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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연변추억13]아쉬움을 기억하는 아름다운 추억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22 13:30:17 ] 클릭: [ ]

<일본인의 연변추억> 을 마치면서

연변에서 생활하던 당시 오오무라 아키코녀사

<일본인의 연변추억>시리즈의 마지막 원고를 보낸후 하루만에 아쉬움이 듬뿍 담긴 편집선생님의 련락 메세지가 들어 왔다.

“아키코녀사의 <연변추억> 참 아쉽네요. 곧 마무리 된다는 느낌, 아직도 많은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는 느낌이여서 말입니다. 그러나 리선생님도 그동안 참으로 어려운 작업을 해오셨고 그러한 수고가 있었기에 이제 마무리되는 마당에서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말이지만 그동안 아키코녀사의 글과 사진들을 접하면서 행복한 향수에 잠겼던것만은 사실입니다. 다음은 어떤 내용일가? 어떤 사진들이 보여질가? 그런 기다림과 은근한 기대는 행복이였던것 같습니다. 특히 아키코 녀사의 마지막 부분의 원고에서 ‘오늘날,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주저없이, 일찍 침략을 받았던 나라로부터 배우려는 그 자세에는 머리가 숙여 집니다. 나는 자신을 포함한 일본인들의 마음의 황페함이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나자신은 살아 갈 지주를 잃어 가기 시작하지만 일본생활수준보다 20년쯤 뒤떨어진듯한 중국민중의 생활을 생각할때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이 부분이 우리들에게 울려주는 감동은 매우 큽니다. 과거를 돌아보게는 했되 우리도 어쩔수 없이 순박하고 진지했던 과거에서 멀리 떠나와 있고 지나친 과욕과 물질만족으로 자아를 잃은지 오랜 현실의 풍토를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 없습니다...”

물론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이번에도 작업을 해왔다는 느낌이다. 항상 그러하듯이, 허나 조금은 다른 듯한 흥분이 전해 오는 메세지였다.

근 넉달동안의 시간을 들여 이어 온 오오무라 아키코 (大村秋子) 녀사님의 <연변추억>은 아쉬움을 남긴채 드디어 마무리짓게 되였다.

본사 일본특파원 리홍매씨에게 연변추억을 들려주는 오오무라 아키코(왼쪽)녀사 

머리속에 담아 두었던 30여년전의 연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다시 보는 행운을 받은 필자는 한장, 두장 앨범을 번지는 과정에 그 사진들의 무게와 가치를 느끼게 되였으며 그 행운을 독차지해서는 안될것 같은 책임감을 가지게 되였다. 아키코녀사에게 “제2의 고향”으로 자리잡은 연변이 부모님의 고향이고 나(우리)의 고향이며 내 자식의 고향임을 되새겨 주고 확인시켜는 순간,순간들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검소한 모습의 오오무라 마스오교수님 내외이시기에  1985년 처음으로 연변땅을 밟았던 당시에는 가정용카메라를 소지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이번 <연변추억>에 선보인 사진들 대부분은 아키코녀사가 천엔(60원정도)좌우의 일회용사진기로 찍은 기록들이다. 일본의 명문대교수댁에서 두번째로 되는 연변방문시에야 카메라를 사게 되였다면 누가 믿으랴. 하지만 그 검소한 모습은 오늘에도 변함없이 이어 지고 있다.

올해 80세 고령인 녀사님을 찾아 뵐 때마다 더는 이 분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군 하였지만 사진앨범을 보면서 느끼는 충동과 “이제 한번쯤은 더 할수 있어..”라고 번마다 해 주시는 그 후한 말씀때문에 다섯회를 목표로 시작했던 <연변추억>시리즈를 그 배 이상으로 끌고 오게 되였다.

두 내외분의 “연변”에 대한, “조선족”에 대한 애정의 비중을 매일매일 알아 가고 기록하는 작업은 더없이 행복했고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하다. 아키코녀사님과 함께 그분의 지난 한동안의 인생을 뒤돌아 보면서 웃고 울고 나누었던 시간, 그리고 번마다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아주 가끔씩 하시는 한마디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던 오오무라 마스오교수님께도 내심 진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공감해온 독자들에게 ‘꾸벅’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동안 글이 나갈때마다 명심해서 읽어보고 댓글로 나름대로의 소감을 보내준 독자들의 소중한 메세지가 아키코녀사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라고 감지하면서 그 일부를 공개하여 공유해본다.

★읽으면서 괜히 울컥하네요..일본인들도 정겹다고 느끼는 고향을 지금은 갈때마다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으니..마음가짐 바꿔야 겟네요..

★86-89년도에 엄마가 연길서시장에서 장사를 했었어요. 저희들은 흑룡강에 있었고 ~ 88년도 처음 연길 엄마한테로 놀러 갔을때 우리 글로 된 거리의 간판들이랑 서시장안에서 파는 우리 조선족 음식들 순대랑, 떡들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습니다. 연길공원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찍었던 사진 아직도 간직하고 있구요~~ 리유없이 정이 가던 곳~~ 연길이였습니다.

