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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조선족 수만명,《조선족타운》도 물망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1-22 16:44:38 ] 클릭: [ ]

미국에서 만난 조선족들(3)

새 터전에 정착하고있는 조선족들 이모저모

아침(2012년 1월 21일) 눈을 떠보니 어느때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는지 바깥은 이미 백설세계였다. 사실 방문학자신분으로 뉴욕 퀸즈대학에 온지 다섯달하고도 20일만에 맞이하는 진정 겨울임을 실감케 하는 첫눈이였다.

그동안 온화한 뉴욕의 겨울기후에 다소 실망하며 겨울 연변의 짜릿한 추위를 그리워하고있던 나에게 눈앞의 백설세계는 기분을 한결 들뜨고 상쾌해지게 했다. 이 들뜬 기분은 물론 미주연변대학학우회 음력설맞이 파티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은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나에게는 미주조선족들의 삶에 대해 료해할수 있는 더없이 좋은 만남의 자리여서 자못 기대되였다.

지정한 시간에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양지촌식당에 도착하여보니 이미 여러명이 와있었다. 학우회 위원장 권위선생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미조선족동포회 3, 4대 회장이였던 원종운씨, 6대회장이였던 리헌철씨, 연변대학학우회 비서장 로무안씨, 필라델피아에서 온 연변한의원 원장 박영애녀사 등 학우회 운영진들과 뉴욕에서 사업하는 분들, 교환학자 그리고 조선족류학생들도 이날 모임에 참석하였다.

학우들 사이의 단결과 화목을 도모하는것을 취지로 시작된 파티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임진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마다 서로 새해 인사와 축복을 주고받으며 연변대학학우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파티에서 박영애원장이 새해에 학우회 회원들이 더 똘똘 뭉쳐서 더 행복한 삶을 창조하는데 노력을 경주할것을 호소했다. 미국에 온지 8년좌우 되여간다는 안정산선생은 조선족이민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앞으로 미국에 《중국조선족타운》을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구상도 제기하였다. 비서장 로무남씨는 지나온 한해를 총화하면서 룡띠해의 더 높은 비상을 약속하기도 했다.

만찬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춤, 노래 가락에 맞춰 향수를 달래며 이국땅에서 또 새로운 한해의 도전을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명상에 잠겼다.

글로벌화, 산업화, 도시화의 시대이니만큼 조선족의 인구이동 역시 불가피하고 앞으로도 그 이민수자는 줄어들지 않을것이다. 현재 미국에 사는 중국조선족은 약 6~7만여명으로 추정되고있으며 합법적인 신분이 없이 불법체류자로 있는 조선족도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조선족들은 대부분 운수업, 네일가게, 식당, 미용원, 사우나, 택시회사 등에서 일하는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메리칸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이라는 땅에 정착한 우리 조선족들은 마른일, 궂은일 꺼리지 않고 악착스레 일하여 부를 이루고 가족과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하고있으며 조건이 허락되면 하나같이 자식들을 미국에 데려와 못다한 부모의 사랑을 쏟아붓고있다.

뉴욕 플러싱지역 유년스트리트(Union Street)부근엔 수많은 조선족들이 모여살고있다. 이 세상 어느 민족이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집착은 떨쳐버릴수 없는가보다. 밉든 곱든 그래도 같은 환경속에서 교육받고 동고동락한 내 형제가 간고한 이민생활과정에서 서로 의지할수 있는것은 중국조선족이라는 집단무의식의 작용때문이 아니겠는가.

지난 학기 퀸즈대학의 ESL반에서 영어공부를 하고있는 조선족학생 6명을 만난적이 있다. 그중 연길시제2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미국에 온 한 남학생은 미국에서 군대에 입대할 생각을 하여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고중에 다니고있던 아들애와 물어봤더니 자기도 학교에서 연변에서 온 학생 다섯명을 만났다고 한다. 이들 모두가 10여년전에 부모님들이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그후에 자기들을 데려왔다는것이다. 11명중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학생이 1명이고 량친과 같이 있는 학생이 4명, 나머지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보다싶이 우리 민족의 아메리칸꿈에는 자식농사가 빠질수 없는것이다.

