연변의 마라탕과 똑같은 맛을 내고 있었다.

대림동에서 2년째 마라탕집을 한다고 밝힌 장씨 성을 쓰던 가게주인(연길 출신)은 “체인점이다보니 마라탕에 쓰이고 있는 양념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고 했다.

가리봉동 지하철 입구에 있던 마라탕집 가게주인 역시 연길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사람들이 요즘 마라탕을 찾는 원인으로 “한국 예능프로에 마라탕과 마라썅궈 소개가 많아지면서 손님들도 따라서 많이들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양동 한 음식점에서 내건 직원모집 광고.

반면 광진구 자양동의 주요 고객은 대림동과 달리 한국인이 많다. 2001년부터 자양동에서 양꼬치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길자(47)씨는 “처음에는 거리가 어수선하고 식료품점 2곳 뿐이였지만 3~4년 전부터 양꼬치, 마라탕 등 중국 음식점으로 거리가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 미디어가 조장하는 ‘편견’, 가로막힌 '소통'..‘대화가 필요해'

“대림동에 제일 처음 조선족이 오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림동에서 26년간 사진관을 운영해왔다는 김사장(59세).

사진관 절대 대부분 고객이 중국사람이라고 말한 김사장은 대림동 조선족들의 각기 다른 희로애락을 담은 ‘기록자’인 셈이다. 한국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손님이 와서 난감할 때도 있었고, 한국말과 중국말의 억양차이 때문에 싸우는 줄 착각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가리봉동에서든 대림동에서든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의사소통’문제였다. 쓰레기 투하 문제, 교통질서 문제, 흡연 등 생활상 문제로 인한 습관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에 맞닥뜨리면 의사소통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거기에 자극적인 영화나 언론보도가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틀린 건 틀렸다고 하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각색하거나 과대포장은 하지 말아주세요.”

재한동포총련합회 김숙자 회장은 지난해 <<청년경찰>> 상영 당시 “조선족을 범죄집단으로 묘사했다”며 제작사를 항의 방문하기도 하였다.

가리봉동, 대림동의 어제와 오늘 나아가 상생의 래일을 말하고 있는 재한동포총련합회 김숙자 회장.

더불어 김회장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으려면 나도 변해야 한다"고 전하면서 평소 주기적으로 학습반을 조직하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실천해나가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부단히 모색하고 있었다.

일부 한국영화에서 대림동은 음침하고 무서운 곳으로, 조선족은 주로 ‘험악한 범죄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한국내 거주 외국인 범죄률이 한국인의 절반에 그친다. 김숙자 회장도 “수십년 전에 발생한 사건의 기억 때문에 편견이 고착화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미디어 속 편견이 란무하는 대림동, 그러나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일주일간 기자가 직접 둘러본 대림동을 비롯한 가리봉동, 자양동은 그와 달리 우리 부모세대와 조선족들의 꿈과 희로애락이 살아숨쉬는 생생한 ‘삶의 터전’이였다.

대림중앙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국식품.

인천 차이나타운 일경.

/길림신문 김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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