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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78]가는 길 험난해도 인력거 때밀이로 29년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5-16 09:04:14 ] 클릭: [ ]

ㅡ룡정온천사우나의 ‘때밀이박사’ 김철수도 아빠트 두채에 자가용 갖춘 부자

지금은 목용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사람들중 조선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밀이를 ‘천’한 일로 여기기때문이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17년 째 해오고 있는 한 60대 조선족이 있다. 그가 바로 룡정온천사우나의 ‘때밀이박사’로 통하는 김철수씨(62세)다.

17년 째 때밀이를 해오고 있는 김철수씨

인생의 가시밭길을 헤치며

“17년째 때밀이를 해오고 있습니다. 남들은 이 일이 하찮다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로동에 무슨 귀천이 있겠습니까? 하는 일이 각자 다를 뿐이지이요!”

‘때밀이박사’길철수씨의 고향은 화룡의 한 농촌이다. 농촌에서 호도거리가 금방 시작되였을 무렵 한창 젊었던 그는 여느 누구처럼 어떻게 하면 잘살아보겠는가고 앉으나서나 궁리를 한다. 도급맡은 땅이라야 얼마 안되고 거기에 량곡 가격까지 싼 세월이였으니 일년 365일 헤매봤자 남는 것이란 별로 없었다. 오직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한가닥의 희망을 안고 이곳저곳 연변의 다른 농촌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땅에 얼굴을 박고 발버둥쳐봤지만 가난은 그의 목을 꽉 조인 채 좀체로 놓아줄 념을 하지 않았다.

“이 무렵에 안해가 몹쓸 병에 걸렸지요. 가난에 지칠대로 지쳐서 시름시름 앓던 안해가 어느날 갑자기 정신질환에 걸린거지요.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였지요. 생각다 못해 어린 두 아들과 안해를 먹여살리기 위해 저는 시내에 들어가 막벌이를 시작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김철수는 어린 두 아들과 정신질환에 걸린 안해를 거느리고 무작정 룡정 시가지로 들어왔다. 시내라고 입만 벌리면 고기반찬이 허망 들어온다는 법은 결코 없다. 어린 새끼들이 두 눈이 초롱초롱해서 입을 딱 벌리고 먹을 것만 기다린다. 병든 안해에게 약을 사먹여야 한다. 당장 일을 찾아 나서야 했다. 허나 한생을 땅만 뚜져오던 그에게 무슨 다른 재간이 있겠는가.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인력거를 모는 일이였다.

“처음엔 일단 한번 해본다고 시작했는데 글쎄 꼬박 십년을 넘길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에게도 한 때는 젊음의 꿈이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참말로, 허 허 허!”

인력거를 몰아봤지만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학교에서 돈을 거둘 때면 막막하기만 했다. 후줄근한 호주머니에 거의 찢어질 정도로 허름한 일원짜리 달랑 몇장밖에 없는 그로서는 어쩌는수가 없었고 그럴 때면 마음은 찢어지는듯이 아파났다. 그래서 김철수는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찌물쿠는 삼복철이나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엄동설한에도 삼륜차에 승객을 태우고 짐을 싣고 무거운 페달을 밟으며 룡정시내의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인력거를 몰아 10년, 그 사이에 그는 얼음과자 한대도 사먹은 적이 없었다.

값이 싸다고 일부러 헐망한 세집만 골라가며 이사하다나니 열몇번이나 했다. 한번은 인력거로 새로 잡은 세집에 짐을 옮겨놓고 저녁에 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졌는데 한밤중에 갑자기‘와당탕!’하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에 놀라서 깨여났다. 손전등을 찾아들고 밖에 나가보니 집주인이 험악한 얼굴을 해가지고 벽돌로 쌓은 세집의 굴뚝을 왈왈 무너뜨리면서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알고보니 집주인도 자기의 안해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아이들이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이틑날 새벽에 짐을 다시 인력거에 싣고 부랴부랴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힘든 날을 참고 견디니 좋은 날이 찾아오더라구요”

“이렇게 힘든 날들이 계속되였더라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쥐구멍에도 해볕이 들 날이 있다고 참고 견디니 조금씩 좋은 날들이 찾아오더군요.”