또한 민심을 고무하고 격동시키는것은 미국이민 1.5세나 2세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미국 공무원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있다는 점이다. 내가 뉴욕에서 접촉한 조선족들중 대학교 교수, 은행직원, 간호사, 의사, 박사, 변호사 등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많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연변한의원을 꾸리고있는 박영애원장은 물심량면으로 조선족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있으며 뉴욕 롱아이랜드대학에서 영어습작을 가르치면서 학교의 국제학생교류센터에서 행정직을 겸하고있는 백홍애박사, 28세의 나이에 미주변호사자격증서를 취득한 리선자양 등은 마냥 우리 조선족들의 자랑거리였다.

만찬에 참석한 분들 가운데는 의학박사생들도 여러명 있었다. 특히 미국명문대에 입학하는 조선족 젊은세대들이 나날이 늘어감에 따라 조선족사회에 정신적으로 큰 안위와 자부감을 부여하고있다.

100년이 넘는 이민력사를 가진 미주 한인들과 비기면 조선족들의 미국이민력사는 겨우 20여년밖에 안된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는 많은 단체들과 지성인들이 속출되여 조선족사회의 단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있다. 이미 재미조선족동포회를 비롯해 뉴욕조선족동포회, 가주조선족련합회, 펜실바니아조선족동포회, 워싱턴조선족총련합회, 싸이판조선족협회, 재미연변대학학우회 등의 단체가 결성되여 서로 돕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연변한의원 원장 박영애를 대표로 하는 《조선터데이(www.chosuntoday.com)》는 전 사회에 미주조선족사회를 지원하는 일에 적극 참여할것을 호소하고 조선족사회를 위해 책임져야 할 사명 등을 촉구하고있다.

모두들 이민가서 비지니스와 자녀교육에 성공하면 성공한 이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생존경쟁속에서 이민자들의 쫓기는듯한 삶에 《쉼》이라는 매듭을 만들어주고 더우기 해외중국조선족청소년들의 래일을 위한 비전을 위해 우리 국내외 조선족들이 해야 할 일은 많고도 많다.

미국에는 한국정부에서 지원하는 한글학교와 수많은 단체, 연구소들이 있다. 하지만 목전 해외조선족들에게는 중국정부나 한국동포정책으로부터 얻을수 있는 관심과 배려는 적은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미주한인협회화 각종 단체 그리고 연변주위와의 소통과 교류도 빈번하게 진척되여 이국타향에서의 조선족공동체의 번영과 발전을 촉구해야 할것이다.

뿐만아니라 언젠가는 연구소도 꾸려져 미주 및 세계 각지 조선족들의 삶의 궤적과 흐름을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그래야만 후세들에게 자기 민족 문화와 력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확고히 심어주어 이민사회의 공동한 관심사인 정체성문제로 하여 방황하는 경향을 줄일수 있을것이다. 미주 및 세계 조선족공동체에 민족의 씨를 심어주는 작업을 폭넓게 서두르고 진척시키는것은 세계 각지에서 사는 우리 민족의 생활에 보람과 희망을 안겨주는 요소가 될것이며 해외중국조선족사회의 더 찬란한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것으로 될것이다.

미국으로 이민온 유태인들도 초기에는 여느 소수민족과 다름없이 무지하고 가난하며 실업자와 창녀들이 많았으나 이른바 《유태어머니》들이 등장하면서 자녀교육에 열성을 내고 민족전통 지키기 활동을 벌여 유태사회의 초석을 다졌다고 한다. 특히 유태민족중 선발주자였던 독일계 유태인들이 뒤이어 들어오는 가난한 로씨야 유태인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선, 복지 기관을 통해 이들의 자립을 도와주었고 또 돕고있다고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유태인들의 장점을 따라배워 우리 조선족들도 중국에서, 미국에서,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나 서로 의지하고 이끌어주며 자신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발휘해 세계의 방방곡곡에다 《중국조선족타운》을 건립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연변대학학우회의 부단한 성장과 발전도 두손 모아 기원한다.

연회가 끝나고 처음으로 미국에서 야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사락사락 눈 밟히는 소리마저 유난히 정겹고 가슴 뿌듯하게 들려왔다.

/김미란 

프로필

김미란,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부교수

2011년 8월 31일-2012년 8월 31일, 미국 뉴욕시립대학 퀸즈칼리지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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