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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연변추억12]아키코녀사가 쓴 "중국동북에서 날아온 편지"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17 10:05:29 ] 클릭: [ ]

일본인 아키코녀사의 연변추억12

아키코씨가 썼던 편지내용

연변에서의 1년간의 생활을 거의 마무리 지을 무렵, 일본에 있는 화가 은사님께 보냈던 오오무라 아키코녀사의 편지를 그대로 번역해 보았다. 아키코녀사가 썩 후에 안 일이지만 이 편지는 일본의 어느 소형간행물에 발표되기도 했다.

편지에서 우리는 80년대 연변, 나아가 당시 중국의 사회생활모습의 짙은 향수를 느낄수 있을뿐만아니라 순박하고 진지한 중국인민에 대한 한 외국인의 뜨거운 우정과 사랑, 그리고 생활에 대한 진한 열정도 느껴볼수 있다.

-편집자

중국동북에서 날아 온 편지

선생님을 비롯한 가족내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10월초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한동안 쉬였다가는 또 내리곤 합니다. 포실포실한 이곳의 눈은 령하 25도의 추위와 더불어 땅땅하게 얼어 버립니다. 도로도, 가로수도 하늘조차도 얼음같아서 마치 동화책속의 얼음나라를 방불케 합니다.

이번 겨울을 무사히 지낼수 있을가, 고민할 정도로 추운 겨울입니다. 거리를 달리는 마차의 말이 내뿜는 흰 입김이 긴 눈초리끝에 수정같은 고드름을 만들어 버립니다. 소수레를 끄는 소가 흘리는 침도 고드름으로 드리웁니다. 빨간 목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입도 막고 눈만 내놓고 걷는 나의 눈초리도 새하얗게 얼어서 눈깜박임도 마음대로 할수 없습니다. 양털을 뒤집어서 만든 가죽수갑을 끼고 있지만 울고 싶을 정도로 손끝은 시립니다. 시장까지 왕복 40분정도 걷고나면 아래몸은 얼음처럼 굳어져서 신경이 없어지는것처럼 느껴지군 합니다.

오늘은 2월 7일, 음력설 이틀전인 그믐날입니다. 시장에는 벌거숭이 돼지(고기)가 여기저기 짚으로 만든 대자리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통닭구이, 떡, 락화생, 대추, 떵떵 언 감, 새까만 언배, 민물고기 등등 식재료들이 곤색솜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앉은 앞자리에 알룩달룩 배렬되여 있습니다. 시금치, 파, 양파, 당근, 감자, 등 야채는 바깥공기와 접하면 인차 얼어버리기에 색바랜 이불에 조심스레 둘러 싸여 리어카에 보관되여 있습니다. 재미있죠?! 보기만 해도 정말로 즐겁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속에서 며칠동안 씻지 않은 듯한 얼굴에 웃음을 띄운채 큰 돼지고기덩어리를 끈으로 동여 허리에 차고 펄떡거리는 산 닭, 과일, 떡, 부추 등 설음식재료들을 두팔로 가득 안고 절룩이며 걸어 가는 로인을 발견하고 그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소, 돼지고기가 최고음식인 이곳에는 채식가인 남편의 식재료는 적은 편입니다. 오늘도 털게 한마리를 샀습니다. 일본엔으로 300엔입니다. 소고기 돼지고기로 치면 1키로 값입니다. 너무 기쁩니다. 우리도 이렇게 이곳에서 설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이제 두달반쯤 지나면 귀국하게 됩니다. 여기 연길시에도 중국의 새로운 정책이 실시되고 있고 사람들도 생기로 넘치고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상상할때보다 훨씬 막막한 점도 있습니다.

구만주 식민지시대에 항일을 웨치며 일본감옥에서 옥사한 조선족의 시인의 고향을 찾고 인간해방의 봉화를 든 지난 력사를 조사하는 남편의 작업을 도우면서 나는 인간이 너무나 슬퍼짐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아키코씨의 사진기 렌즈에 기록된 그때 그시절의 사람들

이 나라사람들의 따뜻함과 자애로움을 생각할때마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악행은 용서할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이 나라의 민중처럼 고난의 길을 걸어 온 민중은 적지 않을가요?! 침략받은 고통을 뼈속에 스밀정도로 알고 있기에 뒤떨어진 자국의 경제와 생활의 어려움에 견딜수 있게 되고 윁남이거나 기타 약소한 민족을 도와 피를 흘릴수 있게 되겠지요.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애로움을 이곳의 민중들속에서 보았습니다.

오늘날,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주저없이, 일찍 침략을 받았던 나라로부터 배우려는 그 자세에는 머리가 숙여 집니다. 나는 자신을 포함한 일본인들의 마음의 황페함이 슬프기 그지 없습니다. 나자신은 살아 갈 지주를 잃어 가기 시작하지만 일본생활수준보다 20년쯤 뒤떨어진듯한 중국민중의 생활을 생각할때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나에게 이 1년간은 력사를 뒤돌아 보는 나날들이였습니다.

선생님, 여기 연길의 농촌 풍경은 한없이 맑은 넓은 하늘과 그 하늘을 질러 가듯 일적선으로 뻗은 백양나무들이 줄을 지은, 사람도, 말도, 소도, 돼지도, 닭도 모두가 하나에 둘러싸여 있는 포근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장도 그리지 못했습니다…

3월 중순이면 연길을 떠나 각지의 대학숙소들에 들리고 도서관에 들리기도 하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보내고 나서 4월이면 상해로부터 배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1년만에 뵙게 될 그날이 기다려 집니다. 추운 계절에 건강에 류의하시기 바랍니다.

1986년 2월 7일

길림성 연길시 연변대학 숙소에서

오오무라 아키코 드림

“일본에서 상상할때보다 훨씬 막막한 점”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행복”으로 느꼈다는 아키코녀사가 그런 행복속에서 “아직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장도 그리지 못했습니다…”라고 썼을때의 방황과 갈등… 조선족에 대한 국한된 범위가 아닌, ‘사람’에 대한 아키코녀사의 애정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일본에서의 첫 중국조선족단편소설집 <시카고 복만이>의 표지그림

1989년 남편인 오오무라 마스오교수가 일본에서의 첫 중국조선족단편소설집 <시카고 복만이>를 번역출판하게 되였다. 그 책의 표지그림을 맡았던 아키코녀사는 그때에야 비로소 마음속의 연변을 그리게 되였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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