12년 째 인력거를 몰던 어느날, 인력거를 몰고 목욕탕 앞을 지나는데 목욕탕집 주인이 석탄을 보이라실로 날라줄 수 없겠는가고 물었다. 김철수는 주인의 분부에 따라 석탄을 날랐다. 석탄 한알 흘릴세라 깨끗이 쓸어담는 김철수를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은 너무나도 감복한 나머지 며칠 후 그를 찾아 자기의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면 어떻겠는가고 청을 들었다. 이렇게 석탄 운송이 인연이 되여 김철수는 12년만에 인력거 모는 일을 접고 목욕탕에서 때밀이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였다.

한동안 열심히 때밀이를 하니 돈도 조금씩 모여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겪고 있는 지긋지긋한 고생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밤낮 죽도록 때밀이를 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7년도 아니고 꼬박 17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때밀이를 하면서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그 동안에 큰아들을 장가보내고 두 아들의 이름으로 아빠트를 장만해주었으며 몇년전에는 작은 아들에게 자가용도 사줄 수 있게 되였다.

 
지난해 한국에서 휴가로 돌아온 큰아들 내외가 아버지 김철수씨를 모시고 장백산을 다녀왔다.

자식들의 말이 나오자 김철수씨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 큰아들 내외와 손자, 작은 아들까지 모두 한국에 있어요. 녀석들이 거기서 자가용까지 사서 제각기 몰고 다니면서 잘 보내고 있다고 하네요. 허 허 허!”라고 말하며 휴대폰에 저장해둔 아들 며느리와 귀여운 손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딱 한번이라도 가서 자식들이 잘 사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앓고 있는 안해 때문에 엄두조차 못 내는 길철수였다.

오래 동안 때밀이를 하다보니 김철수씨의 때밀이 솜씨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 힘을 주면 손님들이 시원해하면서도 아파하지 않는지 감각만으로도 척 알아차린다. 갑자기 정전돼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던 때밀이를 계속 해나간다. 목욕탕 청소도 한시도 잊지 않고 깨끗이 해 그만 있으면 목욕탕 안은 언제나 말끔하다. 단골손님들은 그를‘때밀이박사’라고 칭찬하면서 기다리더라도 그의 때밀이를 받고 돌아가야 몸은 물론 기분까지 개운하다고 말한다.

“때밀이 일이 천하다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손님들과 허물없이 세상만사를 이야기하고 그들로부터 수고했다는 인사의 말 한마디 듣는 것만으로도 저는 대단히 만족합니다.”

김철수씨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그는 오늘까지 근 30년을 하루와 같이 정신질환으로 앓는 안해를 보살펴오고 있다. 집안살림은 물론이고 때시걱도 전담하면서 일은 일대로 견지하며 살아온 그다. 지금도 아침에 목욕탕에 나갈 때는 안해의 점심거리를 준비해놓고 출입문을 밖으로 잠궈놓고 나간다. 안해가 밖으로 뛰쳐나와 마구 헤매고 다닐가봐. 손님이 즘즘한 점심때가 되면 그는 안해가 먹을 저녁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달려가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는 또 손님이 기다릴가봐 부리나케 목욕탕으로 달려온다. 백년해로하겠다고 자기만을 믿고 시집 온 안해를 한번도‘버릴’생각을 못해봤다는 비단 같은 마음씨의 소유자 김철수씨다...

“보십시요, 점심 때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손님 20여명 접대했지 말입니다. 수입이 톡톡하지요. 허허허! 지금 당의 시책이 점점 좋아져 백성들의 주머니가 불어나니 손님들도 때밀이에 돈을 아끼지 않는단 말입니다. 허허허!”

앞으로 힘이 닿는 날까지 계속 때밀이를 하고 돈 좀 더 벌어 병든 안해를 보살피면서 살아가겠다는게 김철수씨의 작은 꿈이다. 슬픈 날을 참고 견디니 좋은 날이 찾아오더라고 늘 말하는 김철수씨의 앞날에 하냥 비구름이 없는 맑은 날만이 펼쳐지기를 진심으로 축복해본다.

/글과 사진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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