★지난 주 동경대 집중강의에서 재일코리안 연구자 伊地知紀子 선생님의 수업을 이수 했습니다. 제주 조선인의 이주사, 제주 해녀들의 出稼ぎ 이야기, 그리고 제주4.3항쟁에 대한 력사를 들으며 수많은 과거가 조선족의 력사와 교차되여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비록 지나간 과거였지만, 내심 기쁘고 위안으로 느껴졌던 건, 일본인 지식인과 재일동포 당사자들의 민중의 력사를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려는 집요한 문제의식과 실천이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제반 조선족사회는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의 화자는 일본 조선문학 연구계 거장인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연변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발굴하신 장본인으로 잘 알려져있는) 부인이신 오오무라 아키코 녀사(재일동포2세)입니다. 다년간의 헌신적인 취재로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 조선족 사회의 과거를 복원하고 기록하는데 앞장서시는 리기자님의 로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번째사진 북치는 할아버지 면목있습니다. 소학교 중학교때 명절이 되면 엄마같이 공원으로 잘 갔는데 어김없이 사진에 있는 할아버지들이 퉁소불고 북치고 할머니들이 한복차림에 춤을 추고 그랬습니다. 저 북치는 할아버지 재간이 어찌나 좋은지 다리우에 북을 올려놓고 한참 성수나게 치다가 다리를 척 쳐들고 그 밑으로 반대면의 북을 치기도 하고 또 북을 180도씩 휙휙 돌리면서 치기도 했어요. 어찌나 성수나게 치시는지 매번 넋을 잃고 보던 기억이 나요. 한 30,40년전의 일이니까 저 할아버지들 이미 돌아가셨겠죠? 그리운 추억들입니다.

★当時はその傾向強かったのでは? 90年代初期,私が市場で野菜買っていると若い奥さんがたに変な目付きで見られたりしたのを今なお覚えています。(당시에는 그런 경향이 강했죠?! 90년대초 연변에 있을때 내가 시장에서 채소를 사군하면 젊은 녀성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군 했는데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맞아,우리 조선족 녀성들은 더더욱 절반 하늘을 받친다. 순진함이 좋았어~시대는 발전했어두 순진함이 사라져가는 지금은?? 여기 사진보니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구 그때가 좋았던것 같네

★아키코 사모님은 대상과 현상을 보는 립각점이 신선해서 문장자체가 흥미를 끕니다. “대부분 남성들은 춤추는 녀성들과 좀 떨어진 나무그늘 밑에 빙 둘러앉아 심드렁하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주 가끔 북을 두드리면서 녀성들의 춤행렬로 다가오는 남성들도 있었다...(중략)...그들은 사회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집에서 있었던 남편과의 갈등도 다 잊은듯 지칠 줄을 모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의 그 에네르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가…” 이런 문구는 베테랑 인류문화학자의 에스노그라피 기술을 읽는 듯한 느낌. 행동관찰력과 서술능력이 대단하신 분이네요... 제 또래의 친구들한테 특히 이 시리즈가 인기 많아서 저도 기쁩니다! 재일 동포로 살아오신 혹은 그러한 出自를 가신 한 인격체가 녀성으로, 한 일본인의 아내로 살아왔던 고민의 흔적이나 뭔가 새로운 자각이 문장 곳곳에서 재밌는 어휘로 표현되네요. さて、녀성은 하늘의 절반을 받친다”의 주인공, 그 긍지를 연변의 녀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는 걸가… 이러한 당시의 문제제기에 현재는 어떠한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 지 저도 궁금하다는 …

★조선족녀성들의 강직함과 부지런하고 선량함은 어느 민족도 따르지 못할것 같아요. 그것이 아끼코 사모님의 그 당시의 사진으로 뚜렷하게 표현해주니 한결 느끼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1985년도 연대정문! 신입생들 거의 모두가 기념사진을 찍었던 곳. 감개무량하네!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연대마을>을 생동한 글과 사진으로 보여줘서 감사해요. 학생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예요 .

★용기가 필요한 일본인의 한마디 ”이게 무슨 꼴입니까! 짐승입니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진실한 이야기에 소박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그때 우리도 저랬겠지 싶습니다. 우린 그때 군대옷에 하얀 목수건 하구 다녔짐

★ 이 글을 통해 90년대는 장백현의 록강소학교와 장백2중에 조선족 선생님과 학생수가 꽤 많다고 생각되지만 현재는 많이 줄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 매번 옛 사진 볼 때마다 저 사진속 주인도 이 글을 보았으면 한다. ㅎㅎ 마음이 어떨가?

★ 사모님 참 대단한 분이야. 27년전의 장백 2중의 학생수, 교직원수, 녀교원수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니...참 머리가 숙여지네 ...